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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숲 May 31. 2016

사울의 아들

그 지옥 속으로





이동진 기자님은 말했다. "어떤 영화는 관람이 아니라 체험된다."고. 영화 <그래비티>에 대한 평이었다. 나는 이 영화에도 같은 평이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그의 등 뒤에 붙어어있는 샴 쌍둥이와 같은 시선으로, 그를 둘러싼 모든 소리가 온 몸 안으로 울려퍼지는 경험은 과히 유쾌하지 않았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터지만, 이 영화는 문자로 아는것과 경험으로 아는것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게 해 준다. 물론 이 역시 '가짜' 경험이지만 그 지옥 한 가운데로 우리를 떨어트려놓고 이 지옥을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인 것이다.


존더코만도. 홀로코스트 유대인학살 당시, '시체처리반' 이었던 사울은 그 역시 언제 죽임을 당할 지 모르는, 나치의 '시체처리용 기계'에 다름 없었다. 그런 그가, 그가 이끌어 가스실로 넣어버린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의 아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그 아이가 정말 사울의 아이인가, 아닌가는 사실 문제가 아니다. (사실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제 정신일 수 없는 상황에서 사울은 살아남았던, 그러나 다시 죽임당했던 그 아이로인해 가슴속에 '어쩔 수 없음'이라는 돌로 단단히 뭍어놓은 '죄책감'이 분출되어버렸던 것이 아닐까. 가스실에서 죽어 처리해야했던 사람들이 '토막'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퍼뜻, 다시 깨닫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적어도 이 아이만큼은 나와 같은 사람, 인 이 아이만큼은. 랍비의 예를 다해 장례를 치루어 줌으로서 이 죄책감을 면죄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않았던 시대. 그 광기의 시대를 요즘같이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영화, 이러한 이야기를 다룬 책 등을 통해 우리는 이것만큼은 이제, 알고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은. 한 인간이 그저 악마라서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찰나의 선택, 잘못된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다시 그러한 광기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기를, 그리고, 혹여 그러한 광기의 시대가 왔다 한들. 나만큼은 절대로, 함께 미치지 않기를. 아직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동시에 살아나는 청각의 감각에 진저리치며 나는- 그렇게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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