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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n 24. 2024

은퇴한 남자, 친구들 보고 놀란 3가지

은퇴에서 배우는 인생 3

은퇴 후 1년, 내가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크게 세 부류다. 고등학교 친구들, 입사 동기, 그리고 일로 만난 사람들. 역시 고교 친구들이 가장 편하고 허물없다. 여전히 반말로 부르고 정해진 날짜 없이 아무 때나 생각나면 연락한다. 대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거나 술 한잔 하며 얘기를 나누곤 한다.

 

입사 동기 세 사람은 반상회처럼 매달 본다. 마침 나이가 같아 초기에 연수받으며 친해졌는데, 현역 때는 뜸하다 은퇴 후에 자주 보게 됐다. 신기하게도 만날수록 얘깃거리가 늘어난다. 산행과 식사, 당구치는 게 거의 고정 레퍼토리가 된 것 같다. 일로 만난 사람 중에는 회비를 내는 ‘계모임’ 같은 8인조가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3달에 한 번 1박 2일 모임을 갖는다. 꾸준히 만난 지 어느새 20년째, 요즘엔 매년 해외여행도 간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모임이나 만남이 있다. 대부분 은퇴자인 그들과 SNS로 연락하거나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그 생각들을 정리해 봤다.



1. 단톡방에 답이 없다     


남자들의 단톡방엔 ‘리액션’이 별로 없다. 그림자처럼 눈팅을 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게 습관화된 사람이 많다. 약속 날짜를 잡으려고 해도 답이 늦거나 미지근할 때가 있다. 의사표시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런 남자들이라면 뜨끔해지는 순간이다.


- 기본적으로 타인에 그리 관심이 없거나 주위에 둔감한 편이다.

- 웬만해선 나서거나 튀고 싶지 않다. ‘중간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 팀장이나 간부로 오래 일하면서 ‘갑 근성’이 몸에 밴 탓이 크다.


설마 나도? 해진다. 혹시 우리 세대 남자들의 일반적인 행태는 아닐까. 사람이 좋은 것과 리액션은 다른 문제다. 그건 습관이나 학습의 문제일 경우가 많다. 손가락 한번 움직이면 되는데 어려운 일은 전혀 아니다. 확실히 남자는 여자에 비해 정서적 반응이 약한 것 같다. 반가움을 2배쯤 업그레이드해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결국 '공감 능력과 성향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2. 관성의 법칙으로 산다


해온 대로 살고 웬만해선 편한 대로 그냥 간다. 좀체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는 게 우리 시대 나이 든 남자들의 습성이 된 것 같다. 특별히 현타가 오는 일이라면 모를까. 스스로 깨치고 바꾸는 일은 드물다.


은퇴한 대한민국 남자들의 취미는 거의 비슷하다. 산행과 막걸리 한잔, 당구 치며 어울리기, 형편이 조금 되면 골프, 그리고 운동 중엔 헬스 피트니스, 걷기와 산책 등.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의 아산병원 정희원 교수가 노년에 좋다고 한 요가나 필라테스는 여전히 여자들의 운동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평생학습관에 가봐도 여자들이 대다수다. 인문학 강의나 미술 강습 등 교양 문화강좌는 왜 여자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걸까.


은퇴 후 남자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건 현역 때 일에 치인 고단함과 스트레스 여파일까. 정보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귀차니즘’에 젖은 탓이 클지 모른다. “더 이상 새로운 인간관계에 엮이기 싫다.”는 사람도 흔하다. 동네 문화센터나 패키지여행을 갔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올까 외려 겁났다, 는 경우다. 선배가 그런 말을 하는데, 사실은 나도 속마음이 그래서 적잖이 놀랐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3. 서로 닮아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근황 몇 마디, 과거의 추억 몇 가지 나누면 심드렁해진다. 관심사항과 공통의 화제가 뭔지 허공을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자주 만난 친구들과는 할 말이 많아진다. 속에 있는 얘기를 하나씩 꺼내며 진짜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는 과거를 회상하지만, 자주 만나는 친구와는 지금 눈앞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게 된다. 자주 만나야 진짜 친구, 그렇게 친구들은 서로 조금씩 닮아간다.



좋은 친구는 행복한 인생을 위한 동반자다.



연수 동기 3 총사의 지난달 모임에서 깜짝 놀랐다. 셋 다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아내와 2대 1로 배우고, 또 한 친구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15명 정원 가운데 '혼남'으로 고군분투 중이라고 한다. 먼저 시작한 나는 1년 동안 15인 속에서, 지금은 5대 1 수업을 받는 중이다. 절대다수 여자들 사이에 끼인 이 남자들의 필라테스 레슨에는 노년내과 정 교수의 조언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일로 만난 8인조 모임의 경우, 단톡방 리액션이 갈수록 활발해진다. 여행을 가고 맛집 탐방을 하는 등 이런저런 근황 소식을 전하면 다들 ‘좋아요’나 ‘공감’의 리액션이 난무한다. 때로는 서로 필살기를 날리듯 ‘이모티콘 배틀’까지 벌어진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놀다 보니 닮아가는 것이다.



웃는 친구를 만나면 내가 행복해진다


인간관계의 비밀을 밝힌 하버드대의 연구에 관한 책 <행복은 전염된다(Connected)> (2010)는 “친구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질 확률이 15% 증가한다.”라고 말한다. 친구의 친구가 행복해도 10% 정도 나의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또 다른 이론은 친구 다섯 명의 평균 행복이 바로 나의 행복도라고도 한다.


인간관계는 복잡하지만 미묘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웃는 친구를 만나면 나도 웃게 되고, 행복한 친구를 만나면 나도 행복해지는 이치와 같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우리의 일상은 변화의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좋은 친구를 곁에 두려는 이유는 이처럼 서로가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은 아닐까.



친구와 마음을 나누는 일상      


은퇴는 결코 모든 사회관계나 인생의 은퇴가 아니다.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시작과 같다. 현역이라면 지금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자주 만나면서, 좋은 관계를 가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친구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인생을 통틀어 꾸준히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가까운 친구라도 오랜만에 만나면 서먹하다. 인생은 늘 흘러간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끔씩 근황을 나눠야 세월 따라 정이 깊어진다. 카톡에 뜬 생일 친구에게 축하의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면 어떨까.


친구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면 나도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 하루도 많이 웃어 보자. 내 웃음이 누군가에게 행복의 파장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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