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컴퓨터 하는 사람입니다." 본인의 소개를 이렇게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는 그의 짧고 강렬한 소개에 깔깔깔 웃었지만 그 어느 소개 멘트보다 그의 자기소개가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다.
우리는 일적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자신의 분야를 자기소개로 대신하는 그를 보며 처음엔 웃음이 났지만 그의 분야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느껴져 그가 그전보다 멋진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는 수줍은 많은 사람이었지만 컴퓨터 이야기를 할 때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감이 넘쳤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가 어떤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직업은 그 일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보상,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의해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 어떤 사람에겐 자신의 일이 자랑스러운 일이 되기도 어떤 이들에겐 죽지 못해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고 선망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일에서 오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본인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남들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일이지만 소명의식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돌아가고 여러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린다.
그는 본인 소개를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대신할 만큼 그의 일을 사랑하고 정말 그 일 자체가 자신의 일부임을 맘껏 표현했다. 나에겐 생소한 분야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리타분해 보이기만 했던 소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제법 멋지고 보람된 직업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살면서 몇 가지 직업을 가지고 이를 통해 밥벌이를 해 먹고살았지만 나는 그처럼 자신 있게 내 일을 소개했던가. 나 자신의 소개를 대신할 만큼 나는 그 일들을 사랑하고 정말 즐겼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은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직업은 삶의 근간이다.'라고 했다. 일은 단순히 돈벌이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인데 나는 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날만 기다리며 스스로 월급쟁이로 전락해버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조금 더 내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내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훗날 나도 나의 소개를 "저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열심히 쓰고 또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