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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Oct 18. 2017

승무원의 이중생활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일요일 밤 비행기는 꽉 차 있었다. 기분 탓인지 기내는 내일 학교와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의 피로와 걱정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빨리 비행기가 이륙하길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승무원이 주목해달라며 안내방송을 한다. 수십 번을 봤지만 제대로 따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안전교육 시간이다. 시범을 보이며 승무원은 농담을 섞어 분위기를 띄운다. 피곤함이 묻어나던 사람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교육 말미에 그 승무원은 자신이 코미디언이라고 밝혔다. 썩 웃기지 못해 승무원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고 투잡을 뛴다고 말했다. 그 말에 또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 말은 농담이고 자신이 10년이 넘게 몸담고 있는 이 항공사를 자신은 너무 좋아하며 즐기면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그는 웃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일 엘에이의 작은 극장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한다며 보러 오라고 했다. 승객들이 그에게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쳤다. 그의 초대와 승객들의 박수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자신의 일터에서 본인의 또 다른 직업을 당당하게 밝히고 그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드러내는 그가 부러웠다. 한국에서는 직원이 투잡을 뛴다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한눈을 판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이중생활은 많은 경우 질타의 대상이 된다. 반면 내가 만난 이중생활을 하는 그는 너무 당당했고 동료 승무원들과 기내의 승객들은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응원했다.


엘에이까지 그와 비행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그의 이중생활을 응원했다. 언젠가 그가 정말 배꼽 빠지게 웃기는 코미디언이 된다면 그는 승무원 생활을 접게 될까? 생각만으로 아쉬움이 든다. 이 항공사를 이용할 때마다 나는 그 위트 있는 승무원을 찾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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