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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숲 Dec 25. 2016

소통의 조건,

언어가 있다하여 소통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연극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2013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본 이후로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연극은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그러니까 몇 번이나 말하지만 유일하게 알고있고 엄청나게 좋아하는 극단인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연극 <과학하는 마음 : 숲의심연편>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수요일에 오픈했다. 이 극단의 연극은 이걸로 여덟번째 작품. 그간 보았던 이 극단의 연극들은 모두 문어체가 아닌, 굉장히 일상적인 구어체로 진행되며 엄청나게 대사의 양이 많고, 언어유희적인 부분이 많으며 심지어 무대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각자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하는등 실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무대위에 올려놓은 듯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심지어 몇몇 극에선 한국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읊어질 때도 있었다.) 완벽하게 계산되어 핑퐁처럼 주고받는 대화의 속도감이 좋았고, 그 속도감 속에서 느껴지는 리듬또한 훌륭했으며, 무엇보다 단어 하나하나의 울림을 얼마나 신경써서 골라내었는지를 느낄 수 있어서 한국 문학을 좋아하면서부터 항상 신경쓰던 (아직은 한참 모자라지만) 언어적 예민함이 느껴져 지난 일곱개의 작품이 모두 참 좋았고, 여덟번째 작품인 (그러니까 내가 본, 이 극단의 여덟번째 작품) <과학하는 마음 : 숲의 심연편>도 무척 좋았다.



침팬지, 보노보등에 대한 생태 연구와 더불어 이들을 인공적으로 진화시켜 인류 진화의 비밀을 밝히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한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과학윤리, 과학자와 기업가간의 대결구도, 젠더문제와 인종차별문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아 언어를 가진 인간들 역시 제대로 소통하지 못함을 마지막의 세 배우의 드러밍으로 마침표를 찍어 보여주는 연극이었다. 각자 연구하는 전공이 다른 과학자들간의 동일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사업가와 과학자들의 생각의 차이 등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었는데 특히 극 마지막즈음, 이브는 왜 평원으로 나갔을까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장면이 정말 좋았다. 유난히 날이 서 있던 등장인물들의 긴장이 풀리고, 모두들 마음을 열고 돈도, 연구도 잊은 것 같이. 꿈꾸는 눈빛으로 먼 과거의 어떤 날의 어떤 순간을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참 낭만적이었다. 언제나 이들의 작품을 보고나면 좀 더 언어에, 단어 하나하나의 리듬과 울림에 예민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넘쳐나는 활자와 넘쳐나는 언어에 무뎌질지던 요즈음이었는데 모처럼 좋아하는 극단의 연극으로 무뎌진 감각을 다시 예민하게 갈아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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