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아바 Feb 01. 2023

1-5. 어느 밤의 100분 토론

첫 번째 관찰│이상한 만남

‘생각보다’ 재미있던 첫 만남 이후, 우리는 영화관에서 다시 만났다. ‘코로나’, ‘거리두기’ 같은 표현을 상상조차 못 하던 시절이었고, 영화 <인터스텔라>가 대유행하던 시기였다.


나는 심야 영화 따위는 보지 않는 사람. 밤 10시가 넘으면 혼자 있기를 원하고, 사방이 막힌 영화관을 답답하다고 느낀다. 20대의 밤 10시에는 자주 술을 마셨고 틈만 나면 영화를 보러 다녔는데, 30대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는 40대가 된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늘 규칙적으로 퇴근하는 엄마가 그날은 늦는다고 했고(당시 엄마 집에 얹혀살던 30대 퇴사자였다), 마침 가을바람이 좋았다. 그리고 또 마침 그 영화가 궁금했다. 그 남자가 궁금한 것은 정말 아니었다.


아빠 역을 맡은 매튜 맥커너히의 거친 숨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집에 도착했다. 영화관에서 우리 집까지는 차로 20분 남짓, 그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별말이 없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는 ‘온 우주가 우리를 연결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고, 나는 가을밤의 바람 덕에 살짝 들뜬 마음을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랑은 착각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내 경우엔 대부분의 사랑이 그랬지만.


그때(2014년)가 시작이었다는 건 이제(2023년) 드는 생각일 뿐, 당시의 나는 굳센 인간이었다. 잠깐의 설렘 때문에 신념(?)을 꺾을 리 없는 인간.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친구와 “50대가 되면 셰어하우스에서 같이 살자”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눴고, “결혼 안 하고 혼자 살겠다”는 말은 “제 이름은 OOO입니다” 만큼이나 많이 내뱉었으니까. 한번 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게 나를 지키는 일인 줄 알았고, 다행히도 그는 치명적인 매력 같은 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의 신념이 지켜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한밤의 100분 토론’이 펼쳐졌다. 전화가 아닌 문자로, 소리 없이 치열한 대화를 몇 시간이나 나눈 밤이었다. 여전히 ‘아는 사람’ 정도의 관계를 유지한 채로, 우리는 서로가 꿈꾸는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토론의 시작은 ‘내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둘째, 나는 10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했지만 모아 놓은 돈이 전혀 없다.

셋째, 나는 지금 직장이 없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도 잘 모르겠다.

셋째, 나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고 내 마음속에서 아버지는 죽은 지 오래다.

넷째, 나는 기독교 학교를 6년이나 다녔지만, 절대로 교화될 리 없는 사람이다.

다섯째, 나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다.

여섯째,

일곱째,

.

.

.

이유는 끝이 없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관계가 깊어진 후에 ‘실체’를 고백하면 조용히 멀어지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시작도 하기 전에 알려야 했다. 그래야 상처받지 않을, 아니 조금은 덜 받을 테니까. ‘비혼을 원하는 사람’으로 잘 포장했지만, 나는 알고 있으니까. ‘결혼을 원해도 탈락할 게 분명한 사람’이라는 걸.


그런데, 뭐지 이 사람? 내가 들이민 이유마다 ‘이유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문제들을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기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자기가 가진 콤플렉스는 무엇이 있는데 그게 나를 만나고 어떻게 해소됐는지, 우리가 함께 한다면 이 상황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아주 차분하게, 내가 설득될 정도로. 그때 알았다. 30년이 넘도록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과 함께라면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구나.


그날의 문자 토론 이후, 우리는 5개월 만에 부부가 되었다. 한 달 만에 서로를 배우자로 소개했고, 석 달 만에 집을 구해 같이 살기 시작했으며, 넉 달째엔 양가 상견례를 마쳤고, 다섯 달이 지난 2015년 4월, 그가 출석하던 교회의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나만큼이나 내 결혼 소식이 낯설지만, 어쩐지 조금은 즐거워 보이던 하객들과 함께. 마음속에서 오래전에 죽인 내 아버지의 닭똥 같은 눈물을 어색하게 쳐다보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1-4.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