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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작가 Aug 20. 2019

꺾인 날개로도 뭐든 할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

육아는 내 인생 최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임과 동시에 나를 비우는 과정이었다. 언제든 기회만 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지만 맘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나는 첫 임신과 출산을 할 때 주변에 아이를 잠깐이라도 돌봐줄 시댁, 친정이 없어 독박육아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첫째를 임신할 때쯤 나는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동안 내가 맡았던 업무들이 나쁘지 않아서인지 오퍼가 자주 들어왔었다. 


싱글이었을 때는 회사 선배들을 보며 '100일만 되면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해야지', '계속해서 사회생활 하는 멋진 엄마가 될거야', 라고 아무렇지않게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진짜로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그럴 수 없었다.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다. 아이가 최우선이 되어 어떤 선택도 쉽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워킹맘들의 노력이 엄청나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여부를 떠나 그런 기회들이 왔을 때 반복해서 놓치는 과정들이 나를 계속 무릎 끓게 만들었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존감도 낮아지고 있었다. 


어느 날, 예전 회사 상사 중에 회사를 창업하신 분이 계셨는데, 경력자가 필요해서 나에게 재택근무를 요청하셨다. 재택근무는 솔깃했지만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일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 나의 욕심으로 덜컥 시작하기엔 괜한 민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때는 둘째를 임신하기 전이고 첫째를 집에서 돌보고 있을 때였다. 재택근무마저도 할 수 없는 현실을 또 한번 직시했다.


진짜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 즈음.


회사 다닐 때, 나는 업계사람들과의 모임이 하나 있었다. 디지털, IT, 홍보 등 영역에서 일을 하던 8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매주 모여서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하는 모임이었다. 글로 써보니 뭔가 대단한 모임같이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잡다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고 맛집으로 변질되기 직전의 모임이었다.


다만, 각기 다른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다들 그 자리에서 뛰어나고 특이한(?) 사람들이라 배울 점들이 많았다. 그때는 다들 싱글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유부남 유부녀가 되었다. 다들 날개를 단 듯 각자의 위치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 중 여자인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고, 다른 언니는 유명 기업에 다니나 육아휴직 2년차다.


아무튼,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닐 즈음에 그 중에 한명이 본인 회사에서 일을 해달라고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참 단순한 생각이었다. 어린이집 마치고는 아이를 누가 돌볼 것인가! 답이 없었는데 다행이 모든 사정을 다 고려해준다고 했다. 10시부터 3시까지 근무하고, 안되면 집에서 재택도 가능. 어린이집 마치기 전에 집에 가면 된다고 하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창업한 지 몇 년 안된 회사라 경력자가 필요해서 배려를 많이 해주었다. 집 근처 커피숍에서 오랜만에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나에게도 드디어 사회로 나갈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인가,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연봉도 맞춰주겠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연봉을 얘기했고 아이가 어린이집 적응해야하는 한달의 시간적 여유를 두고, 다음 달 출근을 하는 걸로 구두로 합의가 되었다.


드디어 다시 일을 하는구나!


이런 마음에 들뜨기도 잠시. 일주일 뒤 나는 둘째의 임신을 확인했다. 나의 야심찬 계획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그날 그렇게 나누었던 모든 대화들이 허탈하기는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내 기분은 아직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하아...내 인생....'

'이게 대체 뭔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아이만 돌봐야 하는 게 내 인생이고 운명인가 싶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둘째를 가졌다는 기쁨보다 그런 감정이 더 먼저 앞섰던 게 사실이다. 지금이야 물고 빨고 세상에서 제일 이쁜 둘째지만 그때만해도 뭘 몰랐던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제서야 완전하게 내려놓게 되었다. 그 뒤부터는 다시 어떤 회사로 돌아가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대단한 목적이 있어서 회사로 돌아가려던 게 아니었다. 그저 나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 싫었고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 같다. 지금은 회사로 돌아가라고 해도 가고 싶지 않다. 회사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를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때보다는 마음이 단단해졌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고 다른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때는 날개가 완전히 꺾여 두 번 다시는 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좌절했었다. 이런 날개로는 어디도 갈 수 없고, 누구도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만의 날개로 어디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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