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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형 May 16. 2016

[책] 픽션들

진리를 담아내기 위한 언어

저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역자 황병하 민음사 | 1994.09.01

원제 Ficciones

페이지 298 | ISBN 9788937401763

판형 A5, 148*210mm



진리를 담아내기 위한 언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아인슈타인, 보들리야르 등과 같이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고 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가치는 시공을 초월한 진리였다. 이들은 예술, 과학, 인문학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 전체론적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 세계를 관통하는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진리는 실재 너머에 존재하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인 관념이 될 수 있다. 특히 예술에 있어서 가장 큰 화두는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의 진리를 담아내려는 시도였다. 난해하다는 이유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시인 이상은 우주의 원리를 종이와 글자라는 매체에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 한계에 대한 좌절감을 종종 나타내곤 했다.

 보르헤스 또한 전체론적인 관점의 소설을 통해서 세계를 관통하는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특유의 은유와 상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보르헤스 소설 속에 드러나는 형이상학적 관념에 대한 수많은 상징들과 인터텍스트적 성격으로 인해 정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주관적인 경험과 몇 가지 단편소설에서 받은 어렴풋한 느낌을 토대로 본 감상문을 진행하겠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서 나오는 틀뢴은 관념 그 자체를 말한다. 따라서 실재를 그대로 모방하여 옮겨놓은 지리부도나 일반적인 백과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틀뢴의 사람들은 우주를 공간이 아닌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발전하게 되는 정신적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틀뢴이 백과사전으로 나타나 있는 것은 관념에서만 존재하는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언어라는 틀에 담고자 하는 노력이었으나 언어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틀뢴은 실재와 분리된 관념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생활 속에 ‘-론’, ‘-이즘’의 옷을 입고 깊숙이 침투해있는 모습도 보인다.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복제가 흔한 틀뢴의 속성은 세계사에서 역사 속 이념의 흐름이 계속해서 순환되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틀뢴은 허구의 혹성이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서 관념의 비현실성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틀뢴 또한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완벽하지 못한 세계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불완전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관념의 세계 틀뢴을 제시하면서도 인간이 생각해내는 관념은 현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고 결국 인간 스스로 해독해야 하는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의 모든 책을 담고 있는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도서관을 우주라고 말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초반부에는 유한한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이내 부정하며 젊은 시절을 거쳐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도서관은 끝이 없다고 단언한다. 소설에서 나타는 도서관이라는 환상적 공간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는 한정된 요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무한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성한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개개의 언어들은 의미나 발음, 문법으로 볼 때 각자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총체성을 파악하면 반복되는 무질서 속에서 순환하는 무한의 진리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은 인문학과 과학을 불문하고 진리에 접근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첩보소설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데 시간과 인물 관계의 모호함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정원 속의 미로는 세계의 진리를 담고 있는 우주적인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무한함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이 미로는 무한한 세계이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은 무한히 두 갈래로 갈라지고 증식하게 되면서 인간은 다양한 가능성과 선택에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속성은 출발점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무한한 연속성은 다시 한 곳을 향해 수렴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선택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 하나의 선택 외의 다른 것을 배제해야 하는 특성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미로의 길이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다양한 선택도 결국 한 지점으로 향하는 모습이 소설에서 나타난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어떠한 선택은 모두 마찬가지로 죽음으로 수렴하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 자체가 2진법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2진법으로 구성된 디지털 공간은 무한하게 확장하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건, 인간들이 상호 교차가 일어나는 공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죽음과 나침반」은 탐정소설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탐정소설은 기본적으로 이성적인 논리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형식이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이 소설에서 논리적인 사고를 뒤엎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보통 탐정소설은 마지막에 사건의 해결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범인과 탐정의 관계 역전은 독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결국 탐정소설의 환상성은 미스터리 해결에 있어서 독자를 오히려 다른 수수께끼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보르헤스는 이 소설에서 사건의 해결과 미궁을 동시에 제공한다. 관계를 뒤엎는 구조 장치는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고, 따라서 독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던 것이 매우 불안정한 것임을 깨닫는다. 이런 방식으로 보르헤스는 기존에 믿고 있었던 것, 즉 진리가 언제라도 파괴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유태의 신화적인 요소와 결합하여 탐정소설에 환상성을 더해주었고 마지막 뢴로트의 발언은 탐정과 범인으로 비유되는 비평가와 예술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보았던 보르헤스의 문학과 그의 창조력은 시공을 초월하는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보르헤스에게 있어서 우주는 혼란과 질서가 공존하는 형태로,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의 문학은 어떤 한 가지를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확보하고 있다.   

 스페인어권에서는 이 지구에 중심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자주 농담조로 이렇게들 대답한다고 한다. "각자 발 딛고 있는 그 자리가 중심이다." 이것은 진리는 하나라는 고정된 진리 개념에 반대되는 발상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중심과 진리가 있다. 진리는 상대적이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변한다. 

 보르헤스가 아르헨티나의 한 지성인으로서 그의 현존적인 세계만을 고수하며 살았던 것이 아니라 세계의 전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언어로 구성된 각국의 고전들을 섭렵하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독서로 동서양의 사상과 문학이 대칭구조를 이루고 순환되는 세계의 질서를 찾았을 것이다. 그의 문학에는 다채로운 언어능력으로 인한 장르와 국경을 초월하는 독서,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일어나는 변화들에 대한 인식이 그의 소설에서 형상화된다. 작가의 문학 속에서 언어라는 유기체들의 조합은 독자와의 소통이라는 문학의 기본적 기능이 지닌 한계에 머물지 않고, 언어들 간의 교차를 확장적으로 창조하게 된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텍스트들은 현재와 과거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무한함을 표현해낸 통시적인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픽션들」이란 제목처럼 그의 소설을 단지 허구로 치부할 수는 없다. 진실은 무엇이고 허구는 무엇인지 구별하기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과거 서양인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움직이고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었던 진실은 결국에 허구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 정말 진실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리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 미국의 빈 라덴 사살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미디어를 통한 영상 이미지를 통해서만 접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야기들 또한 권력이나 미디어 등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각색된 허구일 뿐이다. 결국 우리들은 수많은 ‘픽션들’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보르헤스의 문학과 같이 진리를 담아내려는 허구의 이야기가 더 사실적인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보르헤스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문학이, 더 나아가서는 예술이 어떤 관점을 견지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진리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메타포를 제시하고 있다. 회화사에서 실제 세계를 모방하는 전통적인 회화가 쇠퇴하고 인간의 무한한 관념을 담으려 노력한 추상주의와 표현주의가 살아남았다. 문학 역시 마찬가지로 에밀 졸라가 시도했던 단순한 현실의 객관적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가치, 유한한 인간이 꿈꾸는 무한한 가치를 언어의 한계를 넘어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1.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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