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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Oct 24. 2020

아침에는 잠 좀 잘게요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의 공간

엄마! 있잖아요...


어김없이 오늘 아침도 딸이 조잘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협탁 위를 더듬거려 스마트폰 액정을 터치했다. 간신히 왼쪽 눈만 실눈을 뜬 채 시간을 확인했다. 06시 10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이다. 눈뜨자마자 뭐 그리도 할 얘기가 많은지 딸은 기어이 아내와 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어미 새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처럼 제 엄마 턱 밑에 코를 박고 떠드는 모습이 귀엽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상당히 괴롭다. 어제도 새벽 3시 반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아침잠은 인생에 가장 큰 낭비"라는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형 인간과 "밤은 낮보다 더 찬란하게 채색되어 있다"는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형 인간이다. 신혼 때부터 밤 열시만 되면 거의 기면상태에 빠지는 아내는 카네기형 인간에 속한다. 반면, 나는 밤에 집중이 잘 되는 고흐형 인간이다. 일도, 독서도, 게임도 자정을 넘긴 새벽에 능률이 오른다. 우리 부부는 정반대의 인간 유형이지만 아주 균형 있게 서로의 체질을 존중하면서 각자의 충분한 수면을 보장해 주었다. 그런데 딸이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외모, 성격, 식습관까지 죄다 나를 빼다 박은 딸은 수면 체질만큼은 엄마를 닮았다. 이로써 균형이 깨졌다. 딸이 개입하면서부터 나는 수면 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제발 아침에는 잠 좀 잘게요."




자동차 한대도 다닐 수 없는 좁은 골목 끝에 새로운 우리집이 있었다. 녹슨 대문 너머로 다섯 가구(家口)가 한 울타리 치고 살았다. 대문을 열면 바로 중정(中庭)이 있고, 그 둘레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중정에 모여서 잡담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술도 마시고, 그러다가 취기가 오르면 노래도 부르고, 심지어 싸움도 종종 일어났다. 중정과 내방을 구분해주는 것은 낡은 알루미늄 샷시가 전부였다. 방음이라고는 일도 되지 않는 샷시는 책상 위에 볼펜으로 찍 그은 경계선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이 사라지면 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창틀에 앉아 기분 나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침묵과 고요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나는 그 공간이 정말 싫었다. 친구 K가 사용하다가 선물로 준 CD&카세트 데크에 헤드폰을 꼽고 음악을 방패 삼아 소음에서 벗어났다. 공부를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헤드폰은 필수였다. 새벽까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이 글을 쓰다가 오랜만에 1993년 인기 가요를 검색해봤다. 하여가. 그대 안의 블루, 겨울비 등 리스트에 있는 모든 노래가 너무 친숙했다. 그 시절 나는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음악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리스트의 음악들을 다시 들으면서 새삼 감성에 젖어본다.)


눈이 안 떠진다. 눈꺼풀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세수도, 양치도 대충하고 겨우겨우 교복을 입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는 사이, 책가방을 현관문 앞에 두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방문 틈 사이로 보이는 텔레비전. 늘 그렇듯 브라운관 우측 상단을 주시했다. 현재 시각 07시 05분. 집에서 학교까지는 도보로 20분. 교문이 닫히는 시간은 07시 40분. 집에서 07시 20분 전에 출발하면 지각하지 않는다. 출발까지 15분이라는 꿀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침대에 몸을 맡긴 채 텔레비전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내 몸은 다시 포근함을 느낀다. 눈에 힘이 빠지면서 시계가 깜빡인다. 아니 내 눈꺼풀이 깜빡인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텔레비전 시계는 07시 35분. 난 또 지각이었다. 손에 잡히는대로 도시락과 책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 현관문을 뛰쳐나가면서 괜히 엄마를 향해 못된 말을 내뱉었다.


"아씨! 엄마, 왜 안 깨웠어? 나 완전히 늦었어."

심장이 덜컹, 놀라서 벌떡 일어나 자동반사적으로 엄마에게 버럭한 것이었다.

엄마는 도시락 싸는 일을 1년 쉬긴 했지만, 또다시 시작된 등교 전쟁이 반갑기라도 한 듯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교복까지 입고 있길래 다 준비한 줄 알았지. 얼른 뛰어가 늦겠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왔지만, 늦잠 자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이게 다 중정에서 밤늦도록 떠드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골목길을 뛰어 내려가면서 욕을 해댔다. 못난 짓인 것을 알면서도. 부은 눈두덩이에 새집 지은 머리는 나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되었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하게 여학생들에겐 외면을 당했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심기일전(心機一轉)해서 진학한 고등학교에서 치루는 첫 번째 시험이었다. 나는 첫 방에 딱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이미 전교에 나에 대한 소문이 심심치 않게 돌고 있었다.

"1년 꿇은 걔한테 형이라고 불러야 돼?" 1학년 사이에서 나를 두고 뜬금없는 '형' 호칭 논란이 일어났다. 내가 1학년으로 입학했다는 소문을 들은 과거의 친구들(2학년)이 나를 만나겠다고 우리 반에 찾아오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그중에는 친분이 없던 녀석들도 있었다. 1학년에게 후까시 한번 잡아보려고 습격한 것이었다.) 나는 이 논란을 시험성적으로 종결 짖고 싶었다. 성적이 좋으면 나는 정당하게 반에서 '형' 대우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공부를 못해서 1년 꿇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 이 녀석들아, 내가 지난 1년 동안 쌓은 내공을 어디 한번 보여주마!"


결과는 참담했다. 중간고사 성적을 출력한 전산지가 칠판에 붙어 공개된 순간,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반 석차 1등에서 25등까지 적힌 첫 번째 페이지에 내 이름은 없었다. 그 뒷순위가 적힌 두 번째 페이지, 그것도 중간보다 약간 위에 내 이름이 있었다. 갑자기 줄 세우기 문화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쳤다. 사실 너무 쪽팔려서 그런 거였다.

"젠장 망했다."

작심하고 시험 준비를 했는데 참담한 성적을 받아든 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싶었다. "나는 왜 공부를 못할까?" 이게 다 아침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선천적, 유전적인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라고 말하면 부모님이 기분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 애초 태어나길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로 태어난 것을 난들 어쩌겠는가.

아침잠 때문에 지각을 자주 하니 선생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재수생이라는 선입견도 한몫했다. 항상 저지른 잘못보다 과한 체벌을 받아야만 했다. 갈수록 공부에 관심이 없어졌다.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치는 힘은 운동에 전부 쏟아부었다. 농구와 음악이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a.k.a 마이클 조던, 마지막 승부) 덕분에 키만 무럭무럭 자라났다.




몇 해 전 아침형 인간이 한창 유행할 때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한동안 아내의 신체 리듬을 따라 생활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다음부터 그냥 올빼미로 살기로 했다. 우연히 찾아본 기사가 눈길을 끈다.

"올빼미형 인간은 모험심을 즐기고, 독특하며 자유분방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간 유형이 바로 올빼미형 인간이다."


진짜!?


배수관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되었다. 난민들의 절박한 삶이 엿보인다.  '배수관 아파트', 히와 케이 作, 카셀 도큐멘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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