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선택의 문제다. 주변을 보면 아이 없이 둘이 밤마다 레고 같은 취미에 몰두하며 지낸다거나, 주말마다 자유롭게 여행 다니며 사는 부부들도 적잖이 있다.
일부러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삶은 어떨까?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온 우주가 뒤집히는 일이다. 싱글의 삶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최신 영화 한 편 보는 게 지상 최대의 과제처럼 느껴진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나도 당연해지지 않는 삶. 밥도 여유롭게 먹을 수 없고 화장실도 맘 편히 갈 수가 없는 게 육아의 현실이다.
첫째가 돌이 되기 전 아이와 함께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높은 구두에 예쁜 치마를 입은 직장인들이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지나간다. 출근하는 그녀들의 발걸음은 활기차고 상큼해 보였다. 나는 세상 편한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아기띠를 메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내 눈에는 아이가 묻힌 얼룩이 크게 들어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결혼 전에는 저랬는데 지금은 마치 처음부터 아기띠를 메고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데 왜 나는 지난날을 자꾸만 떠올리는 걸까.
아이를 갖게 되고 많은 기회들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갈 기회, 연봉을 인상할 기회, 커리어를 쌓을 기회, 사람들과 네트워킹 할 기회, 자유롭게 여행 다닐 기회,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 등등
육아 때문에 못하게 된 것들이 많았다. ‘나는 더 발전할 수 있었는데 육아 때문에 모든 것이 정지상태,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럼,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연봉 인상이나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하면서 그럭저럭 만족했을 테고 남자 친구나 친구들과 불금, 주말을 즐기면서 놀러 다니기 바빴을 거다. 그러다 한 번씩 해외여행 다니면서,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을 거다.
그러다 문득 “이게 다 뭐지?” 하고 깨닫는 날이 오면 그때 나는 어떤 힘으로 버틸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인생 최대의 경험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그 어떤 말과 글로도 알 수 없는 세계가 바로 육아다. 육아가 아니었다면 내가 나를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저 밑바닥, 완전한 민낯의 나를 만날 수 있었을까? 하루, 매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을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온 우주를 다 줘도 바꾸지 않을 소중함을 알 수 있었을까?
육아를 하면서 많은 기회들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육아로 인해 엄청난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내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갈 기회 말이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이렇게 강렬한 깨우침은 없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아이는 내게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자기 계발을 하는 게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긴 하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항상 배경에는 아이들이 있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지칠 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도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어떤 힘으로 그럴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미성숙한 인간인지를 많이 깨닫는다. 이제 고작 세상에 태어난 지 3년 하고도 반이 좀 지난 첫째, 두 돌도 안된 둘째를 보면서 이 아이들처럼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거 같다.어쩌면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나보다 훨씬 빠른 거 같기도 하다. 나는 아이들로 인해 느리지만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정확한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내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내 모습을 아이가 그대로 재현해낼 때 심장이 철렁한다.
아이는 나를 통해 세상을 배워나간다. 부모가 아이에게는 온 세상, 우주인 것이다. 그런 내가 아이에게 지금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질문들을 매일 끊임없이 받는 것.
나는 여전히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내가 매일 하는 작은 습관들, 가령 새벽 기상과 독서 같은 일들이 마냥 나 혼자 좋아서 하는 일이라 할 수 없는 이유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의 원천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를 찾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결국 나는 엄마이고, 그것은 죽을 때까지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육아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며 그걸 통해 인생이 더 빛나고 가치 있어진 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