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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민 Aug 18. 2016

고양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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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더벙이가 죽었다. 병원에 데려간 지 이틀만이었다. 그제 아침 고양이가 나를 깨우지 않았다. 항상 아침을 달라고 깨우곤 했었는데 그제 아침에는 내 발치에서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심각하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도서관에 가려던 짐을 풀고 더벙이와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오전까지 활력이 조금 떨어졌을 뿐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던 더벙이가 정말 이상하다고 느낀 건 민정언니를 만나러 나갈 준비를 할 때였다. 호흡이 이상했다. 숨쉴 때마다 흉부를 들썩였다. 약속을 취소하고 달려간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폐렴이었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돼 있다고 했다. 그간 더벙이가 아팠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놀랐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폐렴과 못 먹어 생긴 약간의 탈수 증상을 제외하면 혈액검사 결과는 좋은 편이었고 더벙이는 아직 3살이었다. 폐렴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새벽 더벙이가 토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외출의 긴장과 흥분이 가시고 다소 진정됐을 때 먹여놓은 간식과 약을 다 토했다. 상태는 나빠보였다. 숨이 가쁜 더벙이는 잠들지 못했다. 졸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모로 누워, 큰 눈을 가끔 깜빡이며 가슴을 끊임없이 들썩였다. 좋지 않은 몸 상태에 움직일 수 있는 것이 꼬리밖에 없다는 듯이 꼬리로 탁탁 바닥을 쳤다. 간식을 들이밀었다가 거절당하고 한참 더벙이를 바라봤다. 더벙이가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자고 나인지 더벙인지를 토닥이다가, 결국 5시 무렵 잠들었다.


일어났을 때 상황은 더 나빠져 있었다. 더벙이는 내가 잠들기 전 그 상태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다만 발바닥이 차가웠다.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병원이 문 열기를 기다려 달려갔다. 나는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을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 게워냈으니 먹은 게 없고, 폐가 망가져 숨을 편히 쉴 수가 없고, 그래서 회복에 필요한 잠을 잘 수 없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수액을 맞추고, 산소케이지에 넣어서 호흡을 편히 해주고, 잠을 좀 자도록 하면 컨디션이 올라올 거고, 그때부터 폐렴 치료를 하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의사의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저녁에 데리러 오라고 했다. 더벙이가 나을 거라는 건 너무 당연해서 입원시켜 놓고 돌아오는 길에는 도서관도 들렀다. 밥도 사먹었고, 밀린 잠도 잤다.


그 기대가 깨진 건 3시 반 병원에 전화를 걸었을 때였다. 나는 더벙이가 잘 회복하고 있다는 말, 예정대로 5시에 데리려오면 되겠다는 말을 들으러 전화했다. 하지만 의사가 한 얘기는 달랐다. 아침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남편과 병원으로 달려갔다. 더벙이는 산소 케이지 안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체온이 자꾸 떨어져서 그걸 막기 위해 케이지 안의 온도를 올려 놓았는데 그게 너무 힘든 것 같았다. 의사는 더벙이의 전반적인 대사 기능이 무너져 예후가 희망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호흡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공기의 온도가 낮아야 해서 처음에 케이지 바닥만 따뜻하게 하고 실내온도는 낮췄더니 체온이 34도까지 떨어지더라고 했다. 대사의 가장 기본인 체온 조절부터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 이미 들어서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말하는 의사의 말투가 너무나 평화롭고 예사로워서 그의 뺨을 후려쳐주고 싶었다.


집으로 데려온 더벙이는 곧 죽을 것처럼 숨 쉬고 곧 죽을 것처럼 차가운 곳을 찾아다녔다. 곧 죽을 것 같아서, 간호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간호를 하겠다고 한다면 물과 치료식과 약을 억지로 먹이고 따뜻한 곳에 가둬놓아야 했다. 더벙이는 간호를 거부했다. 전기장판을 틀어주었지만 잠시도 그 위에 있으려 하지 않았다. 호흡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인 것 같았다. 붙들어매려 하면 내가 건드리는 게 몹시 성가시고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안간힘을 다해, 발톱을 세워 나를 밀어냈다. 힘이 너무 세서, 이렇게 기력이 없는데 힘이 너무 세서, 더벙이의 고통을 짐작했다. 손등에 고양이 발톱 자국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가운 욕실 타일 위에서 점점 더 호흡이 나빠지는 더벙이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우리가 아는 건 하나였다. 먹여야 한다는 것. 울다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남편과 거부할 힘도 떨어진 더벙이를 붙잡고 회복식과 약, 물을 억지로 먹였다. 소화가 장담되지 않았지만 낮에 맞은 구토억제제 때문에 토하지는 못했다. 그러고서 반짝 호흡이 전보다 진정된 것 같은 기미가 보였다. 욕실에서 걸어나온 더벙이는 내가 앉아 있던 책상 밑에서 잠시 머물렀다. 더벙이가 좋아하는 자리였다.


그때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고양이 저체온증에 대해 검색하고 있었다. 밥과 약을 먹은 더벙이가 호흡이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아서 나는 잠시 희망을 가졌었다. 어쩌면 오늘 밤만 넘기면 기적처럼 살아날 수도 있다고, 내 좋을 대로 생각해버렸다. 그러려면 체온을 잡아야 했다. 아무리 차가운 곳에 있고 싶어한다지만 저대로 두면 체온이 떨어져서 죽을 것 같았다. 핫팩에 따뜻한 물을 채워 더벙이 집에 넣고 담요를 깔았다. 더벙이를 넣고는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다만 공기는 차갑도록 창문 앞에 두었다. 몇 분 뒤 더벙이는 죽을 힘을 다해 거기서 빠져나왔고, 그러느라 너무 많은 힘을 써버린 듯 발작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몰아쉬다가, 그대로 죽어버렸다. 남편과 나는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지나친 희망과 욕심이 더벙이를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경련이 일어나고, 숨이 잦아지다 끝내 멈추고, 사후경직이 오고, 다시 몸이 힘없이 풀어지는 것을, 차례차례, 지켜보았다.


아주 객관적으로는, 그러지 않았어도 죽었으리란 걸 알고 있다. 체온이 자꾸 떨어지고 있었다. 아침까지 버텼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우리는 다만 죽음을 앞당겼을 뿐이고, 어쩌면 더 오래 숨만 남아 고통스러워 하는 것보다 그게 나았을, 수도 있다. 좋지 않은 몸 상태를 견디기 위한 방편이라는 듯 꼬리를 툭툭 바닥에 퉁기던 전날과 달리 죽기 전의 더벙이는 꼬리도 움직이지 못했었다. 숨 쉬는 것만으로 너무 힘들어 꼬리를 돌볼 힘도 없어 보였다. 더벙이는 어젯밤이 아니었다면 오늘 새벽 죽었을 거였다. 물론 그 사실이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지는 않았다.


달밤에 앞마당 아기 귤나무 옆에 더벙이를 묻으면서 미안해서 펑펑 울었다. 아픈 줄 몰랐다. 폐가, 몸이, 그렇게 망가져 있는 줄 몰랐다. 밥 잘 먹고 언제나처럼 내 곁에서 자고 장난감을 흔들면 달려와서, 올 여름 네가 기력에 조금 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도 그냥 더워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오히려 에어콘을 틀어줬다. 에어콘이 틀어져 있는 방을 피해 후덥지근한 방에서 몸을 말고 잠을 청할 때도, 추운 것보다는 따뜻한게 좋은가 보다 속 편한 소리만 했다. 돌이켜 보면 기미들이 없지 않았는데 나는 매순간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네가 건강하다고, 마음대로 생각했다.


들어와서는 막걸리 두 잔을 앞에 두고 남편과 조용히 더벙이를 추억했다. 남편이 더벙이가 너 빨리 기운 차리라고 일찍 갔을 거야 나를 달랬다.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울었다. 그런 게 아니다. 거기에 더벙이의 의지는 없었다. 그런 상상은 나쁘다. 그럼에도 일말의 위로를 찾을 수 있다면 오직 그래서 더벙이가 더 오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는 것뿐이다. 오늘밤이 아니었다면 새벽에 저체온으로 죽었으리라는 사실뿐이다.


결혼하고 제주로 더벙이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친정집에서 더벙이를 키웠으므로 아침에는 엄마와 동생에게 더벙이의 죽음을 알렸다. 그들도 슬퍼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슬픔이었다. 남편의 말대로 어쩔 수 없는 것이기는 했다. 그들은 나와 다르고, 더벙이의 마지막을 보지 않았다. 더벙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들었지만 그들은 모른다. 이미 일어난 죽음 앞에서 가족들의 초점은 나를 위로하는 데 맞춰졌다. 동생은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고양이들은 원래 아픈 걸 감추고, 그걸 몰랐던 게 누나 잘못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누나가 많이 사랑해줬기 때문에 더벙이는 행복했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도 해석할 수 없었다. 더벙이가 나의 사랑으로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더벙이는 그냥 나랑 같이 살게 된 것뿐이다. 선택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더벙이 때문에 너무 행복했다. 때로는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싶게 행복했다. 더벙이를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졸리면 자고 밥 맛있게 먹고 기분이 좋으면 우다다를 하는, 그 단순함에 자주, 많이, 깊이 위로받았다. 밤이 되면 더벙이가 내 발치에서 잠든다는 것, 그게 내 안정의 기반이었다. 내가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 삶은 지속되고 내일은 온다고 믿을 수 있었다면, 그건 오직 오늘 밤도 더벙이가 내 곁에서 자고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다.


그걸 한 순간에 잃어서, 한동안은 힘들 것 같다. 더벙이는 제주에서 1년도 살지 못했다. 3월 17일에 와서 8월 17일에 죽었으니 딱 5개월을 남편과 나와 제주에서 함께 했다. 그 5개월 사이에 제주의 신혼집은 더벙이와의 추억으로 뒤덮혀버렸다. 더벙이가 긁던 의자, 자던 침대, 밖을 구경하던 창틀, 뒹굴던 베란다, 맨날 문앞에 앉아 나가게 해달라고 울던 3층 테라스. 나의 시선은 집의 이곳저곳에 머물고 떠오르는 더벙이의 모습은 끝이 없다. 이 모든 것도 언젠가는 다 희미해진다는 게 당혹스럽고 아득할 뿐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멀리까지 상상했다. 더벙이가 스무 살까지는 거뜬히 살 거라고 믿었고 우리 아이와 더벙이가 같이 자라는 모습을 그렸다. 오늘까지만 울고 더 이상 울지않겠다고 남편에게 약속했지만 나는 아직 자신이 없다.


엄마는 다른 고양이를 또 키울 거냐고 물었다. 먼 미래에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동안은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가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벙이가 아플 걸 대비해 통장에 180만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병원에 오다니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너무 많이 나올지도 모르는 치료비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 더벙이가 제대로 손 쓸 틈도 없이 죽기 전까지 나간 돈은 겨우 35만원이었다. 그래도 의사가 권한 검사 중에 불필요해 보이는 하나는 하지 않았다. 쓴 돈이 아깝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이렇게 가난해서는 고양이를 키워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니, 나의 절망감은 좀 더 깊다. 다음 고양이 역시 몸이 망가지도록 아플 때까지 나는 모를 것이다. 너무 쉽게 10년 뒤, 20년 뒤를 상상하면서, 아픈 고양이를 아픈 줄 모르고 멋대로 사랑할 것이다. 나는 사실 더벙이가 왜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이렇게 부족하면서도, 더벙이를 사랑했다. 너무 많이 사랑하고 너무 많이 의지하고 너무 멀리 상상했다. 그리고 너무 일찍 보내고 말았다. 이 모든 무게가 자신이 없어 동물을 키우려 하지 않았던 내가, 동생이 데려오는 바람에 우연히 맡게 됐던 고양이. 화분에 갇혀 발톱을 세우고 조그맣게 울던, 동생 등에 매달릴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볍던 그 고양이가 동생이 대구로 떠나며 내 차지가 됐을 때, 나는 책임감이 없다고 동생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렇게 함께 하게 된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은 두 해에서 한 계절이 모자란다. 두 번의 겨울, 두 번의 봄. 한 번뿐이었던 가을과, 꽉 채우지 못한 마지막 여름.


첫 겨울이 지나며 꽤 가까워진 너는 내가 여행을 다녀오면 소리를 지르며 반겨주곤 했었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너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아니, 네가 우리집에 오고 난 이후 귀가하는 나의 모든 발걸음들은 너로 인해 가빠졌었다. 창틀에 앉아 달려오는 나를 바라보던 너. 겁이 많고, 너무나 순하고, 제대로 된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던 고양이.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 몰랐던, 나로 하여금 세상 모든 고양이를 새로이 사랑하게 한 고양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나의 고양이.


만화 같은 데서 보았던 것 같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은 어쩐 일인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냥 너는 가쁜 숨을 내쉬다가, 나의 욕심 때문에, 예정보다 조금 일찍 죽었고, 면포에 쌓여 귤나무 옆에 묻혔다. 그 이상의 아름다운 상상은 내게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네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 꿈에 찾아왔으면 좋겠다. 내 꿈에 찾아든 너의 부드러운 목덜미에 코를 박고, 너로 인해 내가 과분할 만큼 행복했다고, 몇 번이고 말해주고 싶다. 내년에 귤이 아주 풍성히 달리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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