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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May 23. 2018

<케이크메이커>, 삶이 끝나도 관계는 계속된다

같은 사람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


*브런치무비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




제목만 알고 이 영화를 봤다. <케이크메이커>라니. 빵 만드는 사람에 관한 영화인가? 정도만 생각하고 갔다. 결론적으로 맞는 말이긴 했다. 빵 만드는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그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리뷰나 스토리 등을 미리 알고 가지 않는 것이 더 감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줄거리 위주의 후기는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이 영화는 정말 '케이크' 처럼, 갑자기 다가와 좋은 영화를 보았다는 달콤한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 결론도 일종의 '열린 결말'이다. 관객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배우의 표정을 읽으면 된다. 누군가는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배우의 표정을 그리움으로, 누군가는 증오로, 누군가는 안타까움으로, 누군가는 사랑으로 읽을 것이다.

영화 중간 중간에도 많은 해석을 낳을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케이크를 만드는 장면은, 누군가에겐 주인공들의 감정을 정리 해 보는 시간을 주는 장면일 수도 있다. 반대로 누군가에겐 오히려 긴장감을 부여하는 장면일 수도 있다. 또 모종의 성적인 의미로 다가갈수도 있다.(참고로 감독은 이러한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영화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음악도 슬픔, 고요,그리움 등 다양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렇게 해석의 여지가 다양할 수 있는 것은 영화가 극히 절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길고 장황한 대사도, 나레이션도, 화려한 영상 그래픽이나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들도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화려한 건 케이크 정도이니까.






이 영화를 관람하는 데는 다양한 포인트가 있다. 자신이 어떤 면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내가 관심을 갖고 본 부분은  '사람들 간의 관계'다.  '관계의 연속성' 이랄까. 이 영화에선 '같은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관계를 생성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극중 주인공들인 토마스와 아나트는 오렌이라는 같은 사람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오렌이라는 존재가 사라진다. (사망했다) 급작스럽게 사랑의 대상이 사라진 이들의 마음은 황망하기만 하다. 화살은 계속 당겨지는 데 과녁이 사라진 꼴이다.

결국 독일인 토마스는 이스라엘로 간다. 거기서 오렌의 가족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가 아나트의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역설적이게도 오렌이 살아있을 때는 절대 침범(?)하지 못한 그의 다른 영역을 그가 죽어서야 그는 파고드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케이크(빵)를 만든다. 케이크는 오렌과 그를 이어준 매개체다. 그는 열심히 케이크를 만들고, 그 케이크는 아나트와 그 가족들이 토마스에 마음을 여는 매개체가 된다. 같은 사람을 사랑했지만, 오히려 그 사실 때문에 연결고리가 전혀 없던 (있을 수 없던) 사람들이 오히려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 연결된다.

극중 오렌의 어머니가 나온다. 영화에서 명확히 말해주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대사 등에서 오렌과 토마스의 관계를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오렌이 살아있었다면, 오렌의 어머니는 절대 토마스를 용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히려 아들이 떠난 지금, 어머니는 토마스를 불러 음식을 먹이고, 아들 방을 구경하라며 초대한다. 오렌의 어머니와 토마스가 바라보는 눈빛에서 같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종의 따스함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 연결되지 않는다. 독일 베를린과 이스라엘이라는 '대립'되는 공간도 토마스의 '케이크'로 연결된다. 설탕과 버터 등이 잔뜩 들어간 '빵'과 꼼꼼한 인증을 받아야 하는 '코셔' 음식은 자유로운 '독일 베를린'과 엄격한 종교적 질서가 있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듯 하다. 토마스는 처음에는 '빵'을 만드는 허락을 받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허락을 받는다. 이스라엘이라는 공간에서, 엄격한 유대교 질서에서, 오렌의 가족에서 거부당하던 토마스가, 자유가, 케이크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케이크메이커'다. 우린 살아가면서 계속에서 '빵'을 만든다. '만들어야 한다'.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생기는 관계, 원해서 생기는 관계 등 다양하다. 끊임 없이 정성스레 쿠키 반죽을 만들어간다. 그 쿠키가 달콤할지, 퍽퍽할지, 쓰디 쓸지는 만들어봐야 아는 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더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까. 극중 토마스가 반죽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아나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손을 따뜻하게 하세요. 반죽이 너무 차가워지면 쿠키를 만들 수 없어요." 어쩌면 이 말이 꽤 적중률이 높은 답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쿠키를 만드려면, 우선 내 손이 따뜻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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