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어하우스의 기억 -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살기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한국에서 모르는 이와함께 산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쉐어하우스와 같은 주거가 생겨나고 있지만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처음 영국에 갔을 때, 플랏 (flat) 이라는 것을 알게 됬다. 혼자살면 한국같은 원룸에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던 나는 이 개념이 생소했다. 플랏은 주로 화장실, 거실 부엌은 따로 함께 쉐어하지만, 방은 각자 쓰는 개념이다. 학생들 뿐 아니라, 혼자사는 직장인, 심지어 커플들도 이러한 플랏에 사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과 같이 살지? 라고 생각하다가 영국에 평균집값보다 한참 아래를 밑도는 플랏의 집세를 보며 나도 플랏에 살기로 했다. 나는 1년 동안 집은 참 많이 옮기 편이다. 그 여정에 대해서 한번 써보고자 한다.
처음 들어간 플랏 (한달 간 거주)
- 플랏메이트: 일본인 M양, 중국인 N양, J양, F양
처음 한달로 계약된 플랏이었다. 랭귀지 수업을 듣는 이들과 함께 썼으므로 우리 플랏은 한, 중, 일 의 모임이었다. 다행이었던 사실은 일본인이 한명있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살 때는 반일감정으로 일본인을 만나면 독도 대담화를 할 듯이 떠들었지만, 사실 외국 나가서 제일 한국인과 정서적으로 쉽게 어울리는 이는 일본인이아닌가 싶다. 중국인? 매일 부엌에 친구들을 불러모아서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를 먹고 매일 저녁 성대하게 저녁을 해먹었다. 그리고 그 부엌은 항상 우리 플랏이었다. (대체 왜?) 처음에는 신기하고, 나도 초대해주고 해서 그려러니 했는데 1주일 내내 그러니 나도 부엌을 쓸 수가 없었다. 일본인 친구도 불편해 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일본인친구는 참고 인내했지만 (이것이 일본인다운 행동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나는 직접 말하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사이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그렇다고 부엌의 파티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있는 없는 목청을 다 끌어내서 애기하는 것 같았고, 모든 방문하는 이들이 화장실을 자꾸 들락거려서 신경쓰이기 일쑤였다. 일본인 친구 M양에 따르면 호주, 뉴질랜드의 경험상 중국사람이 이러는 것은 일반적이라고 항상 똑같았다며 푸념했다. 심지어 중국인 한명은 내 욕을 뒤에서 했다고 전해들었다. 자신의 과 한국인 코스메이트에게 말이다. 한달이었기에 그럭저럭 있다가 나올 수 있었다.
거기서 친해진 일본인 친구와는 그 뒤에도 가끔 만나며 펍도 가고,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되었다.
- 두번째 스튜디오 (2주 거주)
플랏의 기억을 뒤로 하고 나는 원룸에 살기로 했다. 그래서 스튜디오(한국식 원룸)만으로 이루어져있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플랏에 비해 월등히 비싼 집세때문인지 왠지 플랏에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에 불을 지핀 것이 옆방에서 밤마다 나는 19금 소리였다.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그 뒤에 다가오는 크나큰 재앙은 모른채....
- 세번째 플랏 (두달반 거주)
플랏메이트: 영국인 여자 3명
비용의 압박, 그리고 스튜디오를 나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급하게 구한 것이 화근이었다. 학교와의 거리와 가격(만) 알맞았다. 우선 여기 있으면서 영국 학부생들이 왜 party animal 이라고 불리는지 알게되었다. 특히 학기초에 말이다. 나 말고 나머지 셋은 원래 알던 사이로 함께 집을 구했는데 나는 뒤늦게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생소한 한국인 (아마 그들에겐 그냥 아시안?) 이었다. 영국에서는 클럽을 가기전에 pre-drinks 라는 것을 한다고 한다.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취하기엔 클럽의 술은 비싼 것이다. 그래서 밤 12시까지 누군가의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pre-drinkes이다. pre-drinkes로 술이 좀 취하면 그때 클럽에 가서 노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하다시피 그 누군가의 집은 내가 살던 그집 이었다. (왜?? ㅠㅠ) 술만 얌전히 마시는 것이 아니었다. 내방이 있는 2층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큰 음악소리로 한 마을을 울리는 듯 했다. 10명 정도가 우리집 거실에서 이러고 있는데 잠을 잘수 있을리가 없다. 참다가 참다가 내가 잠을 잘 수없다고 하소연하자, 11시까지 끝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새벽에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다른 클럽에서 온 남자(혹은 남자들)와 거실에서 시끄럽게 애기하는걸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 셋과도 사이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특히 내옆방에 있던 B양 (제일 날나리)과는 말이다.
옆집에는 영국정부에서 저소득층에게 지원해주는 집이었는데, 매일 학교앞에서 1penny, 1pound 를 외치는 아줌마, 내게 말을 거는 항상 술취해 있는 아저씨, 그리고 매번 싸우는 커플이 살았다. 그리고 이는 벽을 통해 들렸다. 옆집에는 무슨일인지 경찰차가 밤중에 온적도 있다. 아마 마약, 알콜 과련 문제일 것이라 추측한다.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영국 학부생들의 일반적인 생활이라고 했으며, 옆집 소리가 들리는 것도 당연하다고 했다. 처음 플랏에서 만난 일본인 M양은 자신이 플랏에 살지 않는 이유라고 했다. 그녀는 영국 교환학생 때, 이 모든 것을 다 겪었으며, 심지어 자신을 위협했다고 까지 했다. 다른 영국인 친구도 자신이 대학교때, 플랏메이트가 케익을 온 벽에 발라놓아서 충격받았던 것, 옆집 아저씨가 항상 기타를 쳐서 스트레스 받았던 이야기를 해주며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다. 별수 없에 나도 계속 살수 밖에 없었고, 최대한 집에 늦게가고 빨리나오는 방안을 택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어느 날 사건은 터졌다. 새벽 3시에 누군가 집의 벨을 울리는 것이다. 처음엔 잠결에 듣지 못하다가 계속 울리는 소리에 깨서 방 창문으로 누가 벨을 누르나 쳐다봤다. 그 얼굴을 본 나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플랏메이트 B양과 다른 한명이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내가 밖으로 나올 줄을 몰랐는지 갑자기 도망을 갔다. 이 다음 날은 나름대로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기에 다시 잤지만, 그들의 행동은 화가나게 만들었고 도저히 용서할 수도 없었다. 여행하면서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결론은 이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가려면 계약된 날까지의 집세를 다 내야했다. 다음 들어올 사람을 찾던지 말이다. 나는 여행하며, 집주인에게 메일을 썼다. 나는 이런 일을 겪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하지만 답변은 남은 달수이 집세를 다 내야한다는 답변이었다. 학생회에서 이러한 학생들 문제를 카운슬링 하는 곳을 찾아가 물어도 집세는 계약된 달치를 다 내야한다는 답만 들었다.
집에돌아와서 보니 그 B양은 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가기전에 나를 골탕먹이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가기로 결심했다. 이 어둠침침하고 특이한 이웃들, 끔찍한 플랏메이트와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집주인과 그리고 여러사람들과 논의를 했지만 집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이사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남은 몇달치의 월세를 다 내고 나왔다. 그나마 집세가 엄첨나게 저렴했기에 감당할 수 있었고 기간도 돈도 기간의 2/3으로 줄여서 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니었다면 이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 다음 플랏으로 나는 또 옮기려고 하고 있었다.
- 학교 석사 기숙사(8개월 거주)
플랏메이트: 영국인남자 1명, 영국인 여자1명, 중국인 남자1명, 그리스인 여자 1명
앞의 플랏들에서 경험하였듯이 누가 같이 사는가가 생활을 행복도를 측정하는데 주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민도 많았다. 학기 중이라 집이 매우 한정적이기도 했다. 스튜디오로 가려고 했지만 또한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다시 플랏에 살기로 하고 이제는 비슷한 석사 공부생들이 있는 곳에 살고자 했다. 제일 먼저 알아봤단 곳은 이제 좀 친해진 코스메이트나 여기서 알게된 한국친구들이 사는 플랏이었다. 하지만 이도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지, 비용이 비싸다던지 등 특별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자신이 기숙사에 나간다면서 대체 할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고, 기숙사를 뷰잉하니 기숙사가 마음에 들었다. 부엌은 꽤 깔끔해 보였으며, 얼핏 본 플랏메이트도 성격이 좋아 보였다. 기숙사가 3층에 전망좋은 곳에 자리한 것과 거리도 마음에 들었으며, 비용도 다른 기숙사보다 조금더 저렴했다. 하지만 앞의 플랏에서 크게 데인 나는 아무것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소개해준 이에게 기숙사는 조용하냐, 성격은 어떠냐 등등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또한 처음으로 이성인 플랏메이트와 사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숙사가 마음에 들었기에 나는 여기에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플랏에 와서 인사를 했다. 이곳에 처음 알게된 영국인 E양은 편하게 주방을 소개시켜줬다. "이 토스트기는 내건데 얼마든지 써도되, 여기 쿠키 만드는 도구들도 원한다면 써도되고, 여기 퐁퐁들도 쓰고, 번갈아가면서 알아서 사놓으면 되, 화장실 휴지도 마찬가지야" 별다른 규칙이나 정해진 룰은 없었다. 청소도 사야하는 물건도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면, 동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묻는 질문은 내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는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 플랏메이트를 만났다.
두번째로 알게된 플랏메이트는 중국인 T군이었다. T는 중국이었지만, 내가 알던 이와 다르게 요리도 잘 하지 않았고 대부분을 게임하거나 공부하는 시간을 보냈다. 셋번째로 알게된 영국인 R군은 항상 강한 악센트로 이해하기가 힘들어 대화가 길어지기 힘들었지만, 부엌에서 제일 요리를 많이했기에 나와 제일 대화를 많이 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 출신인 M양과도 인사했다. 밝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그녀의 의사소통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플랏 생활이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