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는 곧 그 개인이다.
시대는 원자의 시대에서 비트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다. 원자의 시대에서 삶을 쌓아 올린 사람들은 비트의 시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트의 시대에서 삶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원자의 시대의 자신의 삶을 허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비트의 시대를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트의 시대가 오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한다. 결국 비트의 시대가 오리라는 점을 알아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오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한다.
'한 개인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원자의 시대를 살아온 지금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다. 한 개인은 원자의 집합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개인이 속한 네트워크가 그 개인에게 부여한 정보, 혹은 표지는 그 한 개인의 본질이 아니므로 처분할 수 있고, 자신의 정보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전달되거나 가공되더라도 그 개인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개인이 비트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한 개인은 물리적 정보뿐 아니라 사회적 정보로 이루어진 존재로 파악된다. 개인정보는 지금의 개인정보보호법에서의 보호와는 다르게 다루어져야 한다. 개인정보는 한 개인의 본질을 이루고 있으므로 자신이 언제 어디서든지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기술발전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신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므로 한 개인은 동시에 여러 공간과 여러 시간에 편재할 수도 있다.
개인정보를 취득해서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비대면 상태에서 돈을 편취하거나 속이는 것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커질 뿐 아니라 거대 인터넷 기업이나 국가도 취득한 개인정보를 가지고 그 개인을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자는 분리해서 이동하기 어렵지만, 비트는 분리, 전달, 가공이 너무나 쉽다.
나의 확장은 힘과 권력, 그리고 자유의 확장일 수도 있지만 확장된 만큼 하나의 자아로 통합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나의 정보의 제공이 내 의사가 아니라고 입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정보가 삭제됨이 없이 네트워크에 영원히 보관되고 있다. 브루스 슈나이어가 쓴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책에서 명확히 밝혔든이 이 데이터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이로써 정보과학, 정보기술의 발달로 가장 가치 있는 정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에 대한 정보가 해당 개인의 통제에서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통제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정보의 집중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블록체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블록체인 기술은 정치학에서 권력이나 국가의 종말을 다루는 것, 사회학자 혹은 조직 연구자들이 분산 권력을 이야기하는 것, 경제학자들이 자본 집중의 폐해를 이야기하는 것과 동일하게 컴퓨터과학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시기는 예전과 달리 법과 제도를 프로그래밍하고 디지털화할 수 있는 시기이고, 그 결과 컴퓨터과학이 법학이나 정치학, 조직학과 분리되지 않게 되고 있다. 입법을 하는 국회의원, 법을 해석하는 법률가 들도 컴퓨터 언어로 작성된 코드가 어떻게 사회에서 실현되는지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프로그래머 역시 자신의 코드가 어떻게 기존의 법률이나 관습과 충돌하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의 분산이 권력이 분산이 되는 이치는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자명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기도 하다. 개인정보를 국가나 한 기업이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법률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는 있다. 그 반면 개인정보의 제공이나 가공을 너무나 금지하고 있어서 정보의 전달, 가공이 가져오는 가치의 창출 역시 어려워지고 있다. 더더욱 문제는 인터넷으로 세계가 연결되어 있어 법률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국가의 국민의 정보가 다른 나라의 어느 한 기업의 서버에 저장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구글과 페이스북에 우리의 정보를 공급하여 그들에게 가치를 공짜로 이전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물리적 가치보다 디지털화된 가치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처럼 생각된다. 음식, 의복, 집이 가지는 전통적 가치보다 게임, 음악 및 영화 파일, 전자책, sns나 온라인 상태에서의 평판, 어떤 사이트를 알고 있고, 접속할 수 있는 자격 등 전통적으로는 큰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던 것들이 더 가치가 커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가치는 분할 가능하고, 순식간에 이전 가능하고, 변형이 가능하고 거기다 더해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몸에 걸친 명품 옷이나 가방, 혹은 타고 다니는 차와 같은 물리적 물건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인터넷 상에서 비트로 구현된 어떤 정보의 집합체 역시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의 평판은 실제 오프라인에서의 평판과 그 사용용도 및 기능이 다를 뿐 다를 것이 없다. 설령 오프라인에서의 행동양식이나 말과 다르더라도 가짜이어서 쓸모없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그렇게 수많은 허세와 허언증이 난무하는지도 모른다.
개인정보가 그 사람을 구성하는 본질이라고 생각할 때 그 정보의 처리, 처분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그 처분과 관련하여 전통적인 소유권 이론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개인정보의 수집에 동의하여 어느 한 기업이 개인들의 정보를 수집하였다고 할 때 그 정보의 처분권이 그 기업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그러한 기업은 정보의 처리를 통해서 가치를 창출하므로 그 정보를 처리, 가공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충돌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 기술은 정보를 어느 한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네트워크에 보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누구도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서도 누구나 해당 정보를 신뢰하여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