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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Sep 03. 2024

우리는, 달라질 우리를 선택할 수 있을까

이명애,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


체육 시간. 우리는 피구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절반씩 두 팀으로 나누어 피구를 합니다. 공을 던져 상대 팀의 몸을 맞춰 경기장 밖으로 아웃시키는 피구를, 우리는 합니다.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


체육 시간. 우리의 친구들은 우리가 던진 공에 맞아 한 명씩 한 명씩 아웃됩니다. 눈이 나빠 안경을 쓴 친구, 손을 다쳐 제대로 공을 받을 수 없는 친구,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서먹한 친구, 또래보다 덩치가 큰 친구… 제각기 다른 모습과 다른 성향, 다른 사연을 가진 친구들은 윤, 곽, 한, 최, 김 등의 성(姓)으로만 소개됩니다. 소개되자마자, 우리에게서 소거됩니다. 자신의 어떤 모습과 성향, 사연이 공을 맞을 만한 마땅한 이유가 되어버린 우리의 친구들. 그들은, 우리가 던진 공에 맞아 우리 안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됩니다.



체육 시간. 나에게도 공이 왔습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나는 공을 던져야 합니다. 휘슬이 두 번 울리기 전에, 우리였던 ‘너’들 중 한 명을 맞춰야 합니다.


주황색 공을 품에 안은 나를, 눈여겨 보아주시겠어요. 그림책 앞 표지에 그려진 나는 그림책 안에 그려진 나와 같지만, 다릅니다. 나는 달라졌습니다. 나는 달라지기를 선택했습니다. 



휘슬이 두 번 울렸습니다. 주황색 공은 하늘로 높이 높이 치솟았습니다. 해처럼 빛나는 주황 공의 궤적을 따라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겨 시야를 넓힌 그때, 오늘의 체육 시간이 끝났습니다. 각자의 표정과 색채를 되찾은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되어, 교실로 돌아갑니다. 


이내 다시 돌아올 체육 시간.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휘슬이 두 번 울리거나 울리지 않을 다른 방법을, 다른 상황을, 달라진 우리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모든 시간. 그림책 밖의 또다른 우리인 당신과 함께, 달라질 수 있는 우리를 상상하고 싶습니다. 이제 공을 당신에게 건넵니다. 어디에나 있는, 주황 공을.



〰️

이명애,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 사계절, 2024

* 민주인권그림책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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