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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석 Apr 12. 2017

19. 아이고 나고야 (2, 3일차)

쉬어가는 도시라기엔 너무 크다

나고야는 사실 특별한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술 마시는 거야 노상 있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딱히 사전에 뭔가 준비를 한 것도 아니었고, 시즈오카현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숨 고르는 의미였으니까.

그렇긴해도 온 김에 뭐라도 해야지 않겠냐는 생각에 이 날도 오전에는 죽어라 일을 하고 오후에 바람이나 쐬러 빅카메라로 구경을 갑니다.

어젯밤 새벽까지 과하게 달린 관계로 속풀이를 위해 키시멘 한 그릇 해줍니다. 많이 보던 형태의 어묵도 있고, 밑에는 고기도 깔린, 그래서 심하게 느끼한 맛이 났지만 동네 명물이라니 한 번 먹어줘야지 않겠냐는 생각에 그냥 시켰습니다. 얼큰하기보단 느끼하면서도 나름 괜찮은 맛? 나가사키에 갔을 때 배신당했던 나가사키짬뽕에 비해선 훨씬 낫...다기 보단 뭐 그랬습니다.

밥도 먹었으니 커피라도 한 잔 해야지 않겠습니까. 동네 커피숍에 잠시 들렀습니다. 웬만한 喫茶店 (키사텐, 찻집이라면 이해하기 쉽겠네요)에 가면 좋은 건 흡연구역이 따로 떡하니 있다는 것. 털리스나 스타벅스같은 체인점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웬만한 동네 찻집에 가면 흡연구역이 있기 때문에 편합니다. 앉아서 담배도 한 대 태우면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이러면 무슨 된장남 아니냐고 하겠지만 전 그냥 젠장남입니다 -_-

마침 키보드가 두 개 (하나를 잘못 사는 바람에 일본어 배열로...)인지라 하나를 처분하기 위해 빅카메라에 왔습니다. 매장마다 차이가 있지만 저렇게 파란색으로 된 부분은 중고처리하는 곳입니다. 어차피 일본에서 벼룩시장에 낼 일도 없고, 어디 주기도 애매하고 해서 그냥 팔아서 여행경비로 쓰자는 생각에 갔더랬죠. 외국인인데 괜찮겠냐라고 했더니 그런 거 문제 없답니다. 그래서 자신있게 키보드를 꺼내고, 이거 산지 2주일도 안 됐고 많이 안 쓴 키보드다, 기계식이고 블루투스도 되는 거라 쓸만하다라고 별별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우선 기다려보라며 자기네 시스템으로 제품 가격이랑 사양 등을 살펴보더니...500엔 주겠답니다. 뭐라고, 이 도둑놈아? 이 키보드가 자그마치 1만엔이 넘는 제품인데 이걸 500엔에 매입한다고?

알고보니 주변기기는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매입가가 상당히 낮다고 하더군요. 결국 외화벌이가 아닌 외화호구가 됐고 키보드는 그냥 애증의 징표로 갖고 가기로 했습니다 (결국 끝까지 저와 함께 왔습니다)

그렇게 쓰린 마음을 다잡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편의점에 들러서...

나고야 한정판 기린을 샀습니다. 나고야공장 한정제작 맥주로군요. 좋은 시간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니 좋을 때 마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속 쓰려 죽겠는데 이 자식이 날 약올리나라는 생각이 -_-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이라면 토리와 블랙 등 산토리에서 만든 위스키를 알게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산토리 위스키는 한국에서도 자주 팔고, 산토리 하이볼 등에 많이 사용하지만 토리나 블랙은 진짜 가성비로는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토리는 40%, 블랙은 37%인데 700ml 한 병에 800엔도 채 하지 않는 거 보면 일본은 진짜 술 천국이 아닐지. 저 같은 사람은 굳이 밖에 나가 안 마셔도 이거 몇 병 주면 행복하게...그리고 이 날도 결국 다른 한국 게스트들을 만나 부어라 마셔라.

이제 나고야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이 날까지 일만 하기엔 미안할 듯해서 큰 맘 먹고 나고야 관광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고야에 왔으니 나고야성은 꼭 봐야겠다고 결심한거죠. 그러나 배가 고파서 우선은 코메다커피로 갔습니다. 말이 커피숍이지 별별 메뉴를 다 파는 喫茶店입니다. 메뉴도 꽤 훌륭하고, 가성비도 좋은 편.

간단하게 아침 메뉴를 시켰습니다. 우선 커피를 주는데 우에...분명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했는데 이건 설탕가마? 엄청 답니다. 일본에서 커피시킬 때 이렇게 넣어주는 경우도 있고, 크림이나 설탕을 많이 주는 경우가 있는데 블랙으로 드시고 싶으면 빼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당연히 아무 것도 안 넣어서 나올 줄 알았던 커피가 이렇게 달았다니...

게다가 아침으로 나온 버거도 느끼...잉글리시 세트도 아니고 뭐 이리 느끼. 그래도 아까우니까 꾸역꾸역 먹는데 느끼. 평범한 메뉴를 시켜야한다는 교훈을 얻고 어쨌건 다 먹었으니 가봅니다. 나고야역에서 나고야성까지 지하철은 애매합니다. 근처에 역이 있긴 한데 내려서 1km 이상을 걸어야 하고, 그렇다고 역에서 택시를 타자니 택시비가 1,700엔 언저리. 그냥 지하철타고 걸으세요.

사진 죄송합니다. 나고야성에 가면 노 (가부키랑은 다릅니다) 극장이 있습니다. 전용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고, 박물관이 있어서 이런저런 자료들도 꽤 있더라구요. 한 번쯤은, 말은 못 알아들어도 보고 싶습니다. 다음에 일본에 가게 되면 꼭 홀수월에 가서 스모도 보고, 노도 보고, 가부키도 보고.

극장입니다. 마침 공연이 없는 날이라 일반에게 공개됐네요. 상당히 조용하고 생각보다 큽니다. 무대 장치도 곳곳에 잘 되어 있고, 공연까지 보게되면 참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드디어 왔습니다. 나고야성. 사실 성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일본 성투어를 하고 싶을 정도로 관심이 가는데요. 오사카, 히메지 이렇게 다녀왔지만, 구마모토성도 가고 싶고. 나고야성의 경우 천수각이 어마어마합니다. 일본성 중 가장 큰 규모의 천수각과 꼭대기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金鯱 (킨샤치))를 보면 엄청나더군요. 워낙에 유명한 킨샤치다보니, 금을 쳐발쳐발했다는데 저 금을 떼서 재정에 보탰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뭔가 닌자가 튀어나올 거 같은 이 곳은 나고야성 입장 전에 볼 수 있는 혼마루고텐입니다. 영주가 살던 곳이라고 해서 규모도 엄청나고 곳곳에 이런 그림과 밀실 등이 있는데요. 군데군데에서 뭔가 튀어나와도 그러겄다라는 분위기? 아무래도 나고야성 자체가 임진왜란과 관련된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보니 친숙한 면도 있긴 합니다.

이 날 간사이에서 나고야 사이에 눈이 엄청 왔습니다. 눈 내리는 토요일 점심에 혼자 돌아다니니 처량하더군요. 뭐 어쩌겠어요. 나고야성 천수각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지붕에 킨샤치도 살짝 보이네요.

천수각 입구입니다. 나고야성은 천수각이 두 개인데요 대천수, 소천수 이렇게 나뉘어 있습니다. 대천수는 지상 7층에 지하 1층, 소천수는 지상 3층에 지하 1층인데요. 히메지성 천수각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히메지성은 그 자체가 워낙에 보존이 잘 되어 있고, 목재 구조물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신발을 벗고 올라가고 인원 제한도 있지만 나고야성은 폭탄 때려맞아 홀라당 망가진 관계로 콘크리트로 복원공사를 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보니 사람들도 엄청 많고, 그냥 동네 건물 올라가는 느낌? 다시 목재로 복원공사를 한다고 하니 끝나면 다시 가봐야겠어요.

킨샤치 모형입니다. 물론 모형이다보니 조잡한 면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1:1 스케일이니 대략 규모를 알겠더군요. 실제 킨샤치를 보고 싶습니다. 금이라도 벗겨서 금모으기 운동 대신 금니로 넣어버리고 싶...

인부 뒤에서 끌어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60kg 이상의 힘을 끌면 게이지가 올라가면서 돌이 움직입니다. 땡땡 소리도 나구요. 실제로 끌어보니 묵직하더군요. 어떤 여자분이 이거 끄는 거 보고 무섭...

나고야성은 천수각 입장료만 받는 게 아니라 큰 공원처럼 되어 있는지라 부지 자체에 대한 입장료를 받습니다. 500엔인데 여유 있게 둘러보기 딱 좋더군요. 물론 이 날은 눈이 많이 와서 거지꼴을 못 면했지만 그래도 살살 걷기엔 괜찮았습니다. 작은 전시관이 있어서 들렀는데 올빼미연, 매미연 등을 전시했더군요. 한국에선 올빼미가 큰 대접을 못 받지만 일본에선 올빼미 (정확히 말하면 부엉이)는 현자의 새라 하더군요. 하긴, 옛날에 만화영화나 이런 거 보면 꼭 안경끼고 나와서 이론을 줄줄 읊어대는 박사님같은 이미지.

왼쪽이 대천수, 오른쪽이 소천수입니다. 해자폭도 성의 규모에 맞게 상당히 넓고 깊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이 그렇듯 해자를 파고 그 안에 천수각을 두고, 이중 삼중의 방벽을 친 듯한 느낌. 우리나라의 성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규모 자체에서도 압도적이고. 그렇다보니 남한산성이건 제주성지건 성이란 한자는 같지만 영어로는 fortress라고 하지만 일본성은 castle이라고 하는 게 아닐지.

그렇게 나고야성을 한 바퀴 돌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름 재밌게 보냈던 나고야. 큰 특색도 없고, 숙소 자체도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었지만 다시 나고야에 간다면 그 때는 좀 더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거 같네요. 물론 이런저런 밤문화도 상당히 잘 발달돼 있는 곳이라 밤의 나고야는 무엇보다도 상상 이상이더군요. 짧은 시간 동안 재밌게 놀기에도 괜찮은 거 같고. 무엇보다 이상한 음식이 먹고 싶으면 꼭 한 번 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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