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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빈 Jun 06. 2018

딸에게 보내는 도시락 편지: 화정에게 2000


화정


서두를 계절로 시작할까

사건으로 시작할까 하다가

그냥 쓰고싶은 글로 쓴다.


어제 유빈이가 학교에서 2학년 교실로

청소하러 용병이 되어 갔단다.

지가 2학년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육학년이 되어 청소하러 갔다니 기특하기도 하지

청소도중 지가 1학년 때 학급문고에

기증했던 민들레와 개미라는 그림책을

발견했단다. 개미는 책이 벌어져서

벌어지지 말라고 이빨로 꼭꼭 물어 주었던

자국이 그대로 있더란다.

책장을 넘기니 "유빈아, 민들레를 잘 

관찰하렴"이라는 글귀가 있더란다.

6년전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살아 있더란다.

너무도 반가워서

먼지 투성이인 책을 더러운줄도 모르고

가슴에 한참동안 품고 있었단다.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은 느낌이지.

엄마가 책을 살때마다 책 속에

글을 남긴 것은

이런 감동들을 너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 중에 작용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어제 유빈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10여년전부터 책을 사준 보람을 느꼈다.

동시에 뭔가 너희들에게 이제 다 전해주었다는

느낌, 엄마 글을 소중하게 여겨준 고마움,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네가 ***할 때 *** **** ** 때 마냥

잘 나가다가 엄마가 꼭 이러지.

힘들더라도 힘내고 열심히 해

현재 최선을 다하면 되


3.3 아침 엄마

To Hong 특


6월 하순

꼭 1년의 반이구나.

졸업사진을 찍는다니 졸업도 멀지

않았고 정든 상계여중의 교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슴 속에 꼭꼭

심어두거라.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한다.


<오두막 편지> 법정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 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 있어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2000년 6월 21일

-엄마-


화정에게.


너를 독서실 보내고 유빈이는 제 방에서

유희열 C-D 들으면서 숙제를 하는지 공부를 하는지

엄마는 이렇게 너에게 글을 쓰고.

정말 편안하고 행복한 저녁이다.

너도 알다시피 요즘 아빠 때문에 조금은

덜 행복하지만 말이다.

너는 지금 공부에 푹 빠져있겠다.

너라는 한 그루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

너자신이 지금 그 나무에 거름을 주고 있는거라고

생각된다.

너는 항상 최선을 다 하면서 살아왔으니까

꼭 좋은 결실이 있으리라 믿는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쓴 독서의 기술을 소개한다.


반대하거나 논박(論駁)하기 위해서

독서하지 말라. 그렇다고 무조건 의뢰하거나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또는 이야기나

의론의 논거를 삼기 위해서 독서해도 안 된다. 

다만 사색하고 고찰하기 위해서 독서하라. 

책을 읽되, 어떤 책에서는 그 일부분만을 

읽고, 어떤 책은 통독하되, 그 뜻을 전부 

이해하지 않아도 좋으며 그리고 어떤 책은 

빠짐없이 읽을 것은 물론 그 뜻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주의하며 읽을 것이다. 

어떤 책은 남에게 대신 읽혀도 좋고 

남이 읽고 노트해 놓은 것을 훑어보아도 

좋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책을 

알아 차리는 것이다.


To. Hong. 2000. 6. 26 새벽


밤이 아주 많이 깊었다.

계절이건, 하루건 많이 깊어지면

꼭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도 내면이 깊어졌는지.

잘 발효된 식품처럼 제 맛을 내고

있는지...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언제 그럴 날이 올런지

빨리 왔으면 좋겠다.


행복찾기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행위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으며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감각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행위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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