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열두 발자국]
인간의 마음은 굉장히 오랫동안 과학적 방법론이 적용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데카르트가 cogito ergo sum 을 얘기하면서 주체라는 철학적 개념을 세운 것도 프로이트가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리비도와 같은 개념적 자아를 형상화 한 것도 과학적 실험과 추론의 결과라기 보다는 위대한 사상가의 인문학적 통찰에서 기인한 면이 컸죠. 물론 그 통찰이 발현된 원인은 이 세기의 천재들이 알게 모르게 무의식 속에 축적해온 인류 역사의 지혜일테지만 명시적인 '과학'적 방법론으로 '인간의 마음'을 미시적으로 해부하기 시작한 역사는 전체 과학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지혜는 통찰일 수도 도그마일 수도 있는것이죠.)
그런 점에서 정재승 교수는 가장 오랫동안 불가지의 영역이었던 인간의 마음을 '뇌과학'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대중적인 학자입니다. 그의 글은 수많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사례로 들어 논지를 전개하지만 결론적으로 글을 관통하는 주제는 단 하나입니다. '그 이유를 증명 할 수 없는 결과는 어떤 것도 없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봤을 때 '나는 아무 문제 없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정신 건강 그 자체인 사람도 소수 존재 하겠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생 인류의 대부분은 결정장애를 가졌거나 과거의 망집에서 쉽게 벗어 나지 못하거나 논리보다는 감성에 쉽게 휩쓸리고 음모 이론을 선호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괴로워하거나 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에 짓눌려 있죠. 이 책에서는 인간의 뇌와 의식의 메커니즘을 토대로 이런 인간 심리의 연원을 과학적 관찰의 결과를 토대로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사실 이런 과학적 논증의 프레임에 들어가면 저자의 논리에 이견을 제시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아 그래서 그런거구나. 이게 맞는거구나 하는겁니다. 더 정확한 연구/검증 자료를 들고 오거나 과학이 아닌 다른 방법론을 들고 오거나 하지 않는 한 말이죠.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뇌를 기반으로 한 인간의 의식의 메커니즘은 명확하게 분석했지만 인간이 그 내적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야 하는 외부 변수(사회, 문화, 정치, 기술 발전, 생존의 정글...등등)에 대한 시각은 사실 너무 낙관적이면서 주관적이라서 좀 당황했습니다.(인문학 에세이가 아니라 과학자의 강의인데??) 저자 본인이 카오스나 나비이론, 프랙탈과 같은 복잡계이론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너무 단순합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인류 사회를 긍정적으로 낙관하는 건 호감갈만한 태도입니다만 뛰어난 뇌과학자이자 인문학적 소양도 있는 학자 정재승에게 개인 의식의 집합이 이루는 시스템적 혼돈을 예측하고 해법을 제시해주길 바란 건 너무 과도한 기대였을까요. 그냥 과학적 논증을 기반으로 한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자기계발서에서 책이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이 책에서 '혁명'이나 '창의, '미래, '상상력', '스마트함'과 같은 단어에서는 객관적인 시선이나 가치 중립적인 서술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저자에게 이 단어들은 선의와 희망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과연 그게 맞을까요? 역설적으로 정재승 교수가 생각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 프레임에 대해 가장 큰 의문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아니 혹시 어쩌면 이런걸까요. 정재승 교수는 본인의 책 내용과 같이 의지로 낙관하며 현실을 유토피아로 변화시킬 신인류의 탄생을 기대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런 뉴타입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고 정치 시스템을 갈아 엎고 세상을 바꾸게 되면 저 같은 레밍들도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 행복해질 가능성도 생길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