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ecial J Dec 19. 2016

다양성에 대해 느껴본적이 있나요?

Can you feel Diversity?

 20년이상을 살면서 '다양성'이라는 토픽에 대해서 생각해볼, 혹은 느껴볼 시간은 거의 없었다. '다양성' 이라고 하면 요즘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다고 할 때의 그 다문화가 생각날 뿐이었다. 그리고 항상 다문화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만 하지 지금의 한국이 다문화 사회인지 아닌 나에겐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다양성과는 거리가 먼 나라인 것 같다. 똑같은 인종, 똑같은 말, 대부분 비슷한 환경에서 대부분 살아가는 것 같다. 거리를 걸어도 지금 유행하는 머리스타일, 옷, 가방을 아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비슷한 교육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탈선하는 이는 실패자처럼 평생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대학이란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심지어는 꿈까지 비슷해지는 것 같다. 안정적인 직업, 공무원 등 말이다. 수없이 떨어졌던 면접까지도 다양성보다는 더 튀지 않게 그러면서 돋보여야 한다. 채용과정조차도 필기시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시험을 통과해야하만 하는, 지원자의 개성보다는 일률적인 시험에 의존하는 곳이다. 그래서 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보다 숨겨야 하고, 남들과 비슷한 능력을 가져야 하고, 튀는 것은 죄인, 남들과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하는 곳, 그곳이 한국이다.


 웃기게도 이 모든이 이상하다고 느낀적이 없었다. 내게 당연한 것이었다. 나도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했고, 남들이 가는 대학을 당연한 듯이 갔야했다. 고민한적은 없었다. 튀는 사람들은 관종이라며 손가락질 했다. 그 흔한 염색한 적 없었다. 너무 튀는 것 별로니까. 옷스타일도 유행을 따라 입었다. 다문화 사회는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였다. 다양성이라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우리 선조들이 위대하다고 배웠다. 다른 나라 선조들은 관심도 없고, 우리나라 선조들만이 최고! 대한민국 만세! 


 하지만, 어느 순간 '다양성'은 내 최고의 관심 키워드가 되었다. 다양성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난 뒤 부터 인것 같다. 예전에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이 이런말을 한적이 있다.

"한국이 내게 신기한점은 모든 가정에서 김치는 먹는다는 거야, 미국은 다문화 사회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거든, 나만해도 유대인이고 유대인 문화를 많이 따르지"

이 말을 듣고 이런 사회도 있구나 했다. 나는 이것을 내가 잠시 살았던 영국에서 느꼈다. 영국에 와서 처음 느꼈던 것은 우습게도 머리 염색을 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유행하는 에쉬브라운 처럼 모두가 한 색을 한것이 아니었다. 다들 제각각 이었다. 그리고 다들 문신을 가지고 있었다. 문신을 하면 티비에서 테이프나 모자이크로 가리는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모든이들이 이렇게 타투를 열광적으로 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것은 이것은 자신들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였는 것이다. 나는 학교생활을 하며, 플랫이라는 여러명이 부엌과 거실, 화장실을 쉐어하며, 방을 각자 쓰는 구조의 집에 살았다. 우리플랫 다섯명 중 두 명은 채식주의자였다. 왜 외국 호텔을 예약할 때 베지테리언인지 아닌지 묻는지를 이 때 깨달았다.


 그랬다. 영국은 나의 첫 다문화 사회의 경험이었다. 모든 것은 당연하지도, 통일되지도 않았다. 국적과 인종은 물론이요. 다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전념했다.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듯지 했다. 이 당연한 명제는 내게 충격을 넘어 흥미로운 현상으로 보였다. 눈만 내어놓은 히잡을 쓰는 사람부터, 배곱티를 일상옷 처럼 입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공존하는 이곳, 딱봐도 외국인이일 것 같은 내게 현지 경찰이 다가와서 길을 묻는 이곳, 온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고 즐길 수 있는 곳, 그곳이 내가 살던 곳이었다.


 여기서 지내며 알게된 것은 겉으로 보이는 다양성 만큼이나,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기는 식이다.

"나는 오늘부터 정규직 잡이었던 이곳을 떠나기로 했어. 그리고 예술에 전념하기로 했지."

그 친구는 현재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위에 나온 베지테리언 친구는 13살 때부터 동물을 사랑해서 채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공도 '종다양성과 환경보호' 같은 과를 공부했었다.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은 항상, 동물로 가득하다. 소, 강아지, 고양이 등 말이다. 한번은 벌레를 접사로 찍은 사진을 올려 식겁한적도 있다. 현재도 스코틀랜드를 누비고 생명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이 매거진에서 나는 내가 만났던 다양한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