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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Nov 01. 2020

환기(換氣)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의 공간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어.


"아빠, 이거 어때? 엄마한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

"저것도 예쁜데, 아니 이게 더 예쁘다. 아빠 여기 좀 봐봐요."

딸이랑 같이 오는 게 아니었다. 엄마에게 선물할 귀걸이를 골라보라고 했더니 엉뚱한 것만 고른다. 벌써 30분째다. 일곱 살의 안목을 과대평가한 내 잘못이다. 얘는 지 엄마의 취향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딸의 방해 공작(?)을 뚫고 간신히 심플하지만 유니크한 디자인의 귀고리를 골랐다. 예쁘게 포장까지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려면 아직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서둘러 움직이면 시간 안에 요리를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부엌에 들어가 베이비 립을 물에 담가두었다. 핏물을 빼는 사이, 콜슬로우를 만든다. 양배추, 양파, 당근을 얇게 채 썰어 식초, 마요네즈, 설탕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다. 맛이 괜찮다. 큰 냄비에 립을 넣고 누린내가 나지 않도록 마늘, 생강, 월계수잎 등 각종 재료와 함께 삶는다. 삶아진 립에 바베큐 양념을 발라 초벌구이를 한다. 아내가 도착하면 요리가 바로 나갈 수 있도록 그릇 세팅을 미리 한다. 한눈팔 시간이 없다. 초벌 된 립을 오븐에 넣고 잘 구워지길 기다린다. 요리의 성패는 이제 내 손을 떠났다. 엄마 오기 전에 예쁜 옷 입고 파티를 준비하자고 했더니 딸은 파티라는 말에 방방 뛰며 좋아한다. 무슨 파티인지는 묻지도 않는다.

뜨거운 열로 단련된 육질이 농익은 바비큐 소스를 태우면서 풍기는 달콤한 향이 식욕을 끌어당긴다. 시간이 아주 느릿느릿 걸어가는 느낌이다. 아마도 맛있는 냄새를 마주하고 있는 데서 오는 설렘 때문일 것이다.

집에 돌아온 아내에게 깜짝 이벤트를 공개했다. 귀걸이는 딸이 전달했다. 아내의 입꼬리가 겨울 그믐달처럼 보기 좋게 치켜 올라간다. 역시 아내의 반응은 기대했던 대로다. 아내가 배실배실 웃으면서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오늘이 우리 만난 지 10주년 되는 날이잖아.”




바짓자락 끝에 덕지덕지 매달려 있던 무기력을 마침내 털어버렸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을 느끼며 새삼 지난했던 시절의 무게를 생각했다. 서른 살. 다시 길을 나서야 했다. 하루가 멀다고 날아오는 학자금 대출 상환 독촉장. 상습 연체자였던 나는 신용불량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대가로 얻은 새로운 신분은 여러 가지로 나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 나는 배우의 꿈을 고이 접어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두기로 했다. 미련의 강도는 배우가 되기 위해 들인 시간의 양에 대체로 비례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착잡한 마음을 억누르며 다시는 꺼낼 수 없는 꿈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신분을 끓어 올리고 지금껏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정상 궤도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1년 후 재입학을 했고, 별 탈 없이 졸업을 했다. 서른두 살을 한 달 여 앞두고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에 나는 빠르게 녹아들어 갔다. 신사동에 있는 작은 외주제작사에 일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영상을 편집했다. 4학년 1학기 때 배운 편집프로그램이 돈벌이 기술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곳에서 받는 급여로는 대출금 갚기에도 빠듯했다. 나는 근로 빈곤자나 다름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코를 박고 살았다. 텍스트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가며 지금보다 근로조건이 좋은 곳은 모두 적어두었다. 회사가 정해 둔 양식에 따라 이력서를 써서 보냈다. 일흔 곳이 넘는 회사로부터 “안타깝게도...”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수런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이력서를 썼다. 그러다가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축하합니다!”로 시작되는 문장이 처음 눈에 들어왔다. 그걸로 힘들었던 모든 순간이 가뭇없이 종료되는 것만 같았다. 케이블 방송사로 직장을 옮겨 지긋지긋했던 대출금 상환의 족쇄에서 벗어났고, 처음으로 내 이름이 새겨진 신용카드도 받게 되었다. 그 무렵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다. 보통의 직장인 커플처럼 우리도 주말이면 데이트를 했다. 삼청동 카페에 앉아 바삭한 벨기에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수다를 떨기도 하고, 멀티플렉스 극장 앞에서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끙끙거리다가 '결정 장애'를 탓하며 떠들썩하게 웃기도 하고, 손을 잡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거닐기도 했다. 일곱 살 나이 차이에도 우린 제법 잘 통했다. 물론, 이따금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한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 늘 남들보다 서너 걸음 뒤에서 쫓아가기 바빴던 내 인생이 처음으로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나로 인해 그녀가 기뻐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것은 인생의 수많은 성공과 성취와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기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결혼을 하는 걸까? 수많은 증인을 불러 공인된 형식을 빌려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다. 이런 행복한 생각을 하다가도 불현듯 아주 최악의 파국을 맞이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나는 결혼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기억 때문일까? 또다시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예기치 않음이 출현할까 나는 불안했다. 혹시, 이 사랑이 내 손아귀를 벗어날까 전전긍긍하면서.


길을 걷던 그녀가 차가워진 나의 두 손을 마주 잡고 온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비벼주었다.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나를 보고 선 그녀의 풍성한 머릿결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넘실거렸다. 그 순간, 신선한 공기가 얼굴에 감싸들었다.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결국, 결심한 것에 대해선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녀의 장점이 우리를 결혼으로 이끌었다. 2년간의 연애 끝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신혼집을 마련하고 가전과 가구를 그 안에 채워 넣었다. 아내는 결혼 2개월 만에 임신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지만 나는 왠지 어긋나야 할 것 같고, 조마조마한 삶을 살아야 할 거 같았다. 가슴속에 뭔가 묵직한 것이 똬리를 틀고 앉아서는 "안주하지 마!, 지금 자리에 안주하지 마! 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가야지."라고 속삭였다. 만삭의 아내도 그런 비슷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오빠 하고 싶은 거 해봐. 나는 따라갈게." 아내의 말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결 상쾌해졌다.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낯선 곳에서 누리는 쉼과 즐거움을 위한 휴양이 아니라 어두운 내 마음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열등감과 수치심의 편린들과 마주하는 내면으로의 여정이 될 것만 같았다.




아내는 며칠째 10주년 기념 귀걸이를 하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아내의 얼굴에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밝디밝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당신 그거 알았어?"

"그거 뭐?"

" 귀걸이가  손예진 귀걸이라네. 손예진이 드라마에서  귀걸이하고 나와서 한국에서는 완전 완판된 모델이래."

"아 그래? 몰랐는데. 나는 그냥 당신 취향의 디자인이라 산 거야."

"역시 우리 남편 감각 있네."

기분이 좋다. 아내의 칭찬은 늘 나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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