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직원’이었던 남편의 첫인상은 ‘저렇게 해서 밥은 먹고살까?’라는 의문으로 남았다. 그는 내가 일하던 대학의 유학생 보험을 관리하는 담당자였고, 그 말인즉슨 보험설계사, 즉 영업맨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뭔가를 권하는 법이 없었다. 늘 조용히 사무실에 들어와 “별일 없으시죠?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정도의 말만 가만히 던진 후 사라지곤 했으니까.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운다는 사실은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알았다. 영업은 ‘접대’ 없이는 안 된다던데(다른 직업에 대한 나의 뿌리 깊은 편견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는 야근이 필수인 접대는커녕 언제나 칼퇴근에, 수시로 여행까지 떠나는 사람이었다. 잘나가는 영업맨들은 대부분 딱 떨어지는 양복에, 좋은 차를 타지 않나? (역시나 편견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는 겉보기에 그렇게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도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때도 옵션 없는 수동 차를 타는 영업맨은 잘 보지 못했으니까. 그는 지금도 그 차를 타고 매일 출근한다.
30대 초반까지 나는 술을 참 좋아했다. “술을 안 마시는 사람과는 친구도 안 한다” 선언할 정도로, 술은 내 인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물은 하루에 500ml도 잘 안 마시면서, 냉장고에 쟁여 둔 맥주는 매일 한 병씩 꺼내 마셨다. 하루 종일 일과 사람에 시달리다 퇴근 후 따는 맥주 한 캔은 얼마나 꿀맛인지! 갓 지은 흰쌀밥을 먹는 것처럼 구수하고 든든한 막걸리는 또 어떻고. 밥 먹을 때 한두 잔 곁들이는 반주는 나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신기하게 더 좋아졌다. 물보다 술, 때로는 밥보다 술을 택하던 나날이었다.
남편은 술을 못 마셔서 안 마시는 사람이었다. “술을 무슨 맛으로 먹어?” “콜라가 더 맛있지 않나?” 같은 말을 그는 요즘도 자주 한다. 술맛도 모르고 술 마시는 재미도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가 통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그런 사람과 결혼해 그 사람보다 못 마시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다. 아니, 냉장고에 술 하나 없는 지금의 삶이 혼자서 술 마시던 그때보다 훨씬 재미있다.
삶에서 술이 빠지고서야 알았다. 나는 술 마시는 ‘재미’를 누린 것이 아니라, 복잡한 감정들을 술로 풀고 있었다는 걸. 살짝 올라오는 취기를 ‘좋은 기분’으로 착각하면서, 좋지 않았던 하루를 좋은 기분으로 덮어야만 다음 날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걸. 진짜 ‘재미’와 정말 ‘좋은 기분’은 술 없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술 없이도 잘 사는 내 곁의 인간 하나가 매일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살면서 필요한 게 그다지 없는 사람이었다. 술은 못 먹으니까 안 먹고, 책은 빌려보면 되니까 안 사고, 옷은 피부를 보호하기만 하면 되니까 떨어질 때까지, 아니 떨어지면 더 이상 수선이 안 될 때까지 고쳐 입는 사람. 차가 필요한데 돈이 없다면 가장 저렴한 수동 차를 사고, 그 차가 여전히 잘 굴러간다면 10년이 지나도 굳이 바꾸지 않는 사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술은 맛있으니까 이것저것 다 먹어봐야 하고, 옷은 매년 사도 입을 게 없으니까 또 사고, 옷은 떨어져서 버리는 게 아니라 ‘설레지 않으면’ 버리는 사람. 차가 필요한데 돈이 없다면 할부로 사면 되는 세상 아닌가. 그 속에서 신나게 쓰고 또 쓰면서 진짜 필요한 게 뭔지는 오래전에 잊어버린 사람.
우리가 8년을 함께 산 집에는 남편의 물건이 2, 내 물건이 8 정도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어쩌면 1:9일 지도...). 함께 쓰는 물건도 있으니 내가 8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게 없으면 없는 대로 남편은 잘 살 테니까... 내가 8 맞다. 그나마 2:98이 되지 않은 이유는 책 속이 아니라 내 코앞에 현존(?)하는 미니멀리스트를 8년 동안 목격했기 때문일 테다. 결혼 초기에는 그저 억울했다. 나는 꼭 필요해서 사는 물건인데 “당신이 워낙 뭘 안 사니까 내가 사치스러워 보이잖아!” 항변했다. ‘책 사지 않고 1년 살기’ 같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보기도,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해 몽땅 기부하면서 다시는 사지 않겠다, 굳게 다짐해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를 반복한 덕에 물건을, 아니 내 욕망을 한없이 늘리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사치스럽다: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하는 데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는 물건 대부분은 필요하지 않았고명품 가방 하나 없이도 나는 분명 사치스러웠다.그리고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다. '미니멀리즘'이란 말을 모르면서도 여행용 캐리어 하나만큼의 짐만 곁에 두는 그의 생활이 부러워지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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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남편의 애착 티셔츠. 이제는 수명이 다했으니 (제발) 떠나보내기로 합의 후,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그런데 여러분, 직접 산 티셔츠도 아니고 10여 년 전 교회 수련회 때 받은 단체 티셔츠를 이렇게까지 입는 건 좀 과하지 않나요... 제가 사치스러운 거...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