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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씨 Sep 05. 2021

불안이 시작된 날

사랑하는 법보다 눈에 띄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운 시절의 기억


어린 시절 내 동생은 뭔가 잘못을 하면 단 한번도 부모님께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었다. 온 집이 떠나가라 악다구니를 쓰며 분노로 온 몸을 벌벌 떨며 집안의 물건을 집어 던지던 그녀와 절망적인 표정으로 두서 없는 분노의 괴성을 지르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벌벌 떨며 눈치를 보던 어머니의 모습. 이것이 나에게 가장 익숙한 유년기의 모습이었다.


사실  시절 동생이나 나나  특별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었다. 밖에서 사고를  것도 아니었고 딱히 눈에 띄게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었다. 불량 식품 먹지 말라고 하면 먹지 않고 오락실 가지 말라고 하시면 가지 않았던 반항기라곤 찾아   없던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동생 역시  지금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딱히  밖의 모습은 기억에 없지만 광견 같은 집안의 모습과는 달리 밖에서는 그저 조용하고 살짝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수준의 아이였고 사고를 치거나 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저지를 법한 무슨 소소한 잘못으로 남매가 부모님께 같이 혼나게 되는 상황이 되면 그냥 잘못했습니다 한 마디 하면 될 상황을 내 동생은 언제나 거대한 재앙으로 만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왜 나만 혼내냐며 바락 바락 악을 쓰며 문짝을 걷어차고 욕을 하는 동생과 수십 분간 싸우고 난 아버지 어머니는 진이 빠져서 그 동안 납작 엎드려 무릎 꿇고 있는 나에게는 그저 진저리를 치며 '방에 들어가 공부해'라는 말만 중얼거리셨고 나는 저린 다리를 억지로 펴고 방으로 들어가 책을 펴고 공부 하는 척을 하는 게 루틴이었다.


아마 동생은 그렇게 방으로 사라지는 나를 보며 더더욱 자기만 차별대우 받고 자기만 혼나서 피를 토할 정도로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나는 동생이 자는 동안에 나를 죽이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난 동생의 마음 따위는 읽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그 당시에는 그녀가 가족은 고사하고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피하는 게 상책인 괴물이라는 생각만 했다. 솔직히 난 단란한 가족이란 걸 지금까지도 이론과 상상을 통해서만 그려낼 수 있다. 그리고 결국 만들지도 못했지만.


상황이 늘 그렇게 돌아가다보니 부모님은 뭔가 자식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인지 칭찬이든 훈계든 한쪽에게만 할 바에는 아예 회피해버리셨던 것 같다. 그렇게 참고 억누르고 기묘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가 뭔가 한 마디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상황에 아버지가 어설픈 훈육을 시도 하면 동생이 컴플렉스에 가득찬 절규로 맞받아치고 또 다시 고성이 오가고 어머니는 벌벌 떨고 나는 눈치를 보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난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 분들은 진심으로 자식들을 아꼈고 자식들을 위해 뭐든 하셨다. 허나 감정 표현은 극도로 자제 되었고 대화가 서투르다보니 서로를 이해할 만큼 마음을 열었던 기억은 없다. 너무나도 서로가 조심스러워서 사랑 받는 것으로 추측되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확신은 없었다.


오랫동안 그 어린 시절 첫 단추부터 이상하게 꿰어졌던 동생과의 관계에 대해서 늘 깊은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기이할 정도의 열등감과 발작에 가까운 증오의 원인은 도무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와 나는 수십 년을 같은 집에 살았지만 어떤 대화의 기억도 없다. 대화 없이 이 뒤틀린 관계를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알 수 없는 원인을 억지로 해석하려다 보니 '아 내가 뭔가 잘못을 한건가. 내가 쓰레기인건가...' 와 같은 자학적인 결론 밖에 내지 못했다. 죄를 저지른 기억이 없는데 죄인이 되어버리는 대상을 만나는 것이 편할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감정적 자산도 없는데.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생각은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모든 갈등을 병적으로 회피하며 살아온 나날의 시작 지점을 거슬러 올라가 오랫동안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꺼내 본 것 뿐이다. 긴장 상태와 갈등 상태를 회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어린 시절에 미움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 받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험을 쌓아 올렸다면 인생 궤도가 이런 식으로 흘렀을 지 가끔 궁금하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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