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위해 게이트로 향했다. 면세 쇼핑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탈리아에 가는 중이고, 이것은 면세점 보다 더 저렴하고 다양한 상품을 볼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리고 굳이 짐을 미리 만들어 고생하고 싶지도 않았다. 20인치 캐리어는 비행기 수화물에 붙쳤다. 검은색 체인백에 여권과 지갑, 핸드폰을 넣고 장시간 여행을 대비해서 간단한 세면도구를 단정히 챙겼을 뿐이다. 옷은 편안하지만 너무 캐쥬얼 하지 않을 정도로 꾸몄다. 공항에서 츄리닝을 입고 다니는 건 그녀에게는 센스가 없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스키니 청바지, 개나리색의 롱나시티 그리고 추운 비행기 안을 대비해 로보를 걸쳤다.
게이트로 가는 중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방송을 들었다. '민수현', '민수현' 이라는 이름일 분명히 불렸다. 사람이 많은 혼잡함 속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분명했기에 게이트에 갔다.
"민수현님 저희가 이코노미석에서 비지니스석으로 업그래이드 시켜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친절한 스튜디어디어스는 비지니스석으로 업그래이드 해줄꺼니까 고맙지? 얼른타 라고 하는 대신에 그래도 괜찮을꺼냐고 물어보았다. 수현은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래요? 네! 감사합니다"
"확실히 휴가철이라 만원이네요, 운이 좋으시네요"
이번 여행도 예감이 좋다. 그녀의 인생이 그랬듯이 이번 여행도 술술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실 비즈니스 업그레이드는 그녀에게 종종 있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박사학위를 위해 온가족이 독일에서 4년간 지내며 한국을 왔다갔다 했다. 덕분에 그녀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꽤 쌓아왔다. 대학교 방학이면 유럽과 미국을 공부니 여행이니 하면 자주 오가기도 했다. 그녀가 비지니스 석으로 자주 업그래이드 되었던 이유 중 또 하나는 그녀는 굳이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항공사는 비싼 티켓을 산 승객을 먼저 비지니스로 업그래이드 시켜주는 경향이 있다.
그녀는 커피를 사와서 게이트 앞의 의자에 앉아 있고자 했다. 커피는 그녀가 평소 즐겨마시는 카페라떼였다. 부드러운 카페라떼를 마시니 노곤해지면서 한국에 있는 이들이 그리워 질 것 같았다. 먼저 남자친구가 생각났다. 레지던트 1년차 일 때 만났던 그는 지독히도 바빴다. 이제 3년차가 되어가면 보통의 직장인과 비슷한 패턴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처음 그를 만났을때는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는 느꼈지만 확신은 없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고 약속도 너무 뛰엄뛰엄 잡는게 이유였다.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난 한참 뒤에야 그가 엄첨난 노력을 해서 그렇게 연락을 하고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섭섭함을 느끼긴 했지만 어쩔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와 그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가능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문득, 문득 찾아오는 섭섭함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내가 시칠리아가면 2주 동안이나 연락이 힘든거 알면서도 연락도 안해보는거야?'
하지만 수현은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진 않았다. 그에게 바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으로 뉴스들을 보았다. 유럽에 일어나는 테러들에 대해서도 찾아보았다. 로마 특히 바티칸 또한 주요 테러주의 도시 였다. 이탈리아에 가는터라 조금 걱정이 들었지만, 에이. 시칠리아 잖아 라는 생각을 했다.
비즈니스 손님이 먼저 탑승하라는 방송이 나오고 그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탈리아 국적기인 알이탈리아 비행기였다. 한국인 승무원, 이탈리아 승무원이 인사를 건넸다. 비행기에 탄 것 뿐이었지만 이탈리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지니스 석의 의자는 포근했다. 그녀는 얼른 의자 사이 차단벽을 올려 프라이빗한 공기로 그녀의 자리를 만들었다. 장거리 비행이었지만 힘들지 않을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음료를 준비해 드릴까요?"
이탈리아에 가는 내내 그녀를 편하게 해주는 이들이 있었고, 의자는 포근했다. 하늘 어딘가에 있었지만, 하늘을 침대삼아 자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방송이 흘러 나온다.
"This airplane will be arrived at Catania airport soon..."
진짜로 시칠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