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전쟁터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예술을 추구하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 서머셋 몸
난 잘하는게 대체 뭘까?
누구보다도 내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서야 착각에서 깨어난건지 혹은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변질되어 원형을 잃어 버린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난 잘하는 게 대체 뭘까? 내가 이 정글에서 살아 남을 무기는 뭔가?
조리있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허나 실상은 두려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면 언어장애라도 있는 것 마냥 의도하지 않은 멍청한 말을 연신 알아먹지 못할 소리로 중얼 거리는 게 나라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빛이 의혹이나 지루함 혹은 의문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숨도 막히고 말문도 막힌다.
글쓰는 걸 좋아하고 어쩌면 좀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근거없는 고양감에 써내려간 내 문장을 다시 곱씹다 보면 대체 내가 무슨 소리를 하려고 혹은 감추려고 이런 비문들을 오픈된 공간에 남발하는 건지 부끄러움에 오싹해진다. 난 대체 뭔 근거로 글써서 먹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와 같은 미친 망상을 했던가. 얼마전에 들었던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 먹을 글을 쓰라는 충고엔 부끄러워 죽을 뻔했다.
아무리 복잡한 상황이라도 문제를 파악하고 최소한 욕 안 먹을정도로는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능력이 남은 시간 동안 밥굶지 않고 살게 해 줄 무기가 될꺼라 믿었었고. 허나 요즘은 해야 할 일을 무슨 면벽 수련이라도 하는 거 마냥 들입다 파봐도 대체 무슨 상황인지 무슨 소리인지 파악이 되질 않고 그저 모르는 걸 아는 척 하고 있는 모습을 혹여나 주변인들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심을 한껏 만끽 중이다.
이대로 가다 이 업무가 폭망하는데 내가 주범으로 지목당하기라도하면 어쩐단 말인가. 아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건 못해도 최소한 뭘해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아는 상태에서 마음 편한 피곤함과 싸우는게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이었다면 이젠 불안감과 무지에서 오는 공포에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다 그로기 상태로 퇴근하는 것을 반복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게 나의 회사 업무다. 정신적으로 몰리니 매일 악몽을 반복하고 차라리 아프길 바라는 마음이 하늘에 닿은 덕인지 진짜로 몸도 아프다.
스트레스 좀 풀기 위해 붙잡는 게임도 업무의 연장 같고 과도하게 감정이입하는 스포츠 관람은 분노 바이러스의 근원이고 비현실적인 드라마는 시궁창 같은 현실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고 책 한 권 읽다 침침해지는 눈은 서러움의 원천이고... 불안과 공포를 잠시나마 잊는 것도 쉽지 않다.
총알이 다 떨어진 채 끝나지 않은 전쟁터에 다시 투입된 병사의 심정이 이럴려나. 몰핀이라도 가슴에 콱 꽂아 넣고 무력한 현실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회사 가기 싫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