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생은 예술이 될 수 있다.
J양은 나와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같은 과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주제의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50명 정도가 수강하는 대형 강의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다. 그 중 대부분은 우리 과였고 J양의 과는 보다 소수에 해당했다. 엄첨난 장신이 이었던 그녀는 영국에서도 그리 꿀리지 않는 키의 소유자인 나조차도 한참 올려다 보게 만들었다. 금발머리로 대충 커트 머리처럼 잘라서 헝크러진 머리로 학교를 누비고 다녔다. 무엇보다 그녀가 나의 인상에 박힌 이유는 그녀와의 첫만남이었다. 첫수업이었던가? 두번째수업이었던가? 수업 쉬는 시간에 J양이 강의실에 약간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수업도 같이 듣는데 커피나 같이 마시면서 서로 알아가는 거 어때? 이 수업 끝나고 1층에 카페에서 다들 보자"
이건 10명이 듣는 수업도 아니고 50명이 되는 수업이란 말이다. 당황하지도 않고, 침착하게 이 말을 이어나가는 너는 도대체 누구니? 결단코 나는 한국 대학에 이러한 일을 겪은 적도 들은적도 없다. 이렇게 엄첨난 적극성을 가진 J를 처음 알게되었다.
이날 나는 그 커피모임에 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게 남들앞에서 연설하는 것도 아니고 참가하는 건데 용기가 없었다. 같이 다니던 친구에게 너 저기 갈래? 물어보니 안간다고 해서 나 혼자 가기 뻘쭘해서 가지 않았다. 나중에 페이스북에서 모임 사진을 보니 많은 친구들이 가 있었다. 그제서야 나도 갈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의 모임 주최는 대학원 시절 내내 이어졌다. 어느 특강을 마치고도 모두에게 외치는 누군가가 있었다. 혹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여과없이 올라왔다.
"오늘 특강 끝나고 펍에가는 거 어때?"
"우리 학기 마무리하는 걸 좀 축하해야 할 것 같아, 우리집에 다들 초대할께"
"논문쓰는 기간에 바쁘지만 우리 좀 만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다들 언제 시간 괜찮아?"
그리고 그 자리를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첫만남에서 나혼지만 J양을 알았다면, 학기 시작 한 두달 뒤, 서로 알게되는 계기가 있었다. 누군가의 생일 파티겸, 우리는 펍에서 놀고 있었다. 우연히도 J양이 내 옆에 앉았고, 우리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너는 어느나라 출신이니? Holland! 홀란드? 라는 나라가 있는 줄 알았다. 유럽어딘가에. 아 나는 한국에서 왔어. 당연히 남쪽, 그러자 그친구가 히딩크의 애기를 하며 애기를 이어갔다. 나도 그에 응답했다. 히딩크는 정말 신드롬이었어, 히딩크를 정치에 밀어넣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니까! 너는 원래 어떤일을 하다가 대학원에 오게 됬어? 드라마 테라피스트! 이게 원래 내 직업이야.
맹세코 내가 처음 들어보는 직업이었다. 홀란드에 이은 두번째 멘붕이었다. 드라마 테라피스티? 하면 의문의 표정을 짓자 설명해준다. 대충 내가 이해하기로 연기를 통해서 정신적인 치유를 하는 것인데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고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가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나는 또 바보같이 J양에게 묻는다. (히딩크라는 애기는 왜 했는지도 모르고...) 너 홀란드 출신이라며, 페이스북은 네덜란드라고 되어 있는데? J양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친절히 설명해준다. 영국을 브리튼이라고 하듯이 자신들도 홀란드라고 하는거라고.
그녀는 또 학과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Open conversation hour - 우리는 매우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다른 세계에서 살다왔어. 서로의 다른세계를 알아가는 것은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격식을 가치지 말고 이런 것에 대해 애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어때? 목적은 논쟁이 아니야, 하지만 듣고, 묻고 서로를 더 이해하는 거지, 아래 시간에 꼭 만나길 바래" 원래 몇번하고 그만하려고 했던 이 모임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다른지, 서로 궁금한 것을 묻고 이야기 했다. 별 것아닌 수다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서로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데 신나서 애기했었다.
또 채식주의자였던 이 친구는 이게 그치지 않고, 화장품 만들어 쓰기 프로젝트를 하며, 블로그에 화장품 만든 후기를 올렸다. 화장품이동물학대의 도구가 되는 것 막자는 의미였다. 블로그에는 어떻게 화장품을 만들었는지 과정이 적혀져 있었다.
또 그녀는 학과 단체 메일을 보내기도 주저 하지 않았는데, 내년 새롭게 리모델링 되어서 개방 되는 단대(School) 건물에 예술 전시를 하자는 메일이 왔다. 이렇게 흥미로운 일에 빠질 수 없었다. 나 또한 내가 찍었던 사진을 내어서 학과의 벽에 걸려 있다. 그녀의 이러한 발상은 나라면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J양의 정말 흥미로운 점이 졸업하고 나서의 행보로도 이어졌다. 처음 시작은 비교적 평범하게 아트 워크숍을 주로 진행하는 영국의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제 나는 나의 예술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야! 그래서 나는 공식적으로 회사를 떠나기로 했어!"
그리고 그녀의 상태는 자영업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얼마가지 않아 그녀가 작업한 예술 작품들이 올라왔다. 'Prettypolitical' 이라는 이름은 생전에 내가 생각했던 예술을 틀을 깨주었다. 페이지 이름답게 사회, 정치에 걸친 J양의 시각이 들어간 작품들이 올라왔다. 브렉시트를 풍자해 메리 포핀스가 우산을 타고 영국을 떠나는 그림이라던지, Eve was a vegan(이브는 채식주의자였다.), Eve was a anarchist(이브는 무정부 주의라였다.) 라든지 말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더 재미있다. '세계의 부당함과 불공평을 보는 나의 예술활동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활에 대해서 보는 것에 대해서 가져야할 필요성을 느꼈어. 그래서 새로의 시리즈인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이브의 죄악"이 나오게 되었어. 이브는 사과를 먹음으로 그녀를 억압하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주체성을 부여한거야, 이것인 내가 찾은 이브가 사과를 먹은 이유야' 이브가 채식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였다는 말과 함께, 옆에는 사과를 베어먹은 그림이 있다.
예술을 사랑하고, 사회참여를 사랑하고, 이 두가지를 이어가는 그녀가 대단해 보인다. 그리고 자유로워 보인다. 자신이 믿는 것을 과감히 실행하고자 하는 능력, 엄첨난 적극성에서 그녀의 삶에 대한 에너지가 느껴져서 나는 그녀와 함께 하는 것들을 즐겼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녀로 부터 영감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활동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그녀로부터 말이다. 그녀가 하는 행동하나하나는 예술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녀가 예술활동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 자체가 예술인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나는 모든 인생하나하나가 예술활동이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