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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주 Mar 12. 2024

계획 없이 여행하다간

인도여행 여섯

티루칠라팔리에서 둘째 날 아침이 밝아오자, 일본인 친구와 작별 인사를 했다. 각자의 여행을 떠날 때다. 오늘 안에는 오로빌로 가리라 마음먹고 호텔에서 불러준 릭샤에 올라탔다.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곳에서 폰디체리로 가는 버스를 찾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바가지를 쓰고 버스를 탔다. 버스는 가는 동안에만 영화 여러 편을 틀어줬다. 영화의 줄거리가 단순한 액션영화라서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약간 단순화시켜 보자면 줄거리는 멋진 수염을 가진 멋진 인도인 남성이 무술을 통해 예쁘고 피부가 하얀 인도인 여성을 구하고 끝에서는 모두 춤을 추는 내용이다. 아마 슈퍼마리오에서 참고한 듯싶다.


그러다가 갑자기 중간에 나를 내려준다. 폰디체리 가는 게 아니란다. 같이 탄 인도인 중 한 사람도 폰디체리로 가고 있었는데 나와 함께 어이없어했다. 분명 직행이라고 했는데… 함께 낚여 버린 인도인과 나는 황량한 벌판 위에 버려졌다. 둘이라서 다행이다. 우리는 함께 릭샤를 잡아타서 근처 버스 차고지로 향했다. 거기에는 다행히 폰디체리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 기사에게 물어보고 요금징수원에게 물어보고 이미 탄 승객들에게도 물어봤다. 간단다.


폰디체리행 버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독일 자동차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의 삼각별이 박힌 그 버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를 돌고 돌아 이곳에 오지 않았을지 하는 의심이 들게 하는 버스였다. 버스의 냉각시스템은 매우 친환경적인 것으로 창문과 문을 모두 열어두었다. 거리를 가득 채운 매연에 머리 아파하며 불편한 자세로 폰디체리로 향했다. 나는 그 버스가 멈추지 않기만을 그저 바랐다. 인도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닌데 이번 버스 기사는 핸들을 과감히 돌리는 경향이 있었다. 꿈이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였던 걸까. 무료한 삶에 긴장감이 필요했던 걸까. 덕분에 추가 요금 없이 버스는 놀이기구로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폰디체리에 도착한 나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걸 본다. 해가 진 도시의 밤은 어두운 것들이 서서히 머리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여행자들이 도착하는 낯선 도시 속 어둠은 형체를 짐작할 순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기 힘들다. 도시 사람들이 밤에는 가지 않는 구역이 있기도 하며,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 혼자서는 돌아다니지 않는 날이 있기도 하다. 도시마다 각자 가진 사정이 있다. 그러니 처음 가는 도시라면 밤에 도착하는 건 좋은 계획이 아니다. 물론 나는 언제쯤 도착할지에 대한 감각이 없어, 그렇게 밤에 폰디체리로 도착하긴 했다. 밤에 도시를 처음 마주한다면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 먼저일 것이다. 그리고 익스트림 스포츠를 견뎌낸 나는 기진맥진했다.


나를 구해준 인도 동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릭샤를 타러 부랴부랴 움직인다. 나무 아래 모여 짜이를 마시며 수다 떠는 릭샤 기사들한테 가격 협상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쪽수에서 밀리니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가격에 그냥 가자하고 릭샤에 올라탔다. 릭샤는 삼륜차이고 지붕이 있지만 옆이 뚫려 있어 버스와 마찬가지로 친환경적인 냉각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매연에 싸대기를 맞고 오로빌에 도착했다. 기사님은 나를 비지터 센터에 던져주고 여기가 오로빌이라고 한다. 오로빌 비지터 센터는 이미 닫혀 있었다. 직원들이 야근하는 경우는 없는 모양이다. 나는 그 옆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들어갔다. 나의 소화기관은 오늘 하루 종일 쉬고 있었다. 피자 한 판을 시켜 한 조각 한 조각을 정성스럽게 해치운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다들 그러듯이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60~70대는 되어 보이는 프랑스인들이 주요 고객인 듯하다.


다 먹고 계산하러 나가면서 나는 가게 점원에게 근처에 숙소가 있는지 묻는다. (미쳤지. 나도 숙소 예약도 없이 낯선 곳에 저녁에 가다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점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자기 매니저에게 돌아갔다. 놀랍게도 그곳의 매니저는 한국인이었다. 그는 내게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상황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그러고는 전화를 하더니 내게 ‘커피톡’이라는 숙소를 소개해 줬다. 몸 뉠 곳을 드디어 찾게 되었다.


커피톡은 카페와 숙소를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오로빌 내부는 아니었다. 내가 오로빌에 방문한 시기는 ‘핫시즌’이라고 불리는 시기로 오로빌 내에 있는 숙소는 예약이 다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어찌저찌해서 숙소를 구했고 500루피에 맨 위층에 제일 큰 숙소를 썼다. 오로빌에서의 첫날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화장실에서 도마뱀과 인사했고, 책꽂이에는 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초등학교 과정 문제집이 꽂혀 있었다. 커다란 침대에 누워 내일 할 일을 떠올렸다. 매니저님은 내게 내일 카페테리아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가서 한 번 다시 만나보려고 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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