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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양 Jun 24. 2020

일요일 아침,
콩나물 한 봉지의 행복

손맛 좋은 친구 '달'의 이야기


  “밥 먹었어?”라고 물을 때, 그녀의 눈썹은 언제나 팔(八) 자를 그렸다.
  그 질문에서만큼은 경상도 억양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면서, 진심 어린 눈빛을 담아 물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갑 사정 상관없이 양껏 주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삼겹살집에 가면 집게를 잡고 끊임없이 상대방 접시 위에 고기를 올려주는 마음씨, ‘많이 무라’, ‘더 무라’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반복하는 습관. 그런 것들이 허기졌던 시절의 나를 먹여 살렸다.

  찹쌀떡처럼 하얗고 동그란 얼굴의 그녀는 내게 ‘달’ 같은 존재였다. 힘든 날 올려다보면 언제나 환한 빛으로 나를 품어주던, 풍성한 보름달.



 


 

  김해에서 태어난 ‘달’과 제주도 출신의 나. 우리는 스무 살 때 대전에서 처음 만났다. 둘 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 하나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외식조리학과에 입학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전공 수업을 함께 듣는 동안 자연스레 친해졌다. 타지 생활이 낯설고 자취가 어렵고 엄마 손맛이 그리운 것은 ‘달’이나 나나 마찬가지였을 터. 하지만 ‘달’은 언제 어디서든 나를 먼저 챙겨주었다.


  대학교 3학년이 될 즈음,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강의도 빼먹고 집 안에 숨어서 무기력하게 울기만 했던 시기. 많은 친구가 나를 걱정하며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왔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연락들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강의 시작했는데 너 왜…’, ‘리포트는 어떻게 할 거야!’, ‘이거 재수강 안 된다고 조교님이…’ 핸드폰에 장문의 문자가 잔뜩 쌓여 숨이 막혀올 때, 또 새로운 문자가 도착했다. ‘달’이 보낸 것이었다.

  ―밥은 먹었나.

  딱 다섯 글자로 된 이 문장은 마법의 주문처럼 내 마음의 문을 스르르 열리게 했다. 

  그렇게 ‘달’은 우리 집에 찾아와 뜨신 밥을 해 먹이고, 나의 고민도 묵묵히 들어주었다. 다른 친구들 앞에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도 이상하게 ‘달’ 앞에선 술술 흘러나왔다. ‘달’은 그런 친구였다. 10년의 우정을 쌓아가는 동안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내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었다.


  ‘달’은 요리를 전공하는 동기 중에서도 유독 손맛이 좋은 친구였다. ‘달’이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하면 그건 곧 맛있는 음식이 ‘뚝딱!’ 한 상 가득 차려질 것이란 신호였다. 오동통한 손으로 칼질을 척척, 양념을 조물조물. 그 경이로운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밥 생각이 전혀 없다가도 허기가 지고 입맛이 돌았다. “얼~마나 맛있게요?”라는 유행어를 가진 요리연구가 이혜정 씨와 닮은 모습에, 친구들은 ‘달’에게 ‘빅마마’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내가 사람들의 추억 속 음식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어쩌면 ‘달’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 후배 한 명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야, 밥 먹었어?”하고 물으며 손 꼭 붙잡고 고깃집으로 가 고기를 구워 먹이던 그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김밥 사 먹을 천 원 한 장이라도, 하다못해 가방에 들어있던 사탕 한 알이라도 챙겨줘야만 비로소 마음을 놓던 그녀. 누구에게나 뜨끈한 밥 한 그릇을 푹푹 퍼줄 수 있는 넉넉한 정을 가진 그녀는 대체 어린 시절 무얼 먹고 자랐을까?

  어떤 음식이 지금의 ‘달’을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달’에겐 맛있는 추억이 잔뜩 쌓여있을 것이 분명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풍성한 음식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어린 시절 추억의 음식을 물었을 때, ‘달’이 들려준 대답은 나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아… 뭐로 하지? 너무 많은데. 딱 하나만 골라야 되나?
그러면… 내는 콩나물무침!


  콩나물무침. 소박한 음식이었다. 나는 뭔가 다른 음식을 상상하고 있었다. 좀 더 지글지글하는 거, 한 솥 가득 넘치도록 보글보글하는 거, 상다리가 부러질 듯 푸짐하게 차려놓고 밥은 고봉으로 퍼 놓은, 그런 거.


  “유치원 때, 보통은 일요일 아침이면 엄마가 동네 시장에 심부름을 보냈거든. 가서 콩나물 오백 원어치만 사 오라고. 그땐 오백 원어치만 사도 양이 억수로 많았다 아이가. 그걸로 엄마가 콩나물 무침을 해줬어. 커다란 유리그릇에 막 데친 콩나물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다가, 간 한번 보라고 내 입에 쏙 넣어주시기도 하고.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막 무친 걸 따땃할 때 바로 먹으면 진짜 장난 아니데이. 

  그렇게 콩나물을 무치고 나면 그릇 바닥에 양념이 좀 남잖아? 콩나물에서 나온 물이랑 참기름이랑 섞여가가. 파나 깨소금 같은 것도 그릇에 붙어가가. 우리 엄마가 그릇을 그냥 씻는 게 아이고, 거다 밥을 넣고 비비는데, 아! 그게 어찌나 맛있던지!”


  과연 ‘달’은 손맛뿐만 아니라 말맛도 좋았다. 어디선가 콩나물 삶는 냄새가 풍겨오는 것만 같았다. ‘달’의 맛깔스러운 이야기에 빠져드는 동안, 머릿속에선 풍경 하나가 그려지고 있었다.

  부엌 창가로 비치는 정오의 따스한 햇볕. 냄비에서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 자그마한 ‘달’이 까치발을 하고서 올려다본 싱크대 위엔 유리그릇과 참기름병이 놓여있었을 것이다. 콩나물을 무치는 엄마의 곁에 붙어 침을 꼴깍 삼키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콩나물 한 줄기가 입안에 쏙 들어왔으리라. 손맛이 한껏 배어든 콩나물 줄기를 씹을 때 혀 끝에 닿는 온기와 고소한 맛. 입안에 느껴지는 아작아작한 식감. 엄마와 딸의 밝은 웃음소리가 반찬이 되어 밥 한 그릇을 금세 뚝딱 비우게 되는 일요일 아침…….


  그러다 문득 깨닫고 말았다. 내가 지금껏 ‘달’이라는 사람을 속단해왔음을.

  10년 넘게 우정을 지켜오고 있는 친구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빅마마’ 못지않은 손맛을 가진 친구라고 칭송했지만, 바로 그 ‘빅마마’를 닮은 통통한 이미지가 그녀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다른 면을 전혀 보려 하지 않았다. 마치 ‘달’이 날 때부터 밥주걱과 고기 집게를 양손에 쥐고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차려주는 밥상을 당연한 양 받기만 했다. ‘달’이 들려주는 추억 속 음식 이야기는 당연히 기름지고 푸짐한 것일 줄로만 알았다.

  자그마한 입을 오물거리며 엄마의 요리를 받아먹었을 ‘달’의 모습을, 노오란 책가방 메고서 병아리처럼 종종거리며 유치원을 다녔을 내 친구의 모습을, 나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달’ 본인도 옛 추억을 들춰보는 게 오랜만인지, 유치원 시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달’에게 요리사가 아닌 다른 꿈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말에 전학을 가니까 졸업앨범에 넣을 끼라고 장래희망 써서 내라고 하데? 그래서 가야금 교사라고 적었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계속 배우지는 못했어도, 그때까지는 요리보단 가야금을 하고 싶었거든. 또 중학교 때는 잠깐 미술학도도 꿈꿨었지. 엄마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어서. 우리 엄마가 손재주가 좋다아이가. 우리 엄마가 만약에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홍대나 이대는 갔을 걸? 근데 엄마 재능이 나한테는 안 온 거 같더라.”


  ‘달’은 못내 아쉬운 듯 말했지만, 나는 ‘달’이 자랑스러웠다. 다른 건 몰라도 어머니의 손맛만큼은 확실히 물려받은 것 같으니까.

  아니, ‘손맛’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내 친구 ‘달’은, 누군가의 입에 맛있는 음식을 넣어주려는 따스한 마음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닐까.


 암만 맛있는 것도 혼자 묵으면 맛없데이.
나는 남 챙겨 믹이는 게 제일 좋다.


  ‘달’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대학 시절에도 직장인이 된 지금도, 불쑥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와 “바빠? 밥은 먹었어?” 묻던 ‘달’이 떠올랐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본 기억은 없다. ‘달’은 늘 먼저 나의 안부를 물었다. 왜 나는 지금껏 ‘달’에게 밥을 챙겨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흔히 콩나물시루에 비유하곤 한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암흑 속에서 작은 콩이 싹을 틔우는 동안, 물 주는 사람은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오늘 부어준 물이 전부 시루 밑으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여도, 콩알이 수분을 빨아들이고 있으리라 믿으며 내일 또다시 물을 붓는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콩나물이 자라고, 아이들이 자란다.

  내 친구 ‘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엄마의 응원과 보살핌을 받으며 날마다 조금씩 자라나던 노란 콩알 같은 시절이.

  그렇게 쑥쑥 자라난 ‘달’은 나에게로 와 물을 부어주었다. 어른의 나이가 되어서도 좀처럼 홀로 서지 못하고 힘겨워하고 있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내가 그래도 조금씩은 자라고 있으리라 믿어주었다.

    

  이제 우리는 서울에서 부산에서 각자의 생계를 유지하느라 얼굴을 본 지가 오래되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갓 무친 콩나물무침과 뜨끈한 쌀밥으로 차린 상을 ‘달’에게 대접하고 싶다. 두 볼이 빵빵하게 차오른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환하게 웃고 싶다. 꼬신 참기름내 팍팍 풍기면서. “맞다 맞다, 암만 맛있는 것도 혼자 무면 맛없다.” 재잘거리면서. 














허기진 어른아이의 마음을 위로할

따뜻한 음식 이야기

<푸르던 날의 추억 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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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어린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의 음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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