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찍 죽으면 우리 엄마는 읽을 것이 너무 많을 것이다
나는 블로그에도 있고 일기장에도 있고 필사노트에도 있으며 인스타그램 계정은 세 개고 트위터는 두 개고 페이스북도 있다. 그뿐이냐 브런치도 하고 글쓰기용 페이스북 페이지도 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읽다가 다 늙어버릴 것이다
나는 자식을 낳을 생각이 없고
내가 죽었을 때 우리 엄마만큼 나를 열심히 읽을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
어쩐지 그렇지 않으면 쓸쓸할 거 같아서
엄마보다 일찍 죽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그건 아무래도 엄마한테 불효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엄마한테
엄마 일기 좀 써주라 엄마 돌아가시면 보게, 했다
이상한 주문에도 엄마는 알았다고 했다
엄마는 책도 안 읽고 글도 안 쓰지만 내 기사는 매일 읽고 매일 내 네이버 기자 페이지에 들어와서 기도하듯 응원을 누르는 사람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났다가도 소파에서 다시 잠들어서 내가 아침에 전화해서 뭐해? 물으면 부끄러운 티를 내며 그냥 있어, 한다. 아무것도 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그런 엄마도 나에 대해서는 너무 부지런해서 탈이므로
일기도 어쩌면 써줄지 모른다
우리집엔 첫 페이지만 빽빽한 가계부가 여덟개 정도 되지만
그건 내가 부탁한 적이 없잖아
엄마는 글씨도 잘 쓰니까 하루 한줄이라도 쓰면 그건 되게 멋진 무언가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내가 안 본다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써달라고 했다
우리 엄만 또 남의 시선을 무쟈게 신경 쓰기 때문에 죽고 나서 내가 본다고 생각하면 멋있는 말만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멋진 구석도 있겠지만 엄마의 기쁨과 슬픔이 더 궁금하다
엄마는 이모랑 나한테 전화해서 이모한테는 “경민아” 나에겐 “윤정아” 호칭을 바꿔가며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늘어 놓는 게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지만
아깝잖아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고 점점 나빠져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모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수학 문제 풀거나 성경 옮겨 적을 때 아니면 펜 안 드는 엄마, 내꺼 맥북 프로 뺏어가서 줌이랑 한글 밖에 안 쓰는 엄마가 펜으로든 맥북으로든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다
갑자기 엄마가 내 일기장 훔쳐보고 전화해서 그런 사람 좋아하지 말라고, 그 사람이랑 술 먹지 말라고 화내던 거 생각나네
나도 거대한 복수를 해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