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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민 Oct 03. 2016

그 ‘썅년’을 이제 잊어버려요

그래도 연애하겠다는 당신에게 필요한 여덟번째, 이별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

“썅년이었군요?”

“그렇죠, 썅년이었죠.”     


안녕, K. 그게 그날 우리 대화의 끝이었죠. 그날 당신은 지금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 3년 동안 만났던 그녀에 대해 이야기해줬어요. 그렇게 자세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녀가 어떻게 당신을 배신하고 떠났는지에 초점이 맞춰진 잠시 스쳐간 화제였죠. 그녀는 미국에, 당신은 한국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죠. 1년 가까이 이어진 ‘롱디’의 고단함에도 당신은 한눈 팔지 않고 헌신했는데 그녀는 언제부턴가 당신에게 시들해졌고 갑작스레 이별을 고했다고 했어요. 당신은 오래 힘들었고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3개월만에 그녀의 결혼소식을 듣게 됐다고 했죠. 그녀의 양다리를 의심하며 높아지는 당신의 목소리 톤을 듣고 있다가, 제가 말했어요. “썅년이었군요?” 당신은 답했어요. “그렇죠, 썅년이었죠.” 나의 동의를 얻어 기쁘다는 듯이, 그보다 더 적확한 말이 없다는 듯이.



그녀를 썅년으로 기억하는 당신에게


세상엔 ‘썅년 서사’라는 게 있죠. 내가 이야기의 대강만 듣고 ‘썅년’이었냐 물을 수 있었던 것도, 나의 물음에 당신이 무릎을 치며 그렇다 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전에 존재했던 무수한 ‘썅년들’의 서사 덕분에 가능했을 거예요. 예컨대 『건축학개론』의 승민이 서연을 기억하는 방식이 이 서사와 관련이 있고, 『500일의 썸머』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이 그래요. ‘나쁜년(bitch)’들의 전형이 있고, 이 이야기는 그녀들에 대한 거라는.



이 ‘썅년’이라 불리우는 여자들은 ‘진국’인 남자들의 헌신을 배신하고 나풀나풀 다른 남자에게로 가죠. 보통은 그렇게 정착한 남자의 ‘조건’이 조금 더 좋아요. 오해였지만 서연이 가난한 승민 대신 택한 건 돈 많고 잘 나가는 학과 선배였고, 운명 따위 믿지 않고 진지한 관계에는 관심 없다던 썸머는 그와 헤어지고서는 (아마도) 멋진 남자와 덜컥 약혼을 해버리잖아요. 심지어 운명을 들먹이며. 


당신이 그토록 헌신했던 그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 남자의 ‘스펙’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한국사회에서 결혼을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취준생이었던 당신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겠죠. 헌신하는 남자의 가치도 알아보지 못하고, 당장의 조건에 눈이 멀어, 자기욕망에 충실하느라 당신의 고통 따윈 내팽개치고 ‘배신’한 여자. ‘썅년’들의 죄목입니다. 이 여자들은 어쩜 이렇게 부박한 걸까요. 그런 여자를 사랑한 당신이 애처롭고, 당신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아까울 거예요.



파국은 작은 균열들의 축적


그런데, 그녀가 당신을 ‘배신’한 이유가 정말 그거 맞나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입장은 신념에 의한 것이고 남의 입장은 이익을 탐하는 거라고 믿고 싶어 하는 법이죠.* 당신보다 조건 좋은 남자의 등장과, 그녀의 부박한 욕망이 빚어낸 하모니 ─ 이게 당신이 쓰는 그녀와 당신의 이별서사에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이별은 그런 식으로 오지 않아요. 아무리 갑작스러워 보이는 파국도 들여다보면 작은 균열들의 축적이죠.


그 남자는 이미 위태롭던 모래성을 무너뜨린 마지막 모래 한 알 같은 거예요. 그녀는 당신과의 관계에서 계속해서 어떤 결핍을 느껴왔을지도 몰라요. 지적 호기심일 수도 있고, 다정함일 수도 있고, 당신은 가지지 못했지만 그녀는 욕망했던, 그리고 그는 가지고 있던 그 무엇인 거죠. 중요한 건 당신이 그저 가난하고 못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별이 찾아오진 않았다는 거예요. 누군가가 잘 생기고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우리가 또 하나 명심해야 할 ‘이별’에 관한 진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욕망이 이동했다는 것 자체가 죄일 수는 없다는 거예요. 다만 우리는 예의를 갖춰야 해요. 자기욕망의 변화로 인해 한때 사랑받았고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이에게 자신이 상처를 주게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녀를 비난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어요. 아마도 그녀는 이 과정을 너무 쉽게 처리해버렸겠죠. 이별의 과정 전체에 있어 당신이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는 게 어쩌면 당신이 진짜 아픈 지점일지도 몰라요. 나의 고통이 더 이상 그녀에게 가닿지 않는 상태, 그건 너무나 고통스러워요. 그녀가 과거에는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고, 처음부터 거짓이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 거예요. 그러니 당신은 오히려 그 여자가 당신을 잃음으로 인해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게 분한 거겠죠. 썅년이라 욕이라도 해야겠단 심정을, 나는 그렇게 이해해요. 



바꿀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


그런데 있잖아요, 당신에게 그녀가 준 상처에 대해서는, 그녀 나름대로 대가를 지불할 거예요. 한때 깊은 관계을 맺었었던 이에게 보였던 그녀의 무성의는 그녀 삶에 다른 방식으로도 나타날 거고, 당신이 아니라도 그녀의 삶 전체가 책임을 되묻게 되어 있어요.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요. 꼭 다음 연인에게 상처를 되받는 방식만을 바라지 말아요. 더 다양한 방식들이 있으니까요.


그녀를 썅년이라 욕하는 것보다 당신에게 훨씬 유용하고 필요한 게 뭔지 알아요? 그녀와 당신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는 거예요. “돈 많은 남자를 찾아가다니 나쁜 년, 여자들은 다 똑같아” 이렇게 생각하기 전에, 사랑의 실패 이유를 당신에게서 찾아요. 그녀가 언제 실망했을지, 언제 마음을 접었을지, 관계가 언제 어그러졌을지, 그녀가 관계에서 진정 욕망했던 게 뭘지, 그녀가 택한 남자는 무엇을 가졌을지, 차근차근, 이미 세워둔 프레임에, 원망에 갇히지 말고요. 


그건 당신만이 문제란 이야기가 결코 아니에요. 상대방을 탓하는 건 너무 쉽잖아요. 언제든 할 수 있고, 큰 노력 없이도 무한히 할 수 있으면서, 사실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잖아요. 이미 내게서 떨어져나간 그녀 말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자신을 돌아봐요. 그렇다고 ‘내가 못나서 그렇지 뭐’ 같은 두루뭉술한 말 뒤로 숨지도 말아요. 그건 상대방을 탓하는 것과 사실은 동전의 양면이예요. 그리고 동시에 인정하자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했다는 사실을. 나는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 그리고 그녀 또한 내게서 발견한 무언가를 쥐고 최선을 다해. 



우리는 노력하지만 상대방의 모든 욕망을 채워줄 수 없어요.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빛나지만, 인생의 어떤 국면에 이르면 그것이 빛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그/녀는 언제든 떠날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녀의 자유의지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지금 내 곁에 있기로 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진짜 빛나는 이유겠죠. 그러니 현재 여자친구에게 잘해주세요. 그녀는 이제 놓아주세요. 그녀가 바랐던 것을 줄 수 없었다고, 너의 마음이 변한 것에 나는 속수무책이므로 그저 놓아준다고, 그렇게 얘기하고 이제 잊어버려요. 



그 썅년을, 잊어버려요


K, 나는 자기를 연민하느라 한때 사랑했던 여자를 썅년이라 욕하는 당신이 애처로워요. 사랑한 시간을 사랑한 시간으로 가져가는 법을 배워요. 이별했을 때야말로 우리는 정말 그 사람을 타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지도 몰라요.



* 자신의 입장과 타인의 입장에 다르게 적용하는 잣대에 대해서는 자유기고가 한윤형씨의 페이스북 글에서,

** 이별의 윤리에 관해서는 여성학자 정희진씨의 강연에서 많은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 비(非)연애의 시대, 
그래도 연애를 하겠다면
그런 당신에게 필요한 연애 이야기


페이스북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ㅍㅍㅅㅅ에서 더 많은 글을 볼 수 있습니다.

공저로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알마, 2014)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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