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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Mar 11. 2022

딩크에서 시험관 결심까지

남성을 위한 '웨딩 산전 검사'도 필요하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몇 년 간은 '암묵적' 딩크로 살았다.


남편과는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아이가 생긴 이후 소원해진 한 부부의 다큐를 봤던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아이도 중요하지만 부부 사이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 역시 동의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면 왜 결혼을 하느냐,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자기 검열이 엄중했다. 그리고 이 사회가 한 아이가 티 없이 맑게 해사하게 자랄 수 있는 곳인지에 대한 회의가 늘 가득했기에, 결혼 후 몇 년 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도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아이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라고 생각하는 부부였다고 할까.



그렇다 해도 결혼 기간 동안 아이를 가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내쪽에서 아이를 갖길 원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가 되기를 원했다기보다는 일종의 도피 목적이었던 듯싶다. 당시에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절실한 욕망에 시달리고 있었다. 연봉 수준이 괜찮았고 안정적이었지만 내 기질, 성격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하게 불화하는 그 일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육아휴직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 나이가 만 34세. 생물학적 '노산'의 기준인 35세를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난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AMH 3.7로 괜찮은 수치였고, 특별히 이상 소견을 보이는 점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소극적이었다. 그때까지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고, 마흔이 넘어도 언제든 원하면 아이는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임 검사를 함께 받아보자고 설득했지만 끝내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후, 남편은 무정자증이라는 난임 판정을 받았고 고환에서 정자를 채취해야만 했다. 아이는 언제든지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었던 것이다. 난소 기능 저하라고 볼 수 없는, 나쁘지 않은 수치라고는 해도 나 역시 2년 새 AMH가 2점대로 낮아져 있었다.


우리의 예만 보더라도 절대로 마음이 바뀔 리 없는 확고한 딩크족이 아니라 '나중에 혹시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부부가 있다면, 난임 검사는 일단 받아보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하는 이유다.  


남편은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자 그제야 2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 나이 곧 마흔을 앞둔 시점에.


뒤늦게 난임 검사를 하고, 시험관 시술을 결정하면서 되돌아 본다. 나 홀로 난임 검사를 받았던 시기에 나는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던 걸까? 회사에서 도피하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그 때 엄마가 되었다면 후회을까?


아니, 오히려 우리 부부는 더 빨리 마음을 바꾸었을 것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도하는 게 훨씬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도 보다 빨리 알게 됐을 것이다. 그 타이밍을 놓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부가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도,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이는 찾아와주지 않는다.




'난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여성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양쪽 모두에게 있거나 남성에게만 있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남성 원인으로 난임이 생기는 비율은 40%에 이른다. (출처: 삼성서울병웡 남성 난임 질환 백과)

 


산부인과에서 홍보하는 '웨딩 산전 검사' 주로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것은 그래서 문제가 있다. 그 기저에는 '난임'의 책임을 여성 쪽에 전가하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 임신이 잘 안 되면 여성들은 자기 몸이 차서, 나이가 많아서라고 지레짐작하고 죄책감을 가지는 경우가 흔하지만 남편들은 자기 정자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잘 상상하지 못한다.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에 대해 며느리 탓을 하던 시가가, 검사를 해보니 남편의 문제로 드러나 민망해하더라, 그 후로는 며느리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혼전 난임 검사 필요하다면 남녀가 함께 해야 다. 여성은 피검사로 호르몬 수치, 자궁경부 검사, 자궁 초음파, 나팔관 조영술 등 검사하는 데만 한 달 이상 걸리지만 남성은 정자 채취 하나면 된다. 물론 병원 내 은밀한(?) 공간에서 스스로 채취해야 하는 게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건 사실일 테다. 하지만 여성 쪽은 병원에 갈 때마다 소위 굴욕 의자에 앉아 치부를 남에게 보여야 하고, 나팔관 조영술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공포의 관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둘 중 누구에게 문제가 있든, 설령 남자 쪽에만 문제 발견돼 시험관 시술을 결정하게 되더라도 그 과정을 감내해야 하는 건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남편도 약을 쓰고 주사를 맞아가며 고환에서 정자를 채취해야 했지만, 나처럼 긴 기간 동안 주사를 맞고 약을 쓰지는 않아도 된다. 나는 난임 검사상 별 문제가 없음에도 남편보다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호르몬제에 노출되고  난자 채취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려야 한다.


결혼 전 남녀들 중에 시험관 시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도 전혀 알지 못했고,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원하게 될 줄도 몰랐고, 시험관 시술을 하게 될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10명 중 1명은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다고 한다.   과배란 호르몬제 투여와 난자 채취라는 힘겨운 과정을 겪어야 하는 여성의 숫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은 함께 난임 검사를 아보는 것도 좋을  텐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결혼을 앞둔 여성들에게만 '웨딩 산전 검사'를 권한다. 험관 시술 과정을 오롯이 여성이 겪어야 하는 만큼 오히려 비 남편들에게 '웨딩 정자 검사'를 받도록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시험관 시술을 이미 시작한 부부라면 편들께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꼭 기억하시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임신, 출산도 여성 생체 리듬에 무리가 가는데 시험관 시술은 그 이전 단계부터 여성 몸을 헤집어 놓는다. 그 과정은 산 넘어 산이고, 하나하나의 산은 과연 넘을 수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 컴컴한 골짜기를 아내 홀로 건너게 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난임의 시작부터 극복까지, 많은 남편들이  무지하다. 아내 몸에 매일같이 약물이 들어가고, 서너 개의 주삿바늘이 꽂히는 데도 그 성분을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 무관심에 홀로 눈물을 삼키는 아내들의 글을 보고 있자면 슬프고 허망하다.



남편들도 자신의 정자가 건강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좋겠다. 설령 아내가 나이가 많거나 난소 기능이 저하돼 시험관 시술을 결정했다 하더라도 아내가 맞는 주사 이름이 뭔지,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어떤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하고 하루에 운동은 얼마나 해야 하는지,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공부해주면 좋겠다. 혼자 배에 주사를 찌르게 놔두지 말고 되도록 주사를 놔주고, 피가 나고 멍이 드는 배를 닦아주길 바란다. 몸은 힘들더라도 마음만은 부디 외롭지 않게 지켜주기를. 그것은 배려가 아닌 남편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이며, 당연한 역할이 아닐까?



남편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난임 극복은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기까지 그 믿음을 가져야 함을 남편에게 강조했고, 지금 우리 부부는 그 신념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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