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m Lee Nov 01. 2017

깜깜한 밤

동네가 온통 깜깜하다. 초저녁 우리 동네 초입에 있는 전봇대를 차 한 대가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제법 세게 들이받았는지 전봇대가 기울고 차에 불까지 났다. 다행히 운전자는 크게 다치지 않고 불도 금방 진화되었다. 하지만 전봇대가 기울며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전기가 다 끊겨 버렸다.


바깥에 있던 나는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손전등까지 하나 장만해 들어갔다. 집에 있던 가족들은 불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저녁을 해 먹기가 어려워 다 외식을 하러 나간 후였다. 여동생과 함께 캄캄한 집안으로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이 우리를 삼킬 듯 성큼 다가왔다. 동네가 전부 정전이 된지라 집안은 의지할 빛 한줄기조차 없었다. 혹여 계단에 걸려 넘어질까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린다.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 나의 빛은 같은 어둠 속에 갇힌 동지뿐이다.


여동생에게 핸드폰 불빛을 비추게 하여 사온 손전등을 부랴 부랴 조립하여 켰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손전등으로 우리 집을 빛으로 채우긴 역부족이었다. 여기저기 양초를 찾아내어 불을 붙였다. 촛불에 의지하여 세수를 하고 겨우 양치를 했다. 잠시 후 가족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찾으며 집으로 들어선다.


사고현장에 나와 있던 경찰의 말에 의하면 전기가 다시 들어오려면 서너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한다. 어차피 잘 시간도 다 되었으니 물이나 한잔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수기 버튼을 눌러보지만 전기로 움직이는 정수기에서는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엄마는 전기가 나간 냉장고 문을 여닫으면 냉기가 빠져 음식이 상한다고 열지 말라고 했지만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고 물을 찾아본다. 하지만 그 흔한 생수병 하나 나오지 않는다. 결국 남동생을 시켜 생수를 사 오게 했다.


초가 타고 있다. 자기 몸을 태우며 빛을 내는 녀석이 기특하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불도 들어오지 않아 춥고 스산한 집안에 여기저기 피워 놓은 촛불들로 온기가 감돈다. 남동생이 사 온 물 한잔을 벌컥 들이키고 자리에 눕는다. 깜깜한 방안에 옆에 누운 여동생의 온기가 이불속으로 전해졌다.


새벽이면 촛불은 사그라들고 다시 아침햇살이 들 것이다. 끊겼던 전기도 곧 다시 들어올 테다.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형광등 아래 혼자 씩씩하게 세수를 하고 정수기가 내놓는 물을 마시고 냉장고에서 꺼낸 음식을 먹고 또 성큼성큼 온 집을 휘젓고 다니겠지. 깜깜한 밤 속에서 서로를 찾던 겁쟁이 나는 까맣게 잊고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