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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형 May 16. 2016

[영화] 동경이야기

가족을 둘러싼 네모와 인생의 미학


가족을 둘러싼 

네모와 인생의 미학



 일본 사회와 일본인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정서적 특징은 절제와 형식이다. 일본인의 정서는 감정적이거나 어떤 다이내믹함이 아니라, 냉정함과는 다른 절제미가 있으며 의사표현에 있어서 서로에게 자신의 감정표현을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소통한다. 서구의 가족과는  많이 다른 아시아의 가족개념, 그중에서도 동아시아 사회에서 가족은 그 국가를 이끌고 사회를 존속시키는 원동력이었다. 현대사회에서도 가업을 중요시할 정도로 가족이 특별한 기능과 의미를 차지하는 일본 사회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기 시작하는 1950년대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영화 <동경이야기>는 노년부부의 여정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가 직면한 산업화와 가족해체 속에서 소소한 삶과 죽음, 진실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영화는 사각의 프레임 속에 사각형의 모양들을 지속적으로 배치하면서 시종일관 네모의 미학을 보여준다. 원이 상징하는 것은 이상, 운동력, 협동이라면 네모는 끼워 맞추기 쉬운 형식과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며 고요함을 상징한다. 이 네모라는 도형이 일본 사회의 고유성을 적절히 표현해주는 기호인 것이다. 무수히 많은 네모들을 영화 내내 보여주면서 단순한 패닝 한번 없는 정적인 카메라로 노부부와 가족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교차되는 공장의 굴뚝 연기와 도시의 모습은 노부부와 자식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또한 일명 '다다미 쇼트'라고 알려진 야스지로의 화면은 관객이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되, 너무 깊숙이 개입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와 안정감을 유지한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바람은 물질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항상 문화적, 사회적 변화 또한 함께 수반한다. 일본 사회를 이끌고 일본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가족중심적 사고관이 무너지기 시작한 4,50년대 일본이라는 공간에서 오즈 야스지로는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자신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대화와 사건이 집안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은 당시 일본 사회의 변화가 거창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가까이에서 아주 잔잔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자식 세대는 노년세대가 느끼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노년세대는 자신들의 감정을 자식 세대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전쟁 동안 자식을 잃고 패배를 경험한 노년세대는 자식 세대가 예전과는 달리 꿈과 포부가 없다고 한탄하지만 사실 사회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당한 자신들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그에 대한 해답은 '그래도 이 정도면 행복하죠'라며 주인공이 내놓는다. 

 '나 때문에 불편하겠구나'라는 말에 시종일관 '이이에(아니에요)'라는 말로 대답하는 둘째 며느리의 대답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일본인이 평소 형식적으로 보이는 호의와 대답과는 다른 진심 어린 며느리의 마음이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과 가족들의 귀향은 막내딸의 말처럼 너무나 이기적이고 슬픈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가족도 타인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숨기고 싶은 불편한 진실과 그 인생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스 야즈지로는 이러한 가족해체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자기 입장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둘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반복되는 '소오까(그렇습니까)'라는 아름다운 대사처럼 인생에 대해서 달관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와 둘째 며느리의 대화에서 앞으로의 (일본 사회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길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의 진실한 관계는 핏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 대 진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2011.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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