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 Apr 11. 2021

SAMTOH는 누구의 샘터가 되려 하는가

내가 유일하게 구독하는 잡지 샘터. 2019년 10월에 폐간 위기 기사를 보고 안타까워하다 여러 독자와 기업 후원으로 계속 발간하기로 했다는 11월 기사를 보고 1년치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그러고 1년 연장해서 지금까지 받아보고 있으니 2년차 구독자다.



2년 전에 샘터가 없어지지 않길 바란 건 그 안에 실린 투고 에세이 때문이었다. 전문 작가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쓴 글을 모은 잡지가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투박하지만 그래서 정이 가는 따뜻한 글들. 작가들의 유려한 글을 읽다가도 그런 꾸밈 없이 살아있는 글이 생각날 때가 있다. 진수성찬 산해진미 앞에 두고 집밥이 생각나는 마음이다. 그럴 때 샘터를 펼치면 참 좋다. 이 잡지는 오래오래 가면 좋겠구나 싶고, 이래서 50년 넘게 나올 수 있었구나 싶고.


샘터는 스스로 자기 가치를 잘 아는 잡지라고 생각했다. 구수한 '샘터' 로고와 표지,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코너만 은근히 앞에 내미는 정갈함. 인터뷰는 다양한 사람을 조명해서 좋고(래퍼 치타라던지!), 할머니의 부엌수업은 매달 다른 할머니의 레시피와 인생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좋고, 특집은 이 주제로 투고받은 에세이들이 실려 있겠군 예측할 수 있어 좋았다. 사람 사는 이야기 가득, 집밥 냄새 물씬, 이런 게 샘터였다.

그런데 이번달엔 샘터를 받아보지 못했다.



뜬금없이 SAMTOH가 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채널예스가 왜 왔지 했다.



여러모로 한숨이 나오는 첫인상. 이번달부터 발간일이 15일에서 1일로 바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디자인을 이렇게 바꿔버릴 줄이야. '더 새롭고 알찬 모습으로 찾아오겠다'는 게 빈말이 아니었다. 새로워지긴 했다만 알이 찼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당신은 취향대로 살고 있나요?' 라니, 이런 재미없는 질문을 샘터에서 받을 줄은 몰랐다.


왼쪽이 샘터고 오른쪽이 SAMTOH.


디자인은 채널예스고 내용물은 대학내일인가, 시작하는 글부터 떡볶이라니 뒷목 잡았다. 할머니 레시피 코너는 종적을 감췄고 '할매입맛으로 추천하는 뉴트로 디저트'만 덜렁 실렸다. 취향을 공유하는 살롱이랍시고 특정 커뮤니티 세 곳을 취재했는데 어쩐지 광고 기사 같다. 절반 정도 되는 분량이 이번 주제 '취향'으로 묶여 있는데, 이런 뻔하고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보려고 샘터를 읽는 게 아니었다. 눈이 찌푸려졌다. 머리가 살짜기 아파온다.

아, 이제 보니 글씨가 작다.


왼쪽이 샘터고 오른쪽이 SAMTOH.


안경 껴도 1.0 겨우 나오는 고도근시인 내겐 너무 작은 글씨다. 나란히 두니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글을 읽는다 치면 차이가 크게 난다. 그러고보니 나는 작은 글씨에 머리가 아파서 원체 잡지를 잘 안 봤다. 샘터는 몇 안 되는 읽기 수월한 잡지 중 하나였는데.


고향에 계신 엄마가 생각났다. 지난 설에 재밌는 책 한 권 전해드렸더니 "재밌겠는데? 근데 글씨가 작긴 하다~" 하셔서 노안이시구나 마음이 살짝 아팠다. 문고판 책 글씨도 작다고 하시는 어르신들에게 샘터 글씨는 돋보기 없이 볼 수 없는 수준 아닐까.


이번 SAMTOH, 편집장의 말에 따르면 '부모세대와 MZ세대가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는 소확행 라이프 매거진'으로 내용과 형태를 개선했다고 한다. 이게 개선일까? M세대 끄트머리로 들어간 내가 보기엔 영. Z세대가 이런다고 샘터를 볼까 싶고, 부모세대는... 글쎄, 일단 글씨가 안 보이지 않을까. 51년 된 샘터와 가장 가까이 지낸 건 그분들인데.


아무런 변화 없이 영원히 살아남을 순 없다. 트렌드랑 가장 가까운 잡지야 말할 것도 없다. 그치만 이건... 너무 변했다. 젊다 못해 어려졌다.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어설픈 화장과 괴랄한 스타일을 뽐내던 20살 새내기 시절 나 같다. SAMTOH도 시간이 지나면 자기 정체성과 취향을 찾아가며 다듬어질까? 아마 그럴 거다. 근데, 그 다듬어진 멋진 SAMTOH가 지난달 샘터의 모습은 아닐까?



SAMTOH에 실린 글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아닌 점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기존 샘터와 많이 다른 스타일의 글이 실린 점을 강조하고자 부득이 제목을 기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채널예스도 대학내일(캐릿)도 샘터도 좋아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