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m Lee Aug 13. 2019

곰탕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곰탕을 끓여 보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레시피를 보고 대충 따라 하면 되겠지 싶어 시도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뼈를 골라 사기도 어렵고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국이었다. 원하는 뽀얀 국물을 내기 위해선 열댓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완성한 국을 보자니 이제 이번 주 몇 끼는 해결한 것 같아 기분이 뿌듯했다. 파 송송 썰어 고명으로 올리고 소금, 후추 한 꼬집 넣어 밥 한가득 말아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이번 주엔 만두를 넣고 만둣국도 만들어 먹고 떡을 넣고 떡국도 해 먹어야겠다. 곰탕 국물은 여느 다른 국에도 베이스 육수로 쓸 수 있으니 이보다 가성비 좋은 음식이 없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한 솥 가득 곰탕을 끓이면 우리는 볼멘소리부터 늘어놓았다. 이제 이주 동안은 곰탕만 먹는 거 아니냐며 말이다. 다섯 명의 자식을 낳고 키우며 매 끼니 다른 음식을 해 내놓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곰탕으로 인해 엄마는 이 주간의 휴가를 얻은 셈이었으리라.


 본가에서 나와 살게 되니 엄마가 매일 해내던 일들이 엄청 고된 일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같은 메뉴가 계속 나오면 반찬 투정을 해대던 철없던 어린 날의 내 모습이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독립이라는 것이 참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닥치니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웠나 싶다. 주는 밥 받아먹기만 했던 시절에 모르던 집밥의 소중함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람들이 왜 집밥, 집밥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다. 먹고사는 일이 정말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만 하면 뚝딱 나오던 집밥이 이젠 내가 재료 하나부터 열까지 장을 봐서 손질하고 조리하고 플레이팅 하여 먹는 일련의 노동이 되니 매 끼니 챙겨 먹기가 벅차다. 아직은 살림 초보라 장 봐온 음식을 다 못 먹고 상해 버리기 일쑤다. 손은 얼마나 큰지 대식구의 일원이었던 몸인지라 항상 적당히를 모르고 넘치게 사 오는 내 탓이 크다.


 독립하면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는데 라면으로 대충 때우거나 간단히 패스트푸드를 사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엄마가 가끔 밑반찬이라도 좀 챙겨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끓여 놓은 곰탕을 조금씩 소분하여 얼려 두었다. 몇 팩은 엄마랑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는 워킹맘 여동생에게도 갖다 주어야겠다. 프로 살림꾼이 보기엔 미천한 실력으로 끓인 국이지만 곰탕 한 그릇으로 두 엄마가 잠시나마 일상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오늘 저녁용으로 레인지에 올려 둔 곰탕 냄비 위로 엄마 얼굴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가라앉는다. 엄마의 곰탕을 먹고 자란 내가 이제 곰탕도 제 손으로 끓일 수 있는 나이가 되다니 다 컸다.    


 


작가의 이전글 재혼 프로젝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