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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 Aug 16. 2021

일하는 마음, 이와타씨에게 배웠습니다

<이와타씨에게 묻다>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

어른이 되면 장래희망은 고민할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 대학에 가서 뭘 전공할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이미 다 정해졌으니까.


그 생각은 반만 맞았다. 운 좋게 적성 찾아 직업은 정했지만, 장래 고민은 어릴 때보다 더 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몇 년 전까지는 실무만 잘하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글 쓰는 마케터가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여기에 집중하면 될 거라고. 그래서 어느 회사에 다니건 업무범위만큼은 확실히 정의해 두었다. 나는 마케팅, 그중에서도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그쪽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게 내 목표라고. 그 외의 자질, 이를테면 리더십은 나에게 없는 재능이라고.


목표는 지금도 변한 게 없다. 그치만 요즘은 ‘없는 재능’이라는 표현이 미심쩍다. 정말로 나는 실무밖에 못하는 사람일까? 여기서 더 성장하려면 글쓰는 것 이외의 능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리더가 되고 싶은 건 분명 아니다. 하지만  내 업무범위를 한정지어 두니 그만큼 일을 마주하는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았다. 이래서야 뒤쳐지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그래서 읽어본 책이 <이와타씨에게 묻다>다. 워낙에 게임을 좋아하니까 이와타 사토루가 레전드라는 건 알고 있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닌텐도 CEO. 그가 남긴 글이 책으로 나왔다니 이건 무조건 읽어봐야지! 실무와 경영을 모두 해본 사람인만큼 배울 점이 많겠구나 싶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와타씨가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배울 것이 정말 많았다. 이와타 본인과 측근들의 이야기만 담았으니 좋은 면만 보이는 것일 수 있지만, 실무를 잘 알고 기업을 경영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배우고 싶은 태도는 이렇게 세 가지였다.


1. 동료의 재능을 믿고 지지한다.

컴퓨터는 한 번의 작동으로는 단순한 것만 할 수 있지만, 그 단순한 것을 조합하여 복잡한 처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프로그램의 재미이자 어려움입니다.

미야모토씨는 게임 전체를 움직이기 위한 프로그램 설계를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단순한 구조에 대해서는 상당히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리와 기능을 알고서 말하는 사람이거든요, 미야모토씨는. 그래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프로그래머와 소통이 가능하지요. 자신이 바라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못한다’라고 믿는 프로그래머를 대신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지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게임 디자이너는 그리 많지 않을걸요.


이와타씨의 말 중에는 동료에 대한 칭찬이 참 많다. 특히 미야모토 시게루와의 에피소드에서는 “내가 이렇게 대단한 동료와 함께 일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심지어 둘 다 엄청난 천재이니만큼 부딪힐 일이 많았을 텐데.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에 두고 즐겁게 협업했다는 게 느껴졌다.


2. 쓸모없는 노력은 없다는 걸 안다.

<MOTHER 2>라는 게임의 개발이 파탄나려 했을 때 개발현장에서 나를 조력자로 불렀습니다. HAL 연구소의 사장과 프로그래머를 겸하던 시절이었지요.

확실히 게임이 완성되는 흐름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이대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이토이 시게사토씨에게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다면 돕겠습니다만, 이 일에 관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라고요.
그리고는 훗날 게임 팬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이 말을 했습니다.
"지금 있는 부분을 활용하면서 수정해나가는 방법으로는 2년이 걸립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도 괜찮다면 반년 안에 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쪽이 선택되었지만, 나는 어느 쪽이었어도 할 생각이었습니다. 어느 쪽 방법이어도 완성되었을 겁니다.

(…) 왜냐하면 지금까지 만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갑자기 나타난 인간이 “처음부터 다시 만듭니다!”라고 선언했다면 납득을 못하는 사람이 생겼을 겁니다. 현장의 분위기가 무너져 버리면 잘될 일도 나빠져 버립니다. 따라서 가능성 있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지요.

(…) 결과만 놓고 보면, 내가 합류하고서 1년 만에 게임이 완성된 겁니다. 하지만 그 1년으로만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MOTHER 2>라는 게임은 4년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1년 만에 만들었다면 그 안에 가득한 재미와 맛은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게임이 좌절될 때까지의 4년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고민했던 사람들의 시행착오는 모두 게임 안에 살아있습니다.


문제로 가득한 프로젝트를 맡으면서도 여태 진행된 일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 “내가 짱이니까 시키는 대로 해!”가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다음 “시행착오 덕에 게임이 재밌어진 거야”라고 말하는 리더라면 평생 따를 것 같다. 스스로가 워낙 비범한 인물이라 평범한 사람들의 작업물이 눈에 안 찼을 수도 있었는데 책에는 한가득 다른 동료 칭찬뿐이었다. 동료마다 어떤 점이 멋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입바른 창찬이 아니란 걸 알았다.


3. 자신이 하는 일이 위대한 이유를 안다.

내 생각입니다만 비디오게임기로 대표되는 대화식 오락의 강점은, 가지고 놀던 시절로부터 10년이나 15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는 점입니다. 소설이나 영화로도 확실히 감동을 받지만, 감동의 기억은 있어도 줄거리조차 말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게임은 직접 조작해서 상호작용하며 관여하는 오락이기에 자신에게 각인되는 방법이 굉장히 독특하고 강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 상호작용하며 관여해 가는 놀이라면, 기존의 비디오게임과 같은 종류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취급하는 장르나 주제 역시, 지금까지와 다른 착안점이 없으면 흥미를 갖는 사람의 절대 규모는 증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닌텐도 DS는 ’게임 인구의 확대’를 목표로, 과거에 게임이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적극적으로 가져왔습니다.

(…) 따라서 우리가 만드는 게임기는 단순히 고성능이기만 한 게 아니라 다양한 놀이가 펼쳐지는 기기이기도 합니다. 이 필연성에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만든 게임기에 대해, 전체적인 콘셉트뿐만 아니라 “이번에 나오는 ㅇㅇ라는 게임은 굉장해!” 이런 말을 설레면서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런 게임기를 만들고 싶고, 지금도 만들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프로그래밍 가능한 계산기로 게임을 만들던 이와타씨. 수십 년간 일을 계속해오며 ‘게임도 프로그래밍도 재밌으니까’를 넘어 자신의 철학을 세웠다.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으니 재밌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요즘 하는 고민도 이 부분과 관련 있다. ‘글 쓰는 것도, 좋은 소재를 발굴하는 것도 재밌지’를 넘어 내가 만들고 싶은 가치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필요하다면 더욱 다양한 일을 겁내지 말고 배워야겠다. 계속 일하고 싶고, 멋진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동료들에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와타씨는 병으로 2015년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던 일을 놓지 않은 그를 동료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생각해보니 이와타씨는 줄곧 이런 말을 해왔습니다. 그는 모두가 해피하기를 실현하고 싶었던 거지요. 자신이 해피한 것, 동료가 해피한 것, 고객이 해피한 것. ‘행복하게 하다’가 아니라 ‘해피’라는 외래어가 좋네요, 라는 말을 나도 했었던가. 이 마음은 나도 전적으로 같았기 때문에 기뻤습니다. 왠지 말이죠.

쓸데없는 것만 기억하는구나 싶지만 음, 이와타씨는요 ‘해피’라고 말할 때 이렇게 양손을 쫙 폈어요(웃음). 이렇게 ‘해피’라고 하면서요(웃음). 이런 건 잊을 수가 없네요.

그날 참 좋았는데. 둘이서만 오랫동안 이야기해서.

- 이토이 시게사토


이와타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회사는 제대로 돌아갑니다. 말이나 시스템으로 여러 가지를 남겨준 덕분에 젊은이들이 생기 넘치게 일하고 있습니다. 곤란한 일은, 내가 주말에 문득 떠올린 시시한 생각들을 월요일에 들어줄 사람이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맞아요, 그런 얘기거든요” 이러던 것이 없어졌으니 조금 곤란하다고 할까요, 쓸쓸하네요.

- 미야모토 시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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