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멈춰 서고 싶을 때마다, 어디로든 숨어들고 싶을 때마다, 어떻게든 넘어가고 싶을 때마다 나는 책상 한 편의 섬으로 떠나곤 한다. 그 어느 때에 찾아가도 그 어느 걸음이든 알아주는 문장들이 나를 환하게 반기는 섬. 그 어느 때에 머물러도 그 어느 마음이든 안아주는 그림들이 나를 폭닥하게 끌어안는 섬. 한 권씩 발견하고 한 권씩 채워 넣은 작은 책꽂이. 그곳은 나의 다도해(多島海)다.
어떤 섬은 손바닥만 하고, 어떤 섬은 내 팔뚝만큼 두껍다. 어떤 섬에서는 그림과 그림, 문장 사이의 빈자리에 나를 세운다. 어떤 섬에서는 문장으로 꽉 들어찬 자리 한가운데에 나를 눕힌다. 어느 섬이든 익숙하게 나를 맞고 깊숙하게 나를 담는다.
체력과 기력, 정신력 모두가 기진되어버렸던 그날. 홀로 잠들지 못한 마음으로 찾아간 곳은 고요히 하얀 섬마을이었다. 이전의 방문에서 남겼던 흔적들이 곳곳에 자리한 그곳을 가만히 거닐고 조용히 넘어 다녔다. 접힌 세모꼴의 표지판이 세워진 어느 곳에 다다를 때까지.
탓하고만 싶은 이와 탓할 수밖에 없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던지고 이곳과 저곳에서 터지는 화약 탓에, 말끔한 시야로 가만히 거닐고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하루들이 이어졌다. 매섭게 불어오는 바깥의 바람에 길 위의 나무도, 길 잃은 나도 하릴없이 흔들렸다. 이렇게 계속 흔들리다 결국 가지가 부러지고 뿌리도 뽑힐까 봐 두려운 마음이 두 개의 노가 되어 찾아간 섬. 그곳에 그날의 나를 위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날의 나를 붙드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감수성.
바보 같은 얼굴을 파묻고서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바보처럼 토로했다. 누군가나 무언가를 탓한다고 누군가나 무언가가 바뀔 리 없는 이 상황에서 나는 무얼 할 수 있나요. 무얼 바꿀 수 있나요. 탓하고만 싶은 누군가에 반응하는 나의 말은 뾰족하기만 해요. 탓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에 반응하는 나의 행동은 거칠기만 해요. 그렇게 나는 나를 더 흔들고 있어요. 그렇게 나는 나를 더 부러트리고 있어요. 그렇게 나는 나를 더 뿌리 뽑으려 해요. 결국 나는 나를 탓하고 있어요.
푸욱 젖은 얼굴을 쑤욱 들 수 없던 시(詩)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쪼그려 앉았던 시의 공간이 이전보다 조금 넓어진 것을 느끼면서, 떨리는 몸을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하얀 모래 위에 한 줄의 투명한 시구로 새겨진 시의 마음. 바보에게 온전히 전하고 싶은 마음이자 바보를 온전히 끌어안는 마음이 두 발아래 놓여 있었다.
‘스스로 지키는 감수성은, 결국 스스로를 지켜내는 성(城)이 된다’
여전히 두렵지만 두렵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두 노를 저어 육지로 돌아왔다. 탓하고만 싶은 이들이 기다리는 삶으로. 탓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진행 중인 삶으로. 누군가나 무언가를 탓한다고 누군가나 무언가가 바뀔 리 없는 삶으로. 그러나 누군가나 무언가에 대한 내 반응의 정도와 방향은 바꿀 수 있는 삶으로. 그렇게 누군가나 무언가로 인한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삶으로. 그만큼 누군가나 무언가를 향한 내 감정을 진정시키는 삶으로. 그리하여 누군가나 무언가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삶으로.
홀로 잠들지 못한 밤을 닫기 위해 내딛는 걸음은, 어둡지 않았다.
고요히 환한 하나의 빛으로, 나의 섬들이 미소 짓고 있었다.
3월을 보내며, 3월의 어느 날에 썼던 글 한 편을 올린다. 그곳에 다다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서 써야 하는 글이 있다면, 이 글은 두 경우 모두에 해당하는 마음의 자취이자 걸음의 자리이길 바란다.
*감수성(感受性):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
** 감정(感情):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 ⟪처음 가는 마을⟫ , 이바리기 노리코 지음, 정수윤 옮김, 봄날의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