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m Lee Nov 09. 2016

재혼 프로젝트

#1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할머니, 내가 말한 광고 아직 안 지나갔지?" 그때 누군가 내 뒤통수를 세차게 갈긴다.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동시에 내가 고르고 골라 컨펌받았던 BGM이 들리며 얼마 전 촬영한 음료수 광고가 TV 화면에 걸렸다. 뒤돌아서자 할아버지가 멍한 눈을 하고 앉아있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깊은 울화가 치밀지만 이 병자와 싸워 뭣하리. 나는 이내 울분을 삭인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할머니가 키득 웃는다. "재밌어 이게?" 나는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의 웃는 얼굴이 내심 반갑다. 그래. 내 매값이랑 할머니 웃음이랑 바꾼 셈 치자. 할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치매에 걸리면 원래와 다른 성향이 나온다던데 할아버지는 이전처럼 괴팍하고 폭력적이다. 


할아버지는 미역국이 짜다며 밥상을 엎곤 했다. 같이 밥을 먹고 있던 나는 할아버지의 대책 없는 분노에 눈살을 찌푸렸다. 할머니는 일말의 변명도 혹은 저항 없이 엎어진 밥상과 이리저리 튄 밥알을 주워 담았다. 할머니의 주름만치 쭈글쭈글 볼품없는 걸레로 떨어진 반찬들을 훔치고 이내 새로 밥상이 차려졌다. 어린 내 눈에 할아버지의 불호령은 무언가를 새롭게 하는 주문같이 보였다. 밥상뿐만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구겨진 셔츠는 할아버지의 불호령에 이내 새로 빳빳하게 다려져 왔고 먼지 붙은 구두 또한 할아버지의 불호령에 이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중에 머리가 크고 나서야 나는 할아버지의 불호령은 무언가를 새롭게 하는 주문이 아니라 할머니의 마음에 돌덩이 하나씩을 얹는 주문이란 걸 알았다. 할아버지는 정말이지 남편감으로는 빵점인 남자였다. 할머니 이불속에서 할머니 살 냄새를 맡으며 자던 날에 나는 몰래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뭐가 좋다고 같이 살아?"

"그래도 저 양반 아니었음 할미 시집도 못 갔어. 미지야."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연상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그 옛날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꽤나 앞서가는 커플이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인물도 집안도 볼 것 하나 없이 나이만 먹은 자기를 할아버지가 간택해 그나마 늦게라도 시집을 갈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할아버지도 흠이 있었기에 가능한 조합이었다. 어렸을 때 똥통에 빠졌다 똥독이 올랐다는 할아버지는 잔병치레가 많은 허약한 청년이었다. 집에서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내심 생각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골골 백세라더니 할아버지는 그렇게 계속 아프고 낫고 아프고 낫고를 반복하며 살아있다. 


내가 때 아니게 효녀 코스프레를 하며 살게 된 데에는 절묘한 엄마의 이혼 선언이 한몫했다. 엄마는 더 이상 아빠를 견디지 못하겠다고 했다. 한 사람이 떠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세트로 우리 집에 들어왔다. 명분은 엄마 대신 살림을 해주겠다는 것이었지만 하나뿐인 아들인 아빠와 남은 생은 우리 엄마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은 것이었다.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는 그리 좋지 못했다. 엄마는 아빠의 다혈질적인 면모가 다분히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할아버지를 내내 미워했다. 3대 독자인 아빠와 결혼한 엄마가 아들을 낳지 못한 것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엄마 사이를 더욱 벌려 놓았다. 엄마가 떠난 것은 슬프지만 나는 그녀에게도 그녀의 삶이 있으니 응원하고 싶었다. 적어도 엄마 대신 식구가 된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것보다 할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게 엄마 대신이 아닌 내가 보살펴야 할 존재들이었다. 그동안 둘이서만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사고방식만큼 생활방식은 후지고 뒤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쿨하게 보내준 엄마를 살짝 원망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에게 꽤나 짐스러운 조합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한참 어린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처음 집으로 들였을 때 나는 되지도 않는 텃세를 부렸다. 이 집은 그래도 내가 더 오래 살았고 내 것들이 자리한 내 공간이었다. 나의 습관과 나의 기억이 묻은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도 나의 방식으로 내 자리에 스미길 바랐다. 하지만 이내 내 공간은 퀴퀴한 노인 냄새와 할머니가 내어 오는 정체모를 음식 냄새와 화장실에 놓인 나프탈렌 냄새로 뒤엉켰다. 내가 아무리 다시 내 냄새를 씌우고 내 방식으로 내 것들을 배열하려 애써도 그들이 24시간 내내 자리 잡고 있는 내 집에서 나는 그냥 잠만 자러 오는 객의 신세로 전락했다. 나는 그래서 내 것을 주장하기보다 피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퇴근 후에는 집에 곧잘 들어가지 않고 나돌았고 주말에는 각종 약속을 잡아 나왔다. 때마침 내가 맡은 광고주도 늘어나 나는 일에 더 집중했다.


꼼꼼했던 엄마가 떠나고 집안 꼴은 엉망이 되어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병시중 들기에 바빴고 집안일엔 젬병이었던 나도 아빠도 다 손을 놓으니 온 집안이 폭탄을 맞은 듯했다. 결혼하긴 싫지만 이럴 땐 나도 마누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형은 가끔 와서 전구를 갈아 주고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등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름을 붙여 궂은일을 도와주곤 했다. 나는 필요 없다고 했지만 어차피 김형이 아니면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내심 못 이긴 척 그의 호의를 받았다. 오늘도 고장남 컴퓨터 포맷을 해주겠다며 찾아온 김형은 쌓여있던 쓰레기를 갖다 버리며 호기롭게 말했다. "결혼하면 내가 매일 해줄 텐데. 우리 결혼 정말 안 할 거야?" 나는 "내가 너 이런 거 시키려고 결혼해야 하냐?"라고 받아쳤다. 또 그 소리할 거면 그냥 나가라고 눙쳤다.   


김형은 대학 때 CC로 만나 지금까지 왔다. 선머슴 같은 나를 죽자 사자 따라다니는 김형 인생도 참 안됐다 싶다. 나는 어차피 죽어도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좋은 여자가 생기면 가라고 말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1년 전 제 풀에 지쳤는지 집에서 마련해준 선자리에 나가 만난 여자와 3개월 만에 결혼한다고 했다가 결혼식날 영화처럼 전 남자 친구라는 작자의 깽판에 파혼했다. 그리고는 내게 다시 돌아왔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B와 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