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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Sep 13. 2017

위인전 프로젝트

어릴 적 위인전집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죄다 정의롭고 착하게만 살았을까. 살면서 선과 악 사이에서 고민 한번 없이 항상 바른 선택만 했을까. 


나는 적당히 비굴하고 못되게 산다. 때로는 마지못해 굽히고 순응한다. 나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불의를 보고 참기도 한다. 그런 일도 반복하다 보면 한순간 쪽팔리고 금세 멋쩍은 웃음으로 때워 버릴 수 있다.


30년 정도 살아보니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많이 없다. 좋은 의도가 있었어도 결과가 꽝이면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내 본래의 뜻은 품었던 나만 알아준다. 내 뜻이 네 뜻과 꼭 맞아떨어지는 일은 정말 드물다. 그래서 때론 스스로 내 뜻을 속여야 한다. 세상이 원하는 뜻이 내 뜻인 듯이 행동해야 한다. 만만한 건 가장 속이기 쉬운 나 자신이다.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지만 착하게 살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세상이 시궁창인데 혼자 고매한 척, 무해한 척하는 이들은 제일 먼저 의심해보아야 하는 종족들이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때론 내가 먼저 칼을 집어 들어야 한다. 어디에나 칼은 놓여 있고 이 게임을 끝마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를 제압해 쓰러트려야 하는 세상이다. 


분명 나는 책 속에서 남을 해치지 않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어느새 나는 닳고 닳아 적당히 약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때론 남을 해치며 산다. 변명 같지만 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조금 비굴해진다. 가족을 위해 상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우리네 부모님도, 꿈을 위해 서로 죽을 듯이 경쟁하는 청춘들도,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적장에서 싸우는 이들도 모두 그렇게 변명거리 하나쯤은 두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비굴해진다.

오늘 하루도 위인이 되지 못한 나는 적당히 세상의 비위를 맞추며 산다. 어느 것이 적정 수준인진 아직 모르겠다. 그 적정 수준만 알면 나도 은근슬쩍 업적만 부풀려 위인전 하나 써볼까. 좋은 이야기들로만 꾸미기엔 재수 없으니 나는 꽤 비굴하고 때론 못된 짓도 일삼았다는 구절을 꼭 넣어야겠다. 덤으로 적정 수준의 비굴함 노하우도 함께 넣어야겠다. 생각만 해도 잘 팔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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