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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Mar 11. 2022

찌르는 사람 따로, 찔리는 사람 따로

시험관 시술 기록을 시작한 이유

 주말 아침 일곱 시 삼십 분, 남편과 내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부스스 일어난 우리는 각자 위치로 이동한다. 우선 항균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고 나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뒤 배를 걷는다. 남편이 능숙하게 주사약을 소독한 뒤 주삿바늘을 꽂고 '20'눈금에 맞춰 주사약 용량을 맞추는 동안 나는 앉은 자세에서 뱃살을 집고, 알콤 솜으로 한번 쓱 닦으면 주사 맞을 준비 끝. 이번 주삿바늘은 아주 얇은데도 남편은 놓을 때마다 긴장돼 보인다. 내가 말한다. "그냥 푹 찔러!" 어느 순간 배꼽 주변 살에 바늘이 들어가고 아침 미션 완료. 시험관 시술을 하는 부부라면 흔한 풍경일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 하니까 주중 아침 일찍 주사를 맞았다면, 주말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예전에 시아버지가 당뇨 때문에 매일 배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말을 남편으로부터 들었을 때, 내가 맞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불쾌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 주사를 하든, 누가 놓아주든 병원에서 맞는 주사도 썩 유쾌하지 않은데 절대적으로 편안해야 할 내 집, 내 공간에서 주사라니. 게다가 엉덩이도 아니고 배에?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장면을 정면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일매일, 안방 침대 위에서 두세 개의 주삿바늘에  '내가' 찔리는 일을 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타인은 지옥이라 했던가.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직접 겪어보지 않은 남의 일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거나 별 거 아닌 일로 치부하고, 평가하며 다른 사람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떠벌린다. 시험관 시술이란, 그 과정 자체도 지난하지만 주삿바늘이나 호르몬 약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함부로 던져진 다른 사람들의 '말'이며, 더 조절하기 힘든 것이 시술받는 당사자의 멘털이다.  나 역시 시험관 시술이 어떤 과정인지 잘 몰랐고 누군가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가진다고 하면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꼭 가져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시험관으로 1차 임신 시도에 실패하고 2차를 진행 중인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난임을 겪는 부부들에게 얼마나 경솔하고 잔인한 일인지 깨닫는다.



 시험관 시술을 결정하게 된 시점부터 1차, 2차를 지나며 몸소 체험한 시술 과정을 기록하면서 내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되짚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혹시 주변에 난임으로 병원을 다니거나 휴직을 하신 분을 가족으로, 친구로, 동료로 두어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혹은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고 싶다면 알고 계셔야 할 최소한에 대해 써보려 한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어쭙잖은 위로는 때로 또 다른 화살이 되어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될 수 있기에.   



 그리고  언제 빛이 보일지 르는 터널 안을 묵묵히 걷고 있는 모든 난임부부들과 공감을 나누어보고 싶다. 그중에서도 오늘도 호르몬에 절여진 채 빵빵해진 배와 욱신거리는 가슴 통증을 견디는 아내들, 회사 화장실에서 혼자 배에 과배란 주사를 놓고 난임 휴가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보고 고민하는 여성들, 아이를 품지 못하는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감에 괴롭고 아픈 과정도 소리 없이 견디는 이들, 난자 채취라는 고통의 관문을 지나 이식할 배아 상태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루하루 질퍽거리는 늪을 헤매는 심정인 그녀들과 말이다.



사실 난임의 원인은 여성에게 있을 수도, 남성에게 있을 수도, 둘 다에게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 책임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라는 것이다.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 난임 치료의 주삿바늘에 찔려야 하는 쪽은 오직 하나의 성(性)으로 정해져 있다. 



일방적인 희생이 필요한 일임에도 그녀들은 하루하루 강하게 이겨내고 있다. 아이만 없을 뿐, 내가 난임병원에서 본 모든 여성은  이미 '엄마'였다. 그리고 워킹맘보다 대단한 분들이 워킹 시험관 우먼이었다. 생체시스템을 뒤흔들어 놓고, 난소를 찔러대 붓고 아픈 배를 부여잡고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하는 그 외로운 길에서, 예비 엄마들이 힘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손을 잡아줄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남편,  양가 부모, 그녀들의 회사, 가장 궁극적으로는 정부 그들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묻고 싶다.


그녀들과 가장 가까운 남편들은 그 아내들을, 시부모는 며느리, 그리고 사회는 '출산율'의 열쇠가 될 그녀들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있을까? 니, 한 순간이라도 진정성 있게 공감한 적은 있는 걸까? 사보다 더 날카로운 언행으로 그들을 한 번 더 찌르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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