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221
<본 글은 '한국술 고문헌 DB(한국술문헌연구소 제작)'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도움을 주신 @김재형님께 감사드립니다. http://koreansool.kr/ktw/php/home.php >
처음 보는 음식을 만들 때 일반적으로는 제조 방법인 레시피를 참고하며 조리함으로써 음식 맛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술을 빚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술 빚는 레시피(첨가량 등)를 보고 만들어 맛의 균형과 재현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술 빚는 레시피가 책에 기록되어 있기보다는, 집안 어른으로부터 어깨너머로 배우는 ‘대물림’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레시피라는 개념보다는 감(感)에 의한 제조가 많았다. 다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술 빚는 방법을 정리해 문서로 만들어 두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주방문(酒方文)’이라 함은 술을 빚는 방법을 기록한 문서를 뜻하며, 이를 참고하여 술을 빚곤 했다. 1600년대 말엽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요리책에서도 이러한 주방문이 확인된다. 물론 오늘날처럼 술 제조가 상업화된 시대에는 술 레시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일부 양조장은 고문헌에 기록된 술 빚기 방법을 참고하여 술을 빚고 있다. 이처럼 술 제조법, 즉 레시피는 그 술의 특징을 규정하거나 마케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술 빚는 레시피가 언급된 책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술 제조법이 등장한 책으로는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들 수 있다. 이 책에는 쌀과 누룩을 이용하여 술을 빚는 여러 방법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약집성방》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주방문’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이 책은 술을 마시기 위한 제조법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체의 건강을 위한 약 제조법을 중심으로 한 의약 서적이기 때문이다.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에 대한 우리나라 산 약재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세종대왕에 의해 출판되었다.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관한 생각을 강조하여 의약에 대한 백성 구제의 자주적 정신을 확립하고자 향약방을 종합 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다.1)
이 책의 의의는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던 향약방을 폭넓게 수집·정리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우리 고유의 의학 전통을 중국에서 전래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독자적인 의학 체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향약집성방》은 1399년에 간행된 《향약제생집성방》을 바탕으로 향약 관련 모든 방문을 수집·분류·보완하여 1433년에 완성되었다. 《의방유취》, 《동의보감》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의서로 꼽히는 이 책은 총 3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질병 338종에 관한 내용과 향약방문 2,803개를 수록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술 제조법이 약 70가지 정도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향약집성방》에는 단순히 쌀과 누룩, 물을 이용해 술을 빚는 방법보다는, 여기에 한약재를 첨가하여 기능성을 강조한 치료용 술의 제조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한약재를 술에 넣어서 약효를 더 얻으려는 이유는 과거에 쓴 글인 「데워 마시는 약술들이 기록된, 고려시대의 조씨배명력(趙氏拜命曆)」을 참고 하면 될 것 같다.
향약집성방에는 있는 술을 보면 아래와 같다(명칭 뒤 숫자는 언급된 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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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주(乾薑酒, 생강 넣은 술), 고삼양주 2(苦蔘釀酒, 고삼 넣은 술), 구기근주(枸杞根酒, 구기자 뿌리 넣은 술), 신선구기자주(神仙枸杞子酒, 구기자 넣은 술), 구미주(九味酒, 아홉 가지 맛의 술), 국화온주 2(菊花醞酒, 국화 넣은 술), 도인주 2(桃仁酒, 복숭아씨 넣은 술), 두림주(豆淋酒, 콩 넣은 술), 두시주(豆豉酒, 두시-콩을 발효한것 넣은 술), 두충주(杜沖酒, 두충 넣은 술), 마자주(麻子酒, 대마씨 넣은 술), 반하주(半夏酒, 반하-결명자의 종자 넣은 술), 백출주(白朮酒, 백출 넣은 술), 백화사조주(白花蛇造酒, 백화사-백화증에 걸린 구렁이 넣은 술), 봉방양주(蜂房釀酒, 벌집 넣은 술), 산강주(蒜薑酒, 마늘과 생강 넣은 술), 산장주(酸漿酒, 꽈리풀 넣은 술), 상륙양주(商陸釀酒, 상륙-자리공의 뿌리 넣은 술), 서점자주(鼠黏子酒, 우엉 씨 넣은 술), 석회주(石灰酒, 석회 넣은 술), 선령비주(仙靈脾酒, 삼지구엽초 넣은 술), 소개자주(小芥子酒, 겨자 넣은 술), 소식고주(消食膏酒, 소화에 좋은 기름진 술), 송엽주(松葉酒, 솔잎 넣은 술), 송엽침주(松葉浸酒, 잣잎 넣은 술), 송절주 2(松節酒, 송절 넣은 술), 송지주 2(松脂酒, 송진 넣은 술), 송화침주(松花浸酒, 송화 넣은 술), 수유침주(茱萸浸酒, 오수유 넣은 술), 신국주(神麴酒, 신국으로 빚는 술), 안지주(鴈脂酒, 기러기 기름 넣은 술), 암려자주(菴䕡子酒, 암려자-맑은대쑥의 씨 넣은 술), 오가피주 3(五加皮酒, 오가피 넣은 술), 신선오마주(神仙烏麻酒, 검은 참깨 넣은 술), 용호주(龍虎酒), 우방주 2(牛蒡酒, 우엉 넣은 술), 원지주(遠志酒, 원지 넣은 술), 자석주(磁石酒, 자석 넣은 술), 자주(紫酒, 자줏빛 술), 저고주(猪膏酒, 돼지 기름 넣은 술), 지골피주(구기자 뿌리 넣은 술), 지실주(枳實酒, 탱자 열매 넣은 술), 지피주(枳皮酒, 탱자나무 껍질 넣은 술), 지황주 6(地黃酒, 지황 넣은 술), 창포주 4(菖蒲酒, 창포 넣은 술), 천문동주(天門冬酒, 천문동 넣은 술), 철주(鐵酒, 철 넣은 술), 출주(朮酒, 창출 넣은 술), 포도주(葡萄酒, 포도 넣은 술), 해동피주(海桐皮酒, 엄나무 껍질 넣은 술), 호골주 2(虎骨酒, 호랑이 뼈 넣은 술), 호유주(胡荽酒, 고수 넣은 술), 황정주(黃精酒, 황정-죽대의 뿌리 넣은 술), 흑두주(黑豆酒, 검은콩 넣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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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주방문에서는 술을 만드는 과정에 한약재가 첨가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일부는 술과 함께 한약재를 곁들여 먹는 방식도 있다). 이는 한약재의 유효 성분을 효과적으로 침출시키려는 의도와 더불어, 알코올과 함께 섭취함으로써 약효 성분의 흡수를 높이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기근주(枸杞根酒, 구기자 뿌리를 넣은 술)의 경우, 책에는 구체적인 제조법과 함께 효능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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枸杞根酒. 治風冷虛勞.
枸杞根切一石, 鹿骨一具打碎.
○右以水三石, 煎取汁一石, 去滓澄淸, 入糯米一石, 淨淘炊熟, 細麯十斤, 擣碎都和一處, 入瓮密封, 三七日開, 冬溫夏冷, 日飮三盃.
구기근주. 풍랭증(찬바람을 맞아 걸린 감기 증상)과 허로(기운이 부족하고 몸이 피곤하여 나타나는 만성적 허약 상태)를 치료한다.
지골피[枸杞根] 잘라서 1석. 녹골(鹿骨, 사슴 뼈) 1마리는 때려 깨뜨린다.
○ 이상을 물 3석에 달여, 물이 1석이 되면 찌꺼기를 버려 맑은 웃물에 찹쌀 1석을 깨끗이 일어 지은 밥과 고운 누룩가루 10근을 버무려 항아리에 넣고 밀봉하여 21일 후 개봉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차게 하여 하루에 3잔씩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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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부분의 약용주는 술의 이름과 함께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는지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 《향약집성방》의 특징이다. 그만큼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시는 술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되었다. 특히 동물성 재료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백화사조주(白花蛇造酒, 백화증에 걸린 구렁이를 넣은 술), 호골주(虎骨酒, 호랑이 뼈를 넣은 술) 외에도, 지방 성분을 이용한 저고주(猪膏酒, 돼지 기름을 넣은 술)나 안지주(鴈脂酒, 기러기 기름을 넣은 술) 등이 있다. 또한 광물성 재료로 분류할 수 있는 자석주(磁石酒, 자석을 넣은 술)나 철주(鐵酒, 철을 넣은 술)와 같은 경우도 확인된다. 이러한 사례들은 해당 술들이 단순히 취하기 위한 음용주가 아니라, 치료를 목적으로 한 ‘약주(藥酒)’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대부분의 약술은 하루 2~3잔 정도로 소량 복용하도록 권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치료 목적의 보조약임을 뒷받침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술에 약용 식물이나 허브를 넣어 사용한 사례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압생트(Absinthe, 쑥과 각종 허브를 사용)나 노간주 열매(주니퍼 베리)를 넣어 만든 대표적인 술인 진(Gin) 역시 원래는 약용 목적에서 비롯된 술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약용 기능보다는 향과 맛 같은 관능적 요소가 강조되면서, 대부분의 술이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처럼 의약품이 충분히 보급된 시대에는 술을 약으로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약용주의 제조법을 완전히 잊어버리기보다는, 그중에서 기호적으로 마시기 좋은 술을 선별해 음용성이 우수한 전통주로 발전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한약재를 넣은 술이 더 이상 ‘약’은 아니지만, 향과 맛을 살린 새로운 형태의 술로 재탄생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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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이버 지식백과]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27365&cid=46638&categoryId=46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