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기석 Mar 05. 2017

14. 날아올라 나라 (마지막날)

일본판 경주래도 믿겠다

그렇게 늘 그렇듯이 술 마시고 일어나서 나라의 마지막 날을 맞이합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아니 가끔은 후두둑 내리는 그런 날씨 궂은 날. 바로 다음 행선지인 교토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어제 늦게 일어난 덕분에 가보지 못했던 토다이지 (東大寺)에 가보기로 결정. 토다이지 한 곳만 보고 바로 넘어가기로 하고 체크아웃 후 킨테츠나라역으로 이동. 캐리어를 들고 다닐 순 없으니 코인라커 찾아 빙빙 돌다 겨우 찾아서 넣고 나가기로 합니다. 이 날은 시간도 아주 넉넉한 편은 아니어서 킨테츠나라역에서 버스로 갔습니다. 나라 버스도 1일패스를 팔기 때문에 여러 번 타는 분들에게는 좋지만 전 많아야 두 번만 타면 되는지라 그냥 210엔 내고 버스를 타고 토다이지 정류장에 내려서 걸어갔습니다. 찾긴 쉽습니다. 나라공원을 등지고 사람들 많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면 됩니다.

지도 씹어먹는 사슴. 옆에는 종이가방 씹어먹는 사슴. 화학처리된 종이보다는 시카센베가 안전하다고 하니 사슴의 건강을 위해서 시카센베를 먹입시다 (by 나라시청).

토다이지 박물관. 토다이지 입장료는 따로입니다. 그래서 패키지로 표를 샀죠. 왼쪽은 박물관표, 오른쪽은 일반입당권. 박물관에 관심이 없는 분은 입장권만 사면 되지만 전 박물관도 가고 싶었으니까. 나라국립박물관과 유사합니다. 불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불상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추천하지만 별로인 분들은 박물관이나 토다이지 박물관 중 한 곳만 가는 것도 괜찮을 듯. 이왕이면 나라박물관으로 추천합니다. 나라박물관은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는데 토다이지는 없어요. 그래서 영어 가이드로 들었는데 아무래도 한국어 가이드가 편하긴 합니다 (아무리 업자지만 어쩔 수 없는 전 한국인).

토다이지 입구를 들어오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본당이 보입니다. 한국의 불교사찰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 건 아무래도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불교가 전파됐기 때문이겠죠. 뭔가 신사 느낌도 살짝 섞여 있습니다.

본당 앞에 가면 향을 피울 수 있습니다. 1 - 200엔 정도 주고 사서 향도 피우고, 향 연기도 쐬면 바로 기침 나옵니다 (향이 별로 없으면 괜찮은데 이후 센소지에서 연기 테러를 당한지라...).

토다이지 대불전 안 청동불상입니다. 세계 최대 크기의 청돌불상으로 광배 (불상 뒤 오라같은)의 조각 등을 보면 상당한 수준의 불상임을 알 수 있어요. 역시 오른쪽 아래의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어가며 천천히 구경합니다. 부처님에게 바치는 과일 등도 보이네요.

허공장보살. 보살의 종류가 워낙 많은지라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다 같은 보살인줄 알겠지만 이번에 박물관 두어 곳을 가면서 보살의 종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나 구글의 힘을 빌려서 확인하시길.

사천왕. 부처를 모시는 여러 보살들이 있다면 어둠의 세계인 명왕을 모시는 네 명의 천왕을 사천왕이라고 합니다. 험악한 인상, 부릅뜬 눈 등은 자칫하면 악의 축이 아니냐라고 하겠지만 인간의 과오를 볼 때 참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인간을 그만큼 살피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하네요 (관심의 표현?).

역시나 한국 사찰과 같이 기왓장에 이름도 적고, 소원도 적고...

토다이지 창건 당시의 모습입니다. 가운데 본당 좌우의 목탑도 있고. 일본 사찰은 다보탑, 석가탑같은 석탑이 아니라 목탑이 많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높습니다.

둘 다 인상을 쓰고 있지만 오른쪽 인상이 더 더럽...그러니 잘 하란 말이다.

다문천. 이 사진은 대불전이 아니라 옆에 있던 다른 곳에서 찍었습니다. 300엔 입장료 따로 내고...

깔끔하네요. 토다이지 본당뿐 아니라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면 작은 건물들이 상당히 오밀조밀 모여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한두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니 토다이지를 둘러 보실거라면 천천히 여유롭게 다니시는 것도 괜찮아요. 산책하기엔 딱 좋은 곳.

본당 뒤 언덕으로 올라왔습니다. 무슨 세트장같은 분위기지만 깔끔하니 보기 좋아요. 물론 비가 많이 와서 홀딱 젖긴 했지만...바로 아래에 홋케도 (法華堂)도 좋습니다. 사진도 못 찍고, 입장료도 따로 받지만 뭔가 숨겨진 곳을 찾은 듯한 기분?

휴게실입니다. 비도 살짝 피할 수 있고, 안에는 여러 그림과 사진들도 있고 무엇보다 공짜로 녹차도 마실 수 있습니다. 산장같은 분위기랄까. 잠시 들어와서 머리도 좀 털고, 차도 한 잔 마시겠습니다. 차는 공짜지만 기부도 할 수 있고, 다 쓴 컵은 안에 있는 싱크대에서 설거지한 후 원래대로 놓으면 끝.

정창원 (쇼소인, 正倉院)에 갈랬는데 일요일은 쉽니다. 왕실 유물창고로 꼭 가고 싶었으나 일요일은 쉰다는 걸 알게 된 후 왜 이렇게 걸었나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토다이지 가실 분들은 일요일은 피해주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토요일인 어제 갈 걸). 그래서 억울한 마음에 근처에서 사진이나.

토다이지 뒷길로 살살 걸어봅니다. 교토에 있는 듯한, 교토보다 더 작은 동네. 오른쪽으로 작은 식당들도 보이고, 전통가옥을 개조한 액세서리 가게도 보이고. 비가 와서 그런가 나름 더 운치가 있어 보이는 동네. 대불전만 보고 왔으면 절대로 볼 수 없었던 길이었죠.

지나가다 눈으로만 본 카페 노엘. 들어가볼랬는데 일본까지 와서 브런치는 별로인 듯하여.

도시별로 기념품을 두 개씩 사기로 하고, 나라에서는 사슴 관련한 걸로 결정. 직접 손으로 만든 지갑, 액세서리 등 다양한 소품들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공유하면 선물 준다고 해서 낼름 했더니 엽서 한 장 주더라는. 여기에선 사슴 열쇠고리 두 개.

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 결국 킨테츠나라역까지 걸어왔습니다. 배도 고프니 뭘 먹을까 하다가 지나가다 눈에 걸린 회전초밥집으로. 우나타마 (민물장어에 계란)를 먹을랬는데 달걀보단 밥이 끌려서 그냥 패스. 역시나 많이 걸어서 수분이 빠져 나갔으니 맥주와 함께.

알콜 이후에는 카페인 로딩을 해줘야 합니다 (허세 쩝니다). 마침 담배도 피우고 싶어서 역 옆 커피숍에 들어와 모찌 한 개에 커피 한 잔과 담배 타임을. 이젠 진짜로 나라를 떠날 시간이 됐네요. 킨테츠나라역 코인라커에 넣어놓은 짐을 찾으러 내려갔습니다. 일본 지하철역은 코인라커가 정말 많습니다. 동네 작은 역을 빼고는 거의 모든 역에 다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많은데요. 크기별로 300 - 700엔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웬만큼 큰 캐리어도 600엔 정도면 끝.

교토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다행히도 교토 게스트하우스 근처와 한 번에 연결되는 노선이고 킨테츠나라가 시발역이니까 앉아서 책이나 읽으며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으헤헤~ 이렇게 2박 3일간 나라에서의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사카나 고베와는 달리 나라는 뭔가 쉬어가는 페이지랄까. 동네 자체도 조용하고, 번화가도 붐비지 않는 것이, 일정 중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오면 딱 좋은 동네인 거 같아요. 물론 간사이 지방을 여행하는 분들은 당일치기로 나라에 많이 오긴 하지만 여유가 된다면 하루 정도라도 나라에서 자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산책하기에도, 자전거로 돌기에도 좋고.

그럼 조용한 동네인 나라에서, 간사이 지방 제 2의 도시인, 초행이 아닌 두 번째 방문하는 도시인 교토로 가보겠습니다. 교토의 밤은 어떤 밤이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22. 후지지 않은 후지노미야 (3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