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가 소환한 스무살 그 시절
스무살 그 시절이 갑자기 소환되다
...봄볕을 받으며 나풀거리는 한 마리 나비는 아름답지만 초원을 뒤덮으며 떼지어 이동하는 수만 마리의 나비 무리는 얼마나 끔찍한가. 히치콕의 '새'처럼, 본능에 이끌려 목숨을 버리는 레밍 무리처럼 개인의 자유의지를 잃고 집단 속에 묻혀 살아가는 삶은 비극이다. 나는 오직 생존을 위해 저항을 포기하기보다 영원한 고독 속에 살더라도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손에 넣고 싶다...
- 97.06.29
D.P를 보다가 군시절에 적었던 일기장 몇 권이 아직 있다는 게 생각나서 먼지 풀풀나는 노트를 꺼내 뒤적 거리다 눈에 딱 들어왔던 구절.
와 스무살 무렵에 난 저런 막 궁상맞고 오그라드는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긴 뭐 24시간 날 말려 죽이려고 작심한 고참들이나 민폐 쩌는 관심 사병 때문에 덩달아 고생 하던 동기들이나 혹시 자살이라도 해서 사고나 내지 않을까 좌불안석 하던 간부들 사이에서 도망쳐서 정말 진심으로 영영 고독하고 싶었던 그 시간들이 정말 어이없게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 난다. 아 진짜 민방위도 언제 끝났는 지 가물 거리는데 이런 건 또 기억하고 있니 세상에.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니 자유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으니 그저 외롭지 않게만 살면 좋겠다 싶어. 그렇게 절실했던 고독한 자유가 대체 어떤 감정인지 무슨 의미 였는 지 사실 이젠 잘 기억이 안남. 남들한테 내가 끼어 있는 무리가 새 떼로 보이던 해충 무리로 보이던 대체 뭔 상관이람. 그저 그 무리 사이에 끼어서 살아 있는 동안 쓸쓸하지 않게 날개 부비면서 날아가다 명이 다해 죽는 거면 되는 거지.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저 상황이 바뀌고 남은 시간이 바뀔 따름이다.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 거겠지. 미안 스무살 친구. 너도 힘들었지만 나도 나름대로 살아내느라 피곤하다고.
P.S 그런데 한호열 상병 같은 사람이 진짜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