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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씨 Sep 13. 2021

사랑 없이 사랑하는 법

어떻게 사랑 없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 오직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 이거
우주 기적 아녀.
- 황지우 '발작'


애정과 상호 공감이 없는 관계가 도대체 어떻게 지속이 되는지 사랑이 넘치는 평범한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되겠지만 의외로 이런 케이스는 아주 흔하다. 특별히 애써 찾지 않아도 폭력 남편 곁을 떠나지 않는 아내나 애정 없이 필요할 때만 호출하는 어장관리녀 근처를 맴도는 호구들이나 아예 무슨 상상임신 마냥 상대방의 무심한 시그널을 애정에 찬 징후로 포장해가며 관계를 창조하는 이들까지.


상호 신뢰나 애정, 공감 같은게 없어도 그냥 어떤 존재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거나 망상의 단서로 활용되어 현재의 시궁창을 합리화 하는 근거가 되어 준다... 는 이유로 이런 나사빠진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빈번하다는 게 중요 포인트. 이런 불합리하고 글러먹은 '관계'라도 일종의 관계기 때문에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고 존재의 이유를 찾는 수많은 약한 사람들은 이 덫에 걸릴 수 밖에 없다.


어떤 배려나 감정적 공감 없이도 유지가 가능한 (계약 혹은  주종)관계가 성립되면 그 관계의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을에게 수행해야 할 의무(애정이나 배려...뭐 기타 등등)는 던져버리고 '막 대해도 좋은' 권리를 얻게 된다. 일종의 감정적 착취 프로세스가 성립하는데 이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갑은 을을 배려하거나 예의를 지켜야 할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점점 희미해지고 을 역시 건강한 관계 정립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내세워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폭력에 길들여진다.


결국 을이 집착하는 망상속의 존재와 실제 현실의 대상(갑)의 갭을 인지하고 을이 관계를 주도적으로 해소하는 수밖에 없는데 나름 정당(?)한 착취 권한을 가졌던 갑의 입장에서는 새삼스럽게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을의 반응이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너도 좋아서 그랬던거 아니야? 혹은 너도 그 동안 좋았잖아?와 같은 갑들의 흔한 항변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나마 양심적인 갑이라면 뭐 좀 아쉬워하다가 적당히 애정관계가 애초에 성립한 적이 없었음을 시인하고 (이게 본인 스스로도 철저히 속이면서 감정적 착취 프로세스 상에서 이득을 챙겼을 것이기 때문에 시인하는 게 쉬운일은 아니다.) 관계 종료에 동의하겠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없던 감정은 절대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 책임없이 감정적 특혜를 누려온 입장에서는 이런 무형자산의 식민지를 해방하는데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이 꿀을 어떻게 빨았는데!


사랑을 갈구하는 관계의 약자가 무조건적으로 무고한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 애정없는 관계를 더 아비규환으로 몰아간다.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이 물리적 사회적으로 더 강한 영향력, 폭력을 행사할 수 있고 공감 능력이 거세된 짐승이라면 사랑의 소작농에서 단숨에 폭력적인 스토커로 진화하는 사례도 흔하다.  결국 사랑의 부재 혹은 불균형은 이렇게 사람을 피해자 혹은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서로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건 진심 기적 아닌가. 아예 무관심해지던가 자발적인 피해자가 되던가 아니면 거짓 사랑을 갈구하는 괴물이 되는 선택지를 모두 피해내고 서로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당신은 정말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그걸 아셔야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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