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독립큐레이터 김소진 인터뷰
<영원을 믿는 사람,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2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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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최근에 새로운 팀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팀명의 의미와 구성원이 궁금해요.
시각예술 프로젝트팀 '1995헤르츠(Hz)’입니다. 1995Hz는 예술가, 디자이너, 문화연구자, 비평가, 기술자 및 음악가를 포함한 팀인데요. 인도네시아를 너머 세계적으로 유명한 루앙루파를 보고 꿈을 키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전시를 비롯한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중립적인 콘텐츠를 채워 넣으려 고민하는 편입니다. 그때 주목했던 단어가 '공명(公明)하다'였어요. '사사로움이나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공정하고 명백하다.'는 의미가 있죠. 이 단어와 어울리게 프로젝트 팀명을 정하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발견한 게 또 다른 '공명(共鳴)하다' 였어요. 진동하는 계의 진폭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의미였죠. 그때 진동? - 주파수? - 헤르츠? 그렇게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다소 유치해 보일지 몰라도 헤르츠를 설명하는 사전의 의미에서 '일정한 - 지속적 - 반복'이라는 단어에 꽂혀 이름 지었던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한 90년대생으로 이루어진 팀원들이 일정한 속도로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고자, 시각예술 프로젝트를 기획·제작하고 있습니다.
1995Hz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향해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또한 소도시에서 대도시를 잇는 다양한 시각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내면의 잠재력을 탐구하고 새로운 작업과 작품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P. 그 친구들은 다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저는 학부에서는 미술 이론과 전시기획, 대학원에서는 예술경영과 문화행정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학교에서 만난 선후배 그리고 친구들과 늘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영감을 얻습니다. 그리고 장동콜렉티브로 활동하면서 만났던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일들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죠.
현재 가장 친밀하게 작업하고 있는 동료는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우현정인데요. 그 친구는 지금 박사 과정을 밟고 있어요. 제가 심적으로 많이 지치고 힘들 때 정말 많은 위로와 도움을 주었던 친구이기도 하죠. 함께 작업하면서 참 많이 싸우기도 했고 하물며 그는 저 때문에 몇 번 운 적도 있어요. 일하면서 극도로 까칠해지는 저를 컨트롤해 주는 동료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현정 특유의 감수성과 시니컬한 인류애를 애정합니다.
저는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는 편이에요. 건축이나 음악 분야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은 제 주변에 없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이나 졸업 전시를 살펴보며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연락을 먼저 하는 타입입니다. 그 사람의 현재 관심사와 앞으로 하고자 하는 목표나 꿈에 관해 이야기 듣는 걸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대게는 부담스러워하기보다 저와 만남을 갖게 됩니다. 나와 결이 맞다고 생각하면 훗날 좋은 일을 함께 해보고 싶다며 열심히 어필을 하고 다니는 중입니다.
저는 관계도 그렇고 저를 스쳐 간 모든 것들이 영원하다고 생각해요. 대학 졸업 후 2년을 함께 한 ‘장동콜렉티브’도 현재는 마무리됐지만 저는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울고 웃으며 맨땅에 헤딩했던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나이를 먹다 보니 각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과 가고자 하는 방향이 더욱 뚜렷해졌기에 잠깐 쉼표를 찍게 된 거죠. 지금은 이렇게 갈라섰지만,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또 함께 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P. 3년간 끊임없이 활동을 지속하셨습니다. 물론 하는 일에 열정이 있고 목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쉴 틈 없이 달려온 인생, 때로는 지친 적도 있었을 것 같은데, 쉴 틈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나요?
대학 졸업 후, 독립기획자로 활동한 지 고작 3년밖에 안 되었지만 작년 11월에 번아웃이 아주 심하게 와서 앓아누운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다독이며 해독하는 데 1년이 걸린 것 같네요. 모든 사람이 다 겪듯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컸던 건 제가 바라봤던 이상향과 피부로 와닿는 현실에서의 간극과 모순이었습니다. 지금은 미래에 대한 집착을 비워내며 사람을 함부로 과대평가하지 않으려 연습하고 있어요.
친구 현정이가 제게 이런 말을 해주더군요. “잉여의 소진. 너를 위해 어떻게 쾌락적으로 휴식하고 잉여의 시간을 조직적으로 보낼 것인지 고민해 봐.”
P.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위해 소진 님에게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요? 지원사업(보조금 사업)으로만 진행하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잖아요. 저희 PADO 역시 멤버 모두 이러한 점에 공감하기 때문에 자생적으로 운영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소진 님은 프로젝트의 운영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실지 궁금해요.
저는 평상시에 하고 싶은 프로젝트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와 결이 맞는 보조금 사업이 있는지 하루에 한 번씩 문화예술기관 홈페이지 공고사항을 보고 프로젝트를 실현하려고 노력해 왔어요. 프로젝트 특징상 많은 사람과 함께 하므로 인건비 책정이 가장 중요한데요. 이 부분 때문에 가장 골머리를 써왔던 것 같아요. 전체 예산에서 30% 미만으로 잡아야 최대한 정액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그렇게 될 경우 인당 책정할 수 있는 인건비가 턱없이 부족해 항상 아쉽더라고요. 올해 광주문화재단 지원사업 공고문을 보니 개인 창작지원 사업에도 예술인 스스로에 대한 인건비를 책정할 수 있게 바뀌었더라고요. 작년에 그 부분에 대해 열심히 불만 사항을 표현했었는데 먹힌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질문과 상관없는 말이긴 하지만 잠깐 1995Hz 프로젝트 중 하나를 소개해도 될까요? (웃음) 저는 작년에 팀원들과 함께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전국 단위로 문화예술지원 사업을 통합관리할 수 있는 앱을 제안했었어요. <그란츠82 with Big Data>라는 어플인데, 이 앱을 이용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빅데이터를 가지고 맞춤형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추천하는 앝고리즘(아트+알고리즘의 합성어)이 실행된다는 게 주목할 점이에요. 이 어플에 관한 아이디어 제안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상도 받았었답니다. 이 앱이 만들어지면 예술인 관점에서 정말 편할 것 같은데 진짜 만들어져서 저와 같은 예술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보조금 사업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당장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함께 해줄 동료를 찾아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하며 느슨한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P. 소진 님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궁금합니다. 예술인 복지에 매우 많은 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소진 님이 꿈꾸는 예술인 복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생활고로 힘들어하는 예술인들에게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줌으로써 그들이 건강하게 창작에 몰두할 수 있게 만드는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그중에서도 저는 시각예술로 한정해서 예술가들을 위한 정책 기반 마련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에게 지급하는 아티스트피를 두고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와 문화 행정을 공부하면서 현재 대한민국의 예술인 복지제도와 지원 정책들이 정말 참혹한 수준임을 인지했습니다. 예술인 복지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됐죠? 노인, 아동, 장애인에 이어 예술인을 위한 복지법이 생겨난 걸 보면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대중들을 위한 예술 향유 정책에 급급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실태를 인지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문화예술 지원 정책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현장에서 피부로 와닿는 문제점들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문화예술기관에서 주최하는 공청회나 간담회에 꼭 참가하여 목소리를 내고 다니는 중입니다. 솔직히 그런 자리에 가보면 같은 예술인들의 저조한 참여도를 보고 좌절감을 느껴요. 불만은 있는 대로 자기들끼리 투덜거리면서 정작 대화를 청하는 자리에는 참여하질 않으니 그 불만들이 묻히는 거죠. 내년 예술지원정책들을 살펴보면서 저는 희망을 품었어요. 제가 불편하게 여기며 소신 발언 했던 부분들을 토대로 실제 반영이 되어있더라고요. 저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P. 소진 님을 항상 공부하는 사람, 같은 위치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대중과 동료 예술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였으면 하나요?
누군가가 저를 ‘크레파스로 그린 햇님’으로 표현했던 게 생각나네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웃는 얼굴, 초롱초롱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나? 일단 저는 주변 지인들에게 진취적이고 야망이 있는 사람, 혼자 의미부여 하면서 좌절하고 기뻐하는 사람, 생각도 많고 몹시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요, 모든 사람에게 대화의 문턱이 없는 사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유의미한 가치를 끊임없이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P. 모든 인터뷰이에게 공통으로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또는 신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잖아요. 소진 님에게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
‘R=VD (Realization = Vivid Dream)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장동콜렉티브로 활동하면서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일이 대학 시절 막연하게 꿈꿔왔던 것들입니다. 또 SNS를 통해 소식을 접했던 광주 멋쟁이들도 활동하면서 실제로 한 번씩 다 만나봤고요. 20대 초반의 로망이 이루어진 거죠. 지금은 시각예술 종사자로서 또 다른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꿈꾸고 있는 것들은 오랜 시간이 걸릴 예정이라 장기간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있어요. 간절하게 바라고 꿈꾸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 경험했으니, 저는 한번 더 믿고 도전해보려 합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 들으려면 10년은 버텨야 한다.’
학부 때 지도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게 생각나네요. 졸업 후 활동한 지 3년 차, 올해가 지나고 나면 정확히 7년 남았네요. 문화예술계에서 피어나는 여러 동향을 살펴보며 열심히 공부하면서 버티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태어난 거 유의미하고 가치 있게 살다 죽겠습니다. 아마 저는 의미와 가치를 예술에서 찾으려고 발악하는 중인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Viva Arte Viva!"
복잡하지만 단순한 재미 추구자 │독립큐레이터 김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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