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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형 May 16. 2016

[책] 내 생명 앗아가주오

카탈리나에게 듣는 애증의 역사

저자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역자 강성식 | 문학동네 | 2010.03.15

원제 Arrancame la vida

페이지 404 | ISBN  9788954610049 

판형 A5, 148*210mm



 카탈리나에게 듣는 애증의 역사 


 유럽이 말하는 새로운 대륙을 콜럼버스가 발견한 이래로 근대에 들어설 때까지 멕시코는 지속적으로 외세와의 충돌과 접촉이 이루어졌다. 무고한 원주민들이 학살당하거나 곡식, 향신료, 금은 등을 끊임없이 수탈당하며 식민 지배를 받았고 과거의 찬란한 라틴아메리카 역사 또한 유럽인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야만인의 문화로 왜곡되고 있다. 이런 뼈아픈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유사하다. 우리가 일본의 만행에 대해 분개하고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멕시코시티의 제3문화의 광장에 세워진 비문이 멕시코의 이중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1521년 8월 13일 콰우테목이 용감하게 방어했지만, 틀라텔로코는 코르테스에게 함락되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날 멕시코인 메스티소 국가의 고통스러운 탄생이었다."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의 멕시코는 침략자를 무조건 증오하거나 옹호할 수도 없는,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과거인 것이다. 독립 이후 미국과의 전쟁으로 영토를 잃고 근대화가 진행되던 1900년대는 혁명과 혼돈의 시기를 거쳐 지금의 멕시코가 있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서술되는 카탈리나와 안드레스의 인생은 멕시코의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첫 만남에서 카탈리나는 안드레스의 강렬한 외모에 호감을 갖게 되고 안드레스의 호의적이고 강인한 인상으로 카탈리나의 가족들을 현혹시키는 도입부는 유럽인들이 라틴 아메리카와 처음 접촉할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무지한 카탈리나가 안드레스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 없음에도 억지로 결혼하는 것처럼 원주민들 또한 유럽인들과의 교류가 이로운지, 해로운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타인을 반강제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혼식에서 안드레스가 무성의하게 가족들의 서명을 받아내는 장면도 힘없는 원주민들이 유럽인들과의 거래에 어쩔 수 없이 응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이러한 치욕의 거래에 아버지는 딸이 원하는 오렌지 주스를 주문하며 사소한 반항을 하지만 이것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후 사춘기의 카탈리나는 안드레스를 ‘우리 장군님‘이라 부르면서 일방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는 힘도 없고 자의식이 부족한 멕시코가 스페인에 종속되는 역사를 나타낸다. 그리고 결혼 초기에 안드레스가 카탈리나에게 자신의 과거를 미화시켜 속이는 행위는 유럽이 더러운 역사를 감추고 자신들을 우수하게 왜곡시키는 행위와 겹친다. 카탈리나는 안드레스를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다가 안드레스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멕시코는 스페인 통치에 대한 부당함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카탈리나의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타인과의 관계가 확장되면서 안드레스의 정부의 자식들이 본가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되는 것은 여러 부족과 인종이 멕시코로 유입되고 서로를 의식하게 되는 것과 연결된다.  

 카탈리나는 안드레스의 지위를 통해 여러 인사들과 만나면서 점차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안드레스에게 소극적이나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대항하게 되고 아리스멘디에 대한 작은 욕정을 기점으로 조금씩 자유를 꿈꾼다. 이 장면은 스페인 통치 시절 멕시코 자국 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독립의 목소리와 유사하게 볼 수 있으며 카탈리나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카를로스 비베스는 멕시코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는 최초 독립운동의 지도자 이달고 신부를 연상시키게 한다. 카탈리나에게 이 지휘자는 단순한 욕정의 대상이 아니라 안드레스에게서, 자식에게서, 집구석에서,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것들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게 해주는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다. 또한 비베스가 계략에 빠져 암살당할 당시에 가톨릭 신부가 문을 굳게 닫아버린 것은 이달고 신부가 스페인에 체포되어 처형될 당시 가톨릭계가 스페인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달고 신부에게 파면 선고를 내린 사건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카를로스가 죽은 뒤 카탈리나는 안드레스와 분가를 한다. 멕시코 또한 이달고 신부가 죽은 뒤 10년 후에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방문을 잠갔다 열었다 하며 안드레스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그 자식들은 아직 아버지의 영향권에 있었으며 그의 욕심에 따라 움직였다. 멕시코 역시 독립 이후에 다음 세대들이 스페인 통치권에 있었던 경험이 계속 쫓아다니며 스페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스페인이 전쟁에서 연이은 패배를 기록하고 유럽의 패권을 다른 나라에게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드레스도 실세에서 밀려나 권력을 잃어가면서 몸 또한 빠르게 노쇠하고 병약해졌다. 그리고 멕시코가 스페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카탈리나 또한 죽어가는 안드레스를 애증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후반부에서는 카탈리나와 안드레스가 스페인과 멕시코만의 관계뿐만 아니라 군부독재정권과 민중들의 관계와도 연결성이 짙어진다. 안드레스가 죽으면서 많은 재산을 남겼지만 카탈리나에게 달갑지 않은 것과 같이 스페인의 패망 또한 멕시코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카탈리나는 그를 지배했던 안드레스 앞에서 마지막으로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그와의 관계를 완전하게 끊고 미래를 생각하며 행복해한다. 카탈리나는 앞으로 멕시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스페인과의 애증의 역사와 군부독재 시절에 매달리지 않고 자유로운 앞으로의 날들을 생각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보충 정리를 하자면, 우선 안드레스는 봉건적인 남성상을 나타내고 있다. 시골 출신에서 출세하기 위해 아무 죄책감 없이 살인을 할 정도로 야욕이 넘치고 가부장적이며 고집이 강한 성격은 전형적인 마초적인 남성의 모습을 우리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남성일수록 안드레스가 바다를 싫어했던 것처럼 겁이 많고 기존의 세상에 자신을 가두어 넣는다. 그리고 권력을 상실하면 급격하게 쇠퇴하고 과거 순수했던 시절로의 회귀를 원한다. 그러다 강해 보이기만 했던 그들이 자신의 유약한 내면을 드러내면 카탈리나가 거부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에 카탈리나는 굉장히 현대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그녀를 담고 있는 체제는 근대적이고 봉건적이지만 카탈리나는 자신을 중심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있고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주체적 자아를 확립하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정치적 신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 사람들의 입장 등 여러 소스들을 통해 사건을 접한 후 자신만의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뚜렷하게 정립하는 모습과 함께 예술과 피가 섞이지 않은 자식들에 대한 일상의 애정이 드러나는 점이 인상적이다. 카탈리나가 항상 바다를 동경한 까닭도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본능 때문이다. 따라서 외모와 옷차림 등 여성의 관습보다 남성들의 정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카탈리나는 안드레스가 말한 것처럼 시대적 배경이 따라주었으면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남자이고 아직은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어떠한 억압도 받지 않았지만 카탈리나와 같은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카탈리나를 바라보았을 때,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 그리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뚜렷한 주관과 설사 불륜일지라도 진정한 사랑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아낌없이 바치는 모습은 내가 동경하는 인간상이었다. 그리고 통속적인 관습에 대해 솔직하게 거부감을 나타내면서도 일상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 또한 군복무 동안 주체적 개인으로서의 사고를 억압받고 세뇌식 정신교육을 받으면서 나만의 시각, 신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개인이 제도적 장치를 극복하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현재 우리 사회도 전통적인 가부장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해 아직까지도 소설 속의 멕시코와 같이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회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의 태도와 함께 사회적 제도 또한 남녀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와 함께 동반되어야 할 것이 여성들의 주체성이다.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 맞춰 여성 스스로가 올바른 가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희망찬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르게 흥미를 느꼈던 특징은 지극히 평범한 서사방식이다. 전에 읽었던 보르헤스의 「픽션들」과 푸엔테스의 「아우라」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장면들을 리얼하게 묘사하는데 다른 문학과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마술성이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혀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히려 기존 라틴아메리카 문학 특유의 특징을 거스르면서 다시 새롭게 다가와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여성의 시각에서 보는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멕시코의 역사가 우화처럼 진행되어 새로운 관점에서 그 사회의 맥락을 읽어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멕시코의 역사적 흐름을 중심으로 이 책의 해석을 설명했지만 카탈리나는 멕시코의 역사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봉건적 제도에 억압받는 여성, 혹은 멕시코 혁명 등의 정치적 배경을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소설의 가치는 하나의 주제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들이 서로 맞물려 멕시코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문제들을 아울러서 안고 있다는데 있다. 또한 카탈리나를 멕시코의 역사적인 문제와 연결시켜 읽으면서 멕시코의 역사가 여성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제도에 억눌려있고 강대국에게 강탈당해왔지만 사랑할 때는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일상에 대한 애정과 함께 뚜렷한 가치관 확립을 기반으로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총 2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24시, 즉 오늘까지의 이야기이고 과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아름다운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2011.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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