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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작가 Jul 23. 2020

02. 명상으로 시작, 버럭으로 끝내는 육아

아무렴,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0721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이건 너무 괴롭다.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남편과 아이들 모두 곤히 자고 있다. 이불을 걷는 소리조차 거슬리까봐 있는 힘을 다해 살금살금 거실로 나왔다.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명상을 시작했다.


유튜브채널 마인드풀tv를 구독하고 있다. 명상을 하기로 하고 채널을 찾아보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차분한 목소리와 자세한 설명, 앞으로 차근차근 따라해보면 좋을 거 같았다. 


<머리는 비우는 호흡, 기초 명상>


10분짜리의 짧은 명상이지만, 그 10분이 나에게 평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거실에서 하자니 갑자기 아이들이나 남편이 깨서 나올 것 같아, 아이들 장난감방으로 들어갔다.


양반 다리를 하고 양 무릎에 두 손을 올렸다. 영상을 틀고 눈을 감았다. 들숨, 날숨 호흡을 하며 머릿속의 생각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자꾸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 맞다 오늘 어린이집 갈 때 체육복을 입혀야지' '아, 여름 휴가에는 어디를 가나' 별의 별 생각들이 머릿속에 하나씩 하나씩 풍선처럼 떠올랐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머릿속에서 씨름하는데, 영상에서 애써 없애려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있는 그대로 그곳에 존재함을 인정하고 호흡에 집중하라고 한다. 


스읍~~~~후우...


호흡을 일정하게 하고 싶은데 잘 되질 않는다. 명상은 음악이 절반인 것 같다. 듣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지는 것 같다. 집중해서 명상을 했다. 이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시키는대로 최대한 해보려고 했다. 눈을 감았지만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10분이 금방 흘렀다.


영상이 끝나고 거실로 나왔다. 알라딘으로 주문해 어제 도착한 책을 30분 읽었다. 그리고 아침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고나니 안정감이 들었다.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아침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아이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뽀보세례를 퍼 붓고 꼭 끌어안아 주었다.


거실에 아이들이 갈아입을 옷을 미리 꺼내놓았다. 보통은 스스로 가서 챙기지만, 체육활동이 있는 날이라 체육복을 찾아 꺼내놓았다. 


...


거실로 나온 첫째가 체육복을 보더니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거 말고 공주 치마~~!!"

나는 좋게 타일렀다.

"오늘은 체육 활동 있는 날이라 이걸 입고 가야해, 공주옷은 내일 입자"

"싫어~~"


그 뒤로 아이의 불만과 짜증은 스스로 해결하도록 놔두었다.

나는 둘째를 식탁에 앉히고 식사를 차려주었다. 그 모습을 본 첫째는 

"나도 줘~~~!" 

"그렇게 투정부리면서 말하면 엄마는 너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어. 좋게 제대로 말해"

"싫어~"

매번 반복하는 대화가 또 시작되었다.


명상의 평온은 온데간데 없고, 상황은 급격히 반전이 되었다.

아이는 투정을 부리고, 나는 받아주지 않고. 

밥을 먹는 내내 실랑이를 벌이고, 아이는 눈물을 뚝뚝...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잘못한 건 무엇일까. 아이는 왜 이럴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국 아침 시간, 우리에겐 짜증과 버럭만이 남았다. 나는 아이에게 도대체 왜 이러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내가 아무리 너에게 좋게 타일러도 넌 대체 왜이러냐고 퍼붓고 말았다.


....



하아, 난 또 이렇게...무너졌다.

명상? 너....아침에 도대체 뭘 한거니?


아이에게 큰 소리를 치는 순간 나는 명상은 전혀 생각나지도 않았다. 바로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미성숙하고 이 모양일까. 자책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 자신이 참 한심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거 잘 알지만, 기대감이 있기에 실망도 더 큰 법이겠지. 갈길이 멀다.


그 어떤 것보다 지금은 내면의 평온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걸 다시한번 깊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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