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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Feb 12. 2023

1-6. 나만 믿던 여자의 교회 결혼식

첫 번째 관찰│이상한 만남

결혼 소식을 알리기 전까지, 친구들에게 나는 든든한 뒷배였다. 자신들이 아무리 늦게 결혼하더라도 그 뒤에는 내가, 혼자 살게 되더라도 그 옆에는 결혼 안 한 내가 있으리라고 굳게 믿어왔으니까. 그런 내가 결혼을, 심지어 ‘교회 결혼식’을 한다니 친구들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축하한다는 인사를 자연스럽게 건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시 내 친구들. 한결같이 솔직한 너희들이 제일 든든하다, 나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리 6년을 기독교 학교에 다녔다. 교과목 중에 ‘종교’가 버젓이 있었고, 그 과목의 교사는 학교의 목사님이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전교생이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학교 강당은 예배당으로 변신했다. 각 반이 돌아가며 예배를 준비했고 반장은 예배 인도를, ‘종교 부장’은 전교생 앞에서 대표 기도를, 나머지 학생들은 합창단, 아니 찬양대로서 한목소리로 찬양을 올렸다. 신앙도, 거부할 만한 이유도 딱히 없던 나는 교과목의 하나로 성경 말씀을 접했고 가요와 다를 것 없이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6년이 흘러도 교화는 없었다. 나는 오직 나만 믿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모교인 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기독교 학교라서였을까. 근처의 신학대학에서도 교생 실습생들이 왔고, 나는 어쩌다 ‘교생 반장’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신학대에서 온 실습 동기들과 가까이 지냈고 그녀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를 위해 자주 기도를 해줬다. 그 친구들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교회에 나가는 일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나만 믿었다.


그 후로 10여 년이 흘렀고 나는 교회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축가로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과, 목사님의 주례사를 들으면서.




작은 궁금증 하나가 시작이었다. ‘저 사람의 중심에 있는 저건 뭘까?’ 평생을 함께 살아갈지도 모를 사람이 하필 모태신앙이었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교회 공동체 이야기, 자기가 좋아하는 목사님 이야기, 신앙 고백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새어 나왔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유난히 맑아 보이는 그 사람의 얼굴이 신기했고, 데이트할 때마다 자꾸 언급되는 목사님의 얼굴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의 신앙을 모르고서는 그를 제대로 알고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내 입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이번 주에 교회 한번 같이 가 봐요.”


내 발로 찾아간 교회는 일단, 예뻤다. 유럽에서 자주 보던 붉은색 벽돌 지붕과 새하얀 벽, 아치형 창문들이 아파트 건물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귀를 공격하는 설교도 없었다. 귀가 예민한 내게 목사님들 특유의 호통 같은 설교는 모두 소음이었는데, 이곳의 목사님은 옆 사람과 대화하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정치 성향이나 성적 정체성 등을 놓고 거부감이 확 드는 이야기를 하던 교회들과는 달리, 예배가 끝날 때까지 의외로 편안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휴우, 다행이었다.


그 낯선 편안함에 이끌려 매주 교회에 나갔다. 그러다 등록을 하고, 목사님과 공부도 하고, 결국 세례까지 받았다. 세례 교인으로서 성찬식에도 참여하고, 목사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과 함께 찬양대 봉사를 시작하고, 시립 교향악단을 은퇴하신 권사님의 재능기부로 교회에서 바이올린도 배웠다. 그렇게 9년을 지금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보내며 즐거운 추억을 차곡차곡 쌓았다. 10년 전만 해도 ‘절대로’ 갈 리 없다던 바로 그곳, ‘교회’ 안에서.


매일 기도하고 매주 예배드리는 삶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그런 일상을 보내며 내가 편안하고, 심지어 즐거울 줄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도 내 안에 ‘깊은 신앙’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기도하고 예배하며 잠시 ‘침묵’하는 그 시간 덕에 내가 바라는 삶의 방향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믿기로 선택함으로써 생각지 못한 좋은 변화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는 사실도.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절대로’의 영역을 뒤져보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절대로 안 해!” 외치며 쳐다보지도 않던 것들, ‘절대로 할 수 없어’ 생각하며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일들, ‘절대로 안 가’ 다짐하며 최대한 멀어지려 했던 장소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껏 느끼지 못한 즐거움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한 번도 닿지 못했던 진짜 좋은 인연이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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