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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Sep 09. 2017

멍이 들었다. 며칠 전 집안을 휘젓고 다니다 책상 모서리에 콕하고 박힌 기억이 난다. 그때 든 멍인가 보다. 보랏빛으로 선명하게도 물들었다. 얼핏 보면 예쁜 문신 같기도 하다.


사이즈를 보아하니 이 멍도 어림잡아 한 달은 가지 싶다. 나이가 드니 멍도 빨리 없어지지 않는다. 점점 오만데에 미련이 남아서인지 멍까지도 붙박이장처럼 허벅지에 들어앉아 위세를 떨친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건 진작에 깨달았지만 나이가 들며 붙잡고 싶은 것들을 조금 오래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 법들을 터득해간다. 그것이 내겐 나이 듦에 대한 완장 같은 것이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것들도 있지만 노력하는 마음은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가 닿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마음에 감복하여 내게 더 머무르는 것인지 그냥 그것과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본래 길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살면서 더 간절해져만 간다. 나의 건강이 계속 허락되기를, 나의 젊음이 조금 더 푸르르길, 나의 가족과 나의 사람들이 계속 나와 함께 하기를 말이다.


이 시퍼런 멍도 언젠가는 자취를 감출 테지만 조금 오래 있는다고 해도 봐주고 싶다. 멍조차도 떠나보내기가 아쉬워진 것일까. 지금 이 시간도 내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고 이 날도, 이 계절도 곧 간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삶에서 조금이라도 내 곁을 지켜준 이들이 새삼 고마워지는 하루다. 멍, 너도 포함해서 말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꼭 붙들고 산다. 이 마음이 네게도 시퍼렇게 물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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