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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빈 May 21. 2018

딸에게 보내는 도시락 편지: 화정, 유빈에게 1999

모아둔 엄마 도시락 편지를 읽다보면 종종 언니와 나에게 같은 날 쓴 편지들이 있다. 비슷한 소재가 등장하는 날엔 같은 소재라도 대상이 큰 딸, 작은 딸 이렇게 다르다보니 살짝 관점이나 편지의 핵심 메시지가 달라서 비교해 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물론 같은 날 쓴 편지라도 아예 다른 이야기가 쓰여 있는 편지도 있다. 이런 편지를 볼 땐 왜 이 땐 둘에게 다른 이야기를 했지? 하고 이유를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다. 아무튼 같은 배에서 나왔어도 엄마 편지도 다르지만 편지에 대한 답도 다른 언니와 나. 참 신기하다.


같은 날 엄마로부터 받은 도시락 편지들.


화정아 

어제 아빠가 사오신

뉴스 투데이란 신문을 보니

직업 별로 부패가 심한

정도를 여론조사 해봤더니

1위: 정치인

2위: 재벌총수

3위: 세무 공무원

4위: 고위직 공무원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권력에

가까울수록 부패에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지.

힘 없는 서민이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날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에게는

힘빠지는 이야기지.

싱가포르가 오늘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도 부정부패 척결이라고 했다.

우리도 어서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점심 맛있게 먹었니?

이따 보자


99. 6. 8 점심

-엄마-

유빈아.

점심 시간이겠구나.

즐겁게 오전 시간 보냈니?

오늘은 쉬운 편지 쓸게.

엄마는 눈 뜨면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

(일찍 일어나는 날이면)

거북이 한 번 쳐다보고

너희들 기념식수 (벤자민과 스킨아이비)를

쳐다보는거야. 그것들이 연한

초록잎을 새롭게 내미는 모습을

보면 자라나는 너희들을 보는 것

같아 여간 기쁘지가 않단다.

엄마 어렸을적 아침에 

일어나면 외할머니가 

화단의 화초 앞에 쭈그리고 앉아

벌레도 잡아주고 풀도 뽑아주던 기억이 난다.

참 좋은 추억이라 생각된다.

근원이에게 안부 전하고

이따 보자.


99. 6. 8 엄마.


To Hwa Jung

금방 체육대회 마치고 들어왔다.

유빈이 맞이할려고 정신없이 들어왔는데

유빈이는 없고 그녀의 책가방 만이

덩그러니 엎어져 엄마를 쳐다본다.

'또 놓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너 달리는 모습 보았다.

우리 딸이라 그런지 금방 눈에 띄더구나.

공부처럼 악착같이 달리더구나.

엄마 가슴이 어찌다 뛰는지.

네가 뛰는데 내 가슴이 왜 뛰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 우리는 무슨 끈으로 연결되었나 보다.

무슨 끈이 뭘까.

답 기다린다.


99. 10. 15 -엄마-


(언니는 답이 없었다.)

엄마의 희망

작은딸 유빈에게.

지금은 오후 2시 50분이다.

언니 체육대회 끝나고 정신없이

집에 왔더니 텅빈 집에 유빈이

가방이 누워서 엄마를 너 대신

맞아주더구나.

'또 놓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전 여름 강원도 계곡에서

잡던 피래미 새끼처럼 잘도 

빠져나가는구나.

이왕 나갔으니 열심히 놀고 집에 와서는

할 일 열심히 하길 바란다.

참 언니 운동회 이야기 해줄게

운동회의 꽃이 계주라고 하지.

언니가 아픈 선수대신 선수로 뛰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언니를 찾았더니

회색 츄리닝을 입고 달덩이 처럼

하얀피부를 갖고 뛰는 아이가 있어 보니

우리 언니더라.

아무튼 예쁘니까 금방 찾을 수 있었지.

정말 잘 달리더구나.

공부처럼 말이야. 악착같이 뛰어서

거의 1등을 만들어놓았어.

엄마 가슴이 막 뛰었어. 너무 기뻐서

왜 자식이뛰는데 엄마가 흥분되지

아마 그것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 되어서 그런가봐.

이 보이지 않는 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너는. 정답은 없지만

너의 답을 기다린다 10. 15 엄마



(나의 답장)

답: 모성애


화정아

오늘 아침은 초겨울 날씨란다.

밥 먹고 뜨거운 물 넣었으니

엄마 마음이라 생각하고

따끈하게 먹어라.

A: I have good news for you.

B: (                                     )

A: We're going on a school picnic next week.

B: (                                      )

넣어봐. 안녕 이따보자.

11. 3 아침 엄마


유빈아

오늘 아침은 초겨울 날씨란다.

밥 먹고 뜨거운 물 넣었으니

엄마 마음이라 생각하고

따끈하게 먹어라.

Yoobin: I have good news for you.

Hwajung: (What's this?)

Yoobin: We're going on a school picnic next week.

H.J: (Oh, grat!)

넣어봐. 아녕 이따보자.

99. 11. 3.

-엄마-


(나는 답을 채워넣었지만 틀렸다고 한다.)

엄마의 든든한 기둥

큰 딸에게.

혹시 든든한 기둥, 큰 딸 이런 단어들이

너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니?

네가 부담을 느낀다해도

너를 생각하면 든든해지는걸

어쩌겠니.

어떤 사람은 보호해주고 싶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처럼 안정감이

풍기는 사람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나무처럼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오늘 광수생각 III 오기로 했다.

이 편지 받기 전날이겠다.

그럼 즐거운 반나절이

되길 바라며


99. 11. 4 오전

-엄마-

나의 딸 유빈에게.

지금 엄마는 너희들을 학교에

보내고 MBC FM 음악 프로그램을

듣고 있다.

햇살은 거실 안으로 흠뻑 들어오고

엄마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자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빈이는 참 좋다라는 기분이

들 때는 언제니?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3가지만

적어주렴.

그럼 점심 맛있게 먹고 즐겁게

지내고 이따보자.


99. 11. 4 아침

화정에게

마음 같아서는 유창하게

너에게 영어로 편지를 쓰고 싶다만

마음 뿐이구나.

그렇다고 엄마를 무시하지 말아야.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가서

수업 중 배고팠지.

아침 식단 좀 신경써야겠구나.

제일 중요한 우리식구 건강을 위해서.

오늘은 와서 논술 꼭 하려무나.

11. 9 정오

엄마

유빈아

지금 방송에서 노노레타

(나이도 어린데) 라는 칸쇼네 

(이탈리아 팝송)가 나온다. 

엄마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할 때 즐겨듣던 음악이다.

그 시절로 돌아간듯한 기분에

가슴이 뭉클하다.

기회가 되면 너도 한번

들려줄게.

너도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소개해줘.

사연과 함께 꼭


11.9 정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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