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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주 Apr 08. 2022

비행기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인도여행 둘


인도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는 여행할 수 있게 한 푼만 달라는 동냥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은 의자를 뒤로 젖힐 수 없는 바짝 붙여진 경제적인 좌석으로 가득하여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했다.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영혼의 자유라도 챙기려 했다. 옆자리엔 요르단에서 온 88년생 모하메드가 앉았다. 그는 입출국 카드를 작성하기 위해 볼펜을 빌리고 싶다던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은밀한 욕구를 털어놓는 것 이외에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 승무원과 기내식 메뉴에 관해서 이야기한 게 더 길었던 것 같다. 모하메드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한 것 같았다. 귀를 꽉 막은 이어폰에서 음악이 흘러넘쳐 내게 들렸다. 귀 건강을 위해 볼륨을 낮춰달라고 하려 했으나 의외로 나와 음악 취향이 맞았다. 음악과 흥에 심취한 친구를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도여행을 가기 위한 첫 번째 경유지는 태국이었다. 제일 저렴한 표를 끊었기 때문에 경유 공항에서 8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나는 지루함을 견디는 방식으로 항공권 일부를 치렀고, 항공사는 연결편을 제공했다. 전기와 인터넷만 주면 그 지루함을 패기롭게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공항은 배신했다. 공항에서는 공짜는 여기까지라며 돈 없는 나의 인터넷 접속을 막았다. 나는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그냥 멍하니 있었다.


할 게 없자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산타 복장을 한 승무원 누나들이 걸어갔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였다. 영어 쓰는 친구들은 비행기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굳이 '에어 크리스마스'라고 이름 붙였다. 비행기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 좀 내(서 물건 좀 팔아) 보자는 것인데 빨간 산타 복장을 보고 있으면 신이 나서 카드를 긁지는 않을까 싶은 거다. 하지만 승객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주는 저가항공에는 산타도 선물도 없다. 기다릴 때는 몰랐기에 ‘과연 수염도 붙일까?’하는 상상을 하고 있던 내게 하와이에서 온 동성애자 커플이 말을 걸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영어로 말을 걸어서 한국말로 대답하고픈 욕구를 참으며 공교육 12년 세월로 다져진 영어로 대답했다. 내 구린 영어 실력에도 집중해서 들어주는 바람에 우리나라 공교육이 성공했다고 순간 믿었다. "나는 혼자 인도여행 가고 있어 너희는 어디 가니?" 하지만 지나가던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프랑스 여성이 우리 대화가 재밌어 보였는지 끼어드는 바람에 대화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으로 나아갔다.


내가 아는 영어가 욕지거리로 떨어져 버려 A, B, C, D, E를 지나 F가 목구멍까지 왔을 때 그녀와 나의 목적지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동무와 나는 인도여행으로 오로빌을 향해 가고 있었다. 동무는 반가운 마음에서인지 같이 가자고 했지만 우리는 비행편이 달랐다. 우리는 한두 번 메시지 보내고 잊어버릴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였고, “에어 크리스마스~”라고 작별 인사하며 하나둘씩 갈 길 찾아 떠났다. 놀라운 경유 시간을 가진 항공편을 예약한 나는 다시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 자리에서 ‘산타는 왜 눈에 띄는 빨간색 옷을 입는 걸까?’하는 시답잖은 궁금증을 품으며 이십 대 한 자락을 멍청히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비행기 출발 시각에 가까워질 때쯤에는 상상 속에서 이미 비행기에서 산타와 캐럴송을 부르며 깜짝 선물을 개봉하는 것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인도여행의 시작점에서 연결편을 향한 내 발걸음은 경쾌했고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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